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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한국 A/S센터 직원과 해외 이민자인 나의 좀 이상한 인사법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7. 13.

 

어제T 마트에 노트북을 사러 들렀습니다.

6년 가까이 써온 노트북이 몇 달 전 드디어 부팅이 안 되는 지경에 이르렀고, 워낙 처음에 싸게 구입했던 것이라 고치는

값이 더 아까운 듯 해서(그리스는 AS 비용이 한국보다 더 비쌉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미리 아버지께 부탁을 드렸

더니 제게 딱 맞는 사양의 좋은 물건을 알아 봐 두셨던 것입니다.

미리 봐 두신 노트북을 함께 보러 가기 전에, 저희 엄마는 제 딸아이와 휴대폰 가게에 뭘 물어봐야 한다며 그 쪽으로

가셨고, 저는 같은 층에 위치한 각 종 휴대폰 단말기A/S, 전자제품 A /S 센터에 아버지와 함께 들르게 되었습니다.

저는 휴대폰 배터리를 하나 더 구입하려 했었고, 아버지께서는 얼마전 새로 구매하셨던 휴대폰 단말기에 대해 직원에게

물어볼 게 있으시다며 다른 쪽으로 가셨습니다.

 

사실 저는 오랫동안 서울 안 동쪽 지역에 살았었기 때문에 T마트가 생길 때부터 보아온 터라, 이곳이 용산이나 인터넷

과 가격 차이가 있든 없든 그런 실용적인 부분과 상관없이 이곳에 대해 늘 친근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제게는 낯익은 이 장소에 가면서, 예상과 달리 상당히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이유는 제가 한국에 들어온 하루 사이에 고국에서 해외 이민자로서의 이상한 증상을 겪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 먼저 이 이상한 증상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한국인이 전혀 없는 곳에 살다가 한국인을 갑자기 많이 만나니 단어를 정확하게 쓰고 그리스어를 섞어 쓰지않기 위해 지나치게 조심하게 되었는데, 그러다보니 모르는 사람과 말을 할 때 자꾸 말투에 약간 문어체 같은느낌이 묻어 나는 것입니다! (동생을 제외한 한국인은 8개월 만에 처음 만난 셈입니다. 8개월 전엔 1년 만에 처음 만났었습니다.)

드라마 배우가 만약 이런 제 말투를 사용했다면 틀림없이 발연기 소릴 들었을 그런 말투랍니다…

축하2나 배우도 아닌데, 발연기 하고 있는거야? 

 

2. 저는 해가 강한 그리스에 살다 보니 피부가 많이 까매졌는데요. 옷차림이나 화장스타일도 유럽형으로 자연스럽게 바뀌어서 인지, 모르는 한국인들 중에 이 동양인 얼굴을 보고도 자꾸 영어로 말을 건네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저께 인천 공항에서 편의점과 환전소 직원이 그랬었고, 어제 T마트에서도 제게 영어로 말을 건넨 분이 한 분 계셨습니다.

전 정말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리스에선 그렇게 동남, 동북, 중앙아시아 전 국가의 대표 얼굴처럼

온갖 나라사람으로 다 오해 받더니,

이제 고국에서는 도대체 어느 나라 사람으로 오해 받는 걸까요???

 

3. 그리스에서의 언어 습관이 한국어를 사용할 때도 튀어나와서 자꾸만 지나치게 "고맙습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아침이네요?" 라고 말을 한다든지, "네~! 그렇군요! 알겠어요!" 라는 외화 더빙톤의 맞장구를 친다는 것입니다. (오늘 친구와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계속 이 외화 더빙톤이 튀어나와서 정말 미~~~~~~춰 ~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다행히 친구는 눈치를 못 챘어요.)

샤방3나, 뒤 늦게 새 직업의 가능성을 찾은거야? 외화 더빙 하는 성우?

"알겠어요! 존! 그렇군요~!"

 

 

안 그래도 아직 시차가 적응이 안 된 상태라 이게 꿈인지 생신지 싶고, 오늘 먹은 만두 떡볶이 돌솥 비빔밥이 꿈에서 먹은

것인지 아닌지 헷갈릴 지경인데, 위의 세 가지 증상까지 동반되니 제 스스로가 몹시 어색하고 낯설 수 밖에 없었고,

T마트에 근무하시는 낯 모르는 분들에게 되도록 어색하지 않게 말을 하려고 잔뜩 긴장한 표정을 지을 수 밖에 없었던 것

입니다.

 

그런데 제가 만났던 이 A/S 센터 직원은, 세계에서 친절하기로 둘째가라면 서러울 한국 A/S 센터 직원들, 그 중에서도

하필 특히 더 친절한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제게 필요한 설명을 해 주고 시종일관 미소를 잃지 않는 젊은 남성이셨는데요.

일은 잘 하지만 필요한 말 외에는 댓구를 잘 하지 않는 조금은 불친절한 그리스 A/S 센터 직원만 몇 년간 접해 오다가,

친절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무장한 이 직원의 친절이 엄청 부담스럽게 느껴지면서도, 한편으론 감동 또 감동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까요?

A/S센터를 나오면서 제게 90도로 인사를 하는 젊은 남성 직원에게, 저는 그만! 위에 말씀 드린 이상 증상이 더 심하게

나타내 버린 것입니다.

 

제가 그 직원의 인사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러면서 함께 90도 맞절을 한 것입니다!

 

송대남, 정훈 감독의 맞절 사진

무릎만 안 꿇었지 거의 이 분위기 였어요ㅠㅠ

 

사실 맞절을 하면서도 좀 이건 아니다 싶었지만 저절로 꺾이는 제 고개와 튀어나오는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막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직원은... 몹시 당황한 듯 했습니다. 어쩌면 매일 이런 융숭한 친절을 당연하게 받고 있는 보통 사람들에게서 나오지

않는 반응이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저도 예전엔 한국에 살 때는, 이런 친절을 고맙다고 여겨본 적이 별로 없었으니 말이지요. 당연한 거 아니야? A/S센터

직원인데? 라고 생각했었지요.)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 발생했습니다.

당황한 직원은 제게 다시 90도 인사를 하며, "고객님 저희가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라고 인사를 했고,

저는 거기서 멈추었어야 했는데 저도 모르게 또 다시 90도 허리를 꺾으며 "아니에요. 제가 감사하지요!"

라고 말해버렸습니다.

엉엉

엉엉엉…이 어색한 상황을 어쩔 거야…

 

그후 저와 그 직원분의 대화는 이랬습니다.

직원 : 고객님 안녕히 가십시오.

나 : (다시 고개를 숙이며) 네~! 감사합니다.

직원 : 네~ 감사합니다!

나 : 네~~~~ 좋은 하루 되세요!

직원 : 네~~고객님도요!

나 : 네~~~~~~~(또 고개를 숙이고)

직원 :(얼떨결에 또 같이 고개를 숙이며) 네~

 

 

느낌표….

휴대폰 배터리 하나 사면서

사돈 상견례라도 하듯 그렇게 계속 맞절을 하며 서로 감사하다고 하다니…

저는 정말 스스로에게 오글거려서 어디로 숨고 싶었을 정도인데요.

아마 그 남자분, 참 희한한 고객 만났다고 나중에 웃었을 거에요..ㅠㅠ

 

그래도 비록 이런 이상한 상황을 겪었지만, 저는 오랜만에 만난 한국인의 풍성한 친절에(그게 진심이든 아니든)

참 감사하는 하루였습니다.

 

여러분 즐거운 토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컴퓨터 매장의 여성 사장님께서, 제가 노트북 사러 온 대학생인 줄 알았는데 큰 딸이 할머니와 나타나서 깜짝 놀라셨다고, 동안이라고 말해 주셔서 그게 말도 안 되는 접대성 멘트인 줄 알면서도 날아가게 기분 좋아졌던 올리브나무였습니다. (그런 말을 듣고 너무 좋아한다고 비웃지 않으실 거져~~~여러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