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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외국인 시어머니의 한국라면 보는 눈길을 무시한 걸 후회해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7. 3.

 

 

 

 

어릴 때 저희 부모님은 제게 이렇게 말씀하곤 하셨습니다.

 

"너는 어째 그렇게 면을 좋아하니?

나중에 커서 라면 공장 사장네나 국수 공장 사장네로 시집 보내야겠구나!"

 

그렇습니다. 정말 건강을 위해 라면을 자제했 왔을 뿐, 그 쫄깃거리는 한국라면 맛은 평생 저를 유혹하곤 했었지요.

그런 제가 한국라면이라고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는 그리스의 로도스로 이사오게 되었고, 마트에 있는 서 너

종류태국라면은 뭐랄까, 양은 한국라면 반 만한 것이 이게 무슨 맛일까 알 수 없는 그런 맛을 내고 있었습니다.

면발은 또 왜 그렇게 퍽퍽하던지요.

안습

김치, 떡볶기도 쉽게 못 먹는데 라면도 못 먹으니, 과거 면발의 여왕이라 불리울 만큼 면을 좋아했던 저이니 만큼,

이제 이탈리안 레스토랑 주방장처럼 신속하게 갖은 종류의 스파게티를 만들어(오해하면 아니되세요! 맛이 그렇다

는 게 아니라 속도만!) 한국라면과 국수가 귀하게 되버린 슬픔을 달래고 있습니다.

 

이런 저의 사정을 아시는 부모님은 저를 불쌍히 여기셔서 가끔 라면을 국제소포로 보내 주시곤 했는데요.

한국에서 택배가 처음 왔을 때는 시큰둥하게 뭘 저렇게 많이 보냈다지? 라는 표정으로 쳐다보시던 시어머님께서

요즘은 한국에서 택배가 오기 무섭게 제가 개봉하길 기다리시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바로 한국라면, 한국참기름, 한국고춧가루, 한국참깨, 한국과자 때문인데요.

 

태어나 단 한번도 맛 본적 없는 이런 음식과 식재료들을 한국인 며느리로부터 받아서, 가랑비에 옷 젖듯 맛 보

세월이 몇 년!

이제는 그 특별함에 반해 한국에서 택배가 오는 날은 저희 시누이까지 놀러와서 모녀는 함께, 차마 달라는

말을 못 하고 박스 개봉을 뚫어져라 구경하고 있게 되었습니다.

ㅎㅎㅎ

물론 한국 부모님께 이런 시어머님의 상태(?)에 대해서 말씀드렸고, 엄마는 더 많은 양을 보내 오기 시작하셨습니

다. 당연히 저는 시어머님께 이런 한국의 물건들을 조금씩 나누어 드리게 된 것이지요.

그런데 저희 엄마가 막내동생 출산으로 몇 달간 미국에 계시게 되면서 한 동안 한국에서 택배가 올 수 없게 되었

고, 저희 집 라면이 똑 떨어져 버린 것이지요.

 

아쉬운 대로 저희 엄마 표현을 빌어 '맛 짜가리도 없는' 태국라면이라도 감사하게 먹자 싶었고, 그리스에 흔한

피차리아 메뉴판의 스파게티들을 폭풍 속도로 차례로 만들면서 한국라면이 없는 그 외로움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축하2한국라면! 얘들아! 내 비록 너희를 먹을 수는 없으나

내 맘엔 언제나 늬들이 있단다!

요깐 스파게티 아무리 그리스 햇볕을 머금은 천연 재료로 맛있게 만들어도

너희를 한번씩 맛 봐주는 그 묘미에 비할쏘냐!!!

아~~~그리운 한국라면들아~~~!!!

 

.....라며 한탄하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아 글쎄, 지난 주 미국에서 동생이 그리스로 휴가를 오며 복잡한 짐 속에 저를 위해 그 귀한 한국라면 몇 봉지와

인편으로만 배달할 수 있다는 고귀함의 끝판왕인 떡볶기 떡과 어묵을 넣어 온 것입니다!!!

샤방3아! 아름다운 내 동생! 라면을 여행가방에서 꺼내 놓는 네 모습을

차마 눈부셔서 쳐다볼 수가 없구나!!!

앗! 떡볶이 떡에서 그리스 햇볕보다 더 강한 빛이 막 뿜어져 나오다니!!!

 

동생이 가져다 준, 고귀함의 끝판왕 쌀떡과 어묵에 버섯까지 투척해 떡볶기를 만들고 있는 행복한 현장.

딸아이 왈 "엄마, 너무 좋다.... 한국의 맛이야..."

 

 

 

그런데...

그 몇 봉지 안되는 라면을 그만 저희 시어머님께서 목격하신 것입니다!

살짝 끓여 먹고 싶어서 쳐다보시는 그 눈빛은 뭐랄까, 이제 막 라면 끓이기에 입문하여 물 맞추기에 성공해 나가는

소녀의 눈빛이었지요!

뿌잉3

그러나 저는 이 몇 봉지 않되는 한국라면을 나눠드리는 게 아쉬워서 처음으로 그만 그 눈길을 모른 척 하고야

만 것입니다!!

엉엉내, 내, 내가 왜 그랬을까...그만 라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광채에 눈이 멀었구나...

 

그런데 시어머님은 그런 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오늘 제게 손이 많이 가는 돌마다끼아를 요리해 한 접시

갔다 주시며, 제가 한국 갈 때 부모님께 뭘 좀 선물로 보내면 좋겠냐고 물으셨습니다.

웃겨크헉! 죄송해요! 어머님!

 

어이구..그 라면 몇 봉지 못 나눠 드린게 왜 그렇게 부끄럽던지요.

 

사실 동생이 이번에 가져다 준 라면이 상당히 매운 것들이어서 매운 것을 거의 못 드시는 시어머님께서는 어차피

드실 수 없는 종류의 라면이었는데도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답니다.

 

한국에서 돌아올 때, 원래 나누어 드렸던 순한 맛 한국라면을 꼭 사다 드려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날이었습니

다.

한국참기름, 고춧가루, 참깨, 과자도요.

한국제품에 푹 빠지신 시어머님은 이런 한국라면 덕분에 그리스가 세계 중심이란 생각에서 조금씩 벗어나고 계신

것 같아서, 저는 한국라면이 심청이로 여겨진답니다! 어머님의 눈을 뜨게 해 주었으니까요!

 

 

여러분 즐거운 수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 제게는 고귀함의 끝판왕 쌀떡볶기와 어묵을 손쉽게 드시는 여러분,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닌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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