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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속의 한국

한국여자여서 받은 오해, 한국어로 해결되다!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7. 10.

 

 

 

 

 

어제 이야기에 이어서 말씀드릴게요.

2013/07/09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내가 한국여자여서 제대로 오해한 그리스인 내 친구

 

그 모임은 예상치 못한 자리였습니다.

작년 연말 연일 이어지는 손님 치르기에 분주한 때였는데, 딸아이의 친구 알리끼의 엄마 마리아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올리브나무, 아테네에서 옛날 병원 동료들이 로도스로 휴가를 왔어.

그래서 야외에서 바비큐나 하려고. 마침 내일 모처럼 비가 안 온다고 하네?

나머지는 올리브나무도 아는 친구들인데 올 수 있지?

그리고 알리끼 생일 축하도 하려고 해."

 

 

알리끼는 크리스마스에 태어나서 늘 가족끼리만 생일 파티를 해 왔다고 합니다. 모두 각자의 가정에서 바쁜 때이니

말이지요. 그래서 올해도 그냥 넘어가나 했었는데 마리아는 어차피 친구들이 모이는 것이니, 간단하게 케이크를

준비한다고 했습니다.

 

아마 딸아이의 단짝 친구인 알리끼의 생일 파티를 겸해서 하는 바비큐 모임이 아니었다면, 저는 그 모임에 안 갔을

것 같습니다.

성격이 명랑한 마리아는 원래 둘이 만나다가도 갑자기 제가 모르는 다른 사람을 예기치 않게 불러내는 경우가 많습

니다. 덕분에 불려온 사람도 저도 만나는 순간 당황할 때가 많았지만, 덕분에 참 여러 새로운 사람을 알게 되는구나

감사하기로 했답니다.

 

그런데 이 모임은 이미 제가 잘 모르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분명히 예상치 않은 몇몇은 더 부를 것만 같았으니까요.

어떻든…

저는 생일 축하, 그것 때문에 저희 집에 기거하던 손님들을 매니저 씨에게 인계하고, 빛의 속도로 김밥을 만들어서

그 모임에 참석했습니다.

 

 

아이들 중, 가장 오른쪽 아이가 알리끼입니다.

 

모임을 했던 아름다운 장소이지요.

 

 

제가 그 경치 좋은 곳에 도착했을 때 약 삼십 여 명의 낯선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마리아는 저와 다른 사람들을

한 사람 한 사람 일일이 소개시켜 주었습니다.

역시 한국인을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한참 동안 북핵 문제에 대해 물었고, 김정은과 김정일 미라에 대해서도 한참

을 물어보았습니다.

저는 늘 듣는 질문이기 때문에 정해진 수순을 밟듯 질의응답(^^;) 시간에 임했습니다.

 

그런데 그 중 나이가 지긋하고 신경외과의라고 자신을 소개한 아테네에서 온 남자분은 좀 더 심도 있는 질문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한국어는 일본어 중국어와 다르지요? 어떻게 다른가요? 글자가 완전히 다른가요?

한글이요? 한글은 누가 언제 만들었지요?

한국어로 한번 말 해보실래요? 한국어를 듣고 싶군요. "

생각중

 

저는 손에 들고 있던 커피를 마실 새도 없이 그분의 질문에 차근차근 대답했습니다.

 

"올리브나무, 나 좀 도와 줄래?"

샤방3아이쿠. 다행이다.

 

마리아가 저를 그 속사포 질문 손님으로부터 구해 주었네요.

 

식사를 어느 정도 하고 나자, 알리끼 아빠는 커다란 케이크를 들고 등장했습니다.

그리스에서 일반적으로 생일 축하 노래를 하는 순서대로 사람들은 함께 그리스 고유의 생일 축하곡을 불렀습니다.

 

"♪♬ 생일 축하 알리끼, 오래 살아요~ 머리카락이 하얗게 될 때까지.♬"

오케이2

라는 재미있는 가사에 톡톡 튀는 음을 갖고 있는 독특한 노래랍니다.

 

두 번째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영어 생일 축하곡 Happy Birthday to you! 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문제의 세 번째 곡 차례가 돌아왔는데요.

일반적으로 그리스에서는 지난 번 그리스인들이 인종차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중국어 흉내 내는 생일 축하 노래

를 부릅니다. (관련글 2013/06/25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한국인에게 미국보다 그리스 이민생활이 어려운 이유)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노래를 그리스인들끼리만 모이는 생일 파티마다 부르는지 정말 이해가 되질 않지만.

제가 이제껏 가 보았던 백 번도 넘는 그리스인 어린이 생일 파티에서 이 엉터리 중국어 노래를 부르지 않은 적은

별로 없을 정도 입니다.

(Happy Birthday to you, 음정에 칭칭챙총 칭총~ 칭칭챙총 칭총~ 칭칭챙총 칭.챙.총~칭칭챙총 칭총~ 이라고

부르는 것이지요. 그리고 재밌다고 막 좋아한답니다. 재미를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부르는 것이라고는 하나, 중국인

들이 들으면 깜짝 놀랄일이지요. 그걸 중국어 생일 축하 노래, 라고 칭하며 부르고 있으니 말이지요.)

 

그런데… 이날은 제가 참석했기 때문에 (마리아에게 이 노래가 얼마나 엉터리인지에 대해 이미 많은 이야길 했으므

로) 마리아는 세 번째 노래를 안하고 그냥 두 번째 노래까지 부르고 끝내려고 했는데요.

갑자기 아까 그 한국어에 대해 속사포 질문을 하셨던 남자분께서 돌발 요청을 하신 것입니다!

 

"저기, 올리브나무 씨! 그러지 말고 한국어로 생일 축하 노래를 한번 불러 주세요!

우리는 아무도 들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여행

 

헉헉. 뭐, 뭐라고? 이 잘 모르는 사람들 앞에서

나 혼자 지금 노래를 하라는 거야? 그것도 갑자기?

 

 

그런데 그의 말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눈을 반짝이며 제게 시선을 집중 하였고, 모임의 주최자인

마리아까지도 "그래~올리브나무. 한국 생일 축하 노래, 정말 들어보고 싶어!" 라고 거드는 게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순간, 수줍어 보이는 편견을 깨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습니다. 그 상황을 그녀의 선입견과 연결

시켜 생각할 수 없었을 만큼 당황했으니까요.

하지만 딱 5초 정도 망설이고, 저는 "그럼 한번 알리끼를 한국어로 축하해 줄까요?" 라며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그리스인들이 야외극장도 아닌 곳에서 그렇게 순식간에 조용해 질 수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랄 만큼

서른 명의 어른들과 올망졸망한 아이들까지 숨죽이며 저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조용한 숲 안 쪽에 자리 잡은 공터에는 제 노랫소리만 울리기 시작했습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생일 축하합니다~

사랑하는 알.리.끼~ 생일 축하합니다~"

샤방

 

노래를 부르는 내내 듣는 이들의 표정을 보면서, 한국어 생일 축하 노래가 애국가도 아닌데 이렇게 고즈넉한 느낌

을 줄 수도 있구나 싶을 만큼, 그들의 얼굴은 뭔가 신기한 언어로 불리는 (가짜 중국어 엉터리 칭챙총과는 다른)

한국어 생일 축하 노래에 푹 빠진 얼굴이었습니다.

그들의 몰입도가 얼마나 강렬했던지, 어쩌면 평생 천 번도 넘게 불렀을 이 한국어 생일 축하 노래를, 저는 태어나

여태까지 부른 생일 축하 노래 중에서 가장 천천히, 가장 아름답게 부르려고 노력하며, 가장 발음 정확하게, 그렇게

부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고즈넉한(?) 한국어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고… 사람들은 "브라보~~~~"라며 박수를 치고 환호를 했는데요.

어색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제게 그들이 던진 말은 "한국어, 정말 아름답군요. 완전 끝내줘요!"였었답니다.

 

제 평생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고 그런 과도한 칭찬을 듣고, 큰 감동을 선사한 적은 처음이지만,

그들이 한국어를 칭찬하니 기분이 정말 날아갈 듯 좋았습니다.

무슨 국제대회에서 애국가를 제창한 것도 아닌데, 어쩐지 국위선양을 한 것 같은 그런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리아는 집으로 돌아가는 제게 뺨키스를 하며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와줘서 너무 고마워. 올리브나무. 근데, 너 수줍은 성격 아니었구나!

그렇게 낯선 사람들 앞에서 망설임 없이 노래도 하고. 멋지다."

 

의도치 않게 국위선양도 하고, 한국여자에 대한 선입견도 없앤 저는

한국음식 맛있다며 싹 비워진 김밥 통을 흔들며 신나게 집으로 돌아왔답니다.

 

 

 

여러분 즐거운 수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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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승인, 답글이 며칠 늦어져도 이해해 주실 거죠? 저 오늘 오후 한국으로 출국한답니다. 사실 지난 주 부터 일 처리 하고 짐싸고 사람

만나고 정신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가 비행기 안에서 있을 시간인 내일 글은 예약 발행 될 거에요.

그리고 블로그 글은 계속 될 거에요. 매일이 될지, 일 주일에 두 세 번이 될지 아직은 모르겠지만 (미리 장담할 수 없겠지요?)

계속 포스팅 하려고 노력할테니, 늦어지는 답글에 오해 마시고 기다려 주세요. 여러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