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말하는 압력밥솥'에 대한 유럽인들의 엉뚱 반응
저희 집의 쿠쿠 압력밥솥입니다.
그리스에 이사 온 초창기에는 아시아인이 적은 이곳의 전기밥솥이 종류도 적고 맘에 들지도 않아, 그냥 그때 그때
냄비밥을 해서 먹었습니다.
어차피 저희 집에서 쌀밥을 먹는 사람은 저와 딸아이 둘 뿐이기에, 매니저 씨나 다른 손님들을 위해 그리스음식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인 저는 매일 밥을 해 먹을 수는 없으므로 그럭저럭 냄비밥으로 버티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리스에 부모님이 오시게 되면서 이 쿠쿠압력밥솥을 선물로 들고 오셨고, 저는 밥이 되는 것을 지키고
서 있지 않아도 되는 전기 압력밥솥이 새삼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십년 넘게 쿠쿠압력밥솥을
써 왔었는데, 단 한번도 고맙다라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던게 이상할 정도로 고마운 물건으로 여겨졌습니다.
저희 집에 있는 이 압력밥솥은 한국에서는 흔한 형태인, 취사 기능을 선택할 때와 취사 상황에 대해 계속 사용자에
게 말로 보고를 하며 효과음을 들려 주는 압력밥솥인데요.
저는 한국에서도 이렇게 말하는 기능의 압력밥솥을 썼었기 때문에 신기하다는 생각 없이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저희 집에 방문하는 유럽인들(그리스인들 뿐만 아니라 여러 유럽국가에서 온 친척, 친구들의 반응은 대개
비슷했습니다.) 에게는 이 한국의 '말하는 압력밥솥'에 대한 반응이 저와는 달랐습니다.
그 반응을 이랬습니다.
1. 깜짝 놀란다.
"어머? 밥솥이 말을 하네? 완전 신기하다!"
원래 컴퓨터, 휴대폰, TV 등의 첨단 기기를 제외한 유럽의 가전제품들(세탁기,오븐,전자레인지,청소기 등등)은
가전제품 표면의 사용 기능에 대한 표시가, 한국의 가전제품에 비해 자세한 설명이 적습니다.
마치 유럽의 교통표지판이 글씨 없이 그림으로 대부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고 그걸 보고 알아들어야하는 것 처럼,
아날로그 정서가 짙은 유럽인들의 성향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습니다.
친절한 설명이 가득한 우리나라 가전제품과는 좀 다른 것입니다.
이런 유럽의 가전제품 성향을 반영해서 LG나 삼성에서 만든 유럽 보급형의 가전제품들도 한국에 출시되는 것 보다
는 기능에 대해 적은 글자가 씌여 있어서, 저는 처음에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습니다.
(물론 유럽의 각 나라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보편적으로는 한국만큼 친절한 기능 설명을 하지 않는 형태의 것이 많습니다.)
유럽인들은 이런 형태의 가전제품을 주로 보다가, 밥솥 표면에 설명도 자세한데 말까지 친절하게 해 주는 것을 보
면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지요.
놀란 후 반응은 "이거 편하겠네"도 있지만, 유럽인들 정서대로 "이거 생활에 좀 방해 되지 않아? 자꾸 말을 해서?"
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난 한국말 들어서 좋다규 ~~~ 쿠쿠 양, 오늘도 수고해줘용~^^
2. 멋있다!
"끝내준다." "우와!" "대단하다." "무슨 말하는 거야? 뭐? 증기 배출한다고도 알려준다고? 우와!"
이렇게 반응한 유럽인들은 이 밥솥이 단지 말을 한다는 이유로 몹시 갖고 싶어하지만, 이내 본인들이 쌀밥을 해
먹을 일이 별로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다른 요리 기능도 있다고 말해 주어도 굳이 갖고 싶은 마음은 시들해 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당신 마음이 냄비 같구려~~~
다만 그리스인들의 경우 고기 찜요리가 있기 때문에 본래 전기가 아닌 불에 올려 사용하는 압력솥을 사용하는
가정들이 많이 있어서, 저희 시아버님은 진지하게 이걸 쿠쿠에서 수출은 안 한다니? 라고 물어보시기도 했는데요.
그리스 경기가 좀 회복되고 유럽형 모델이 개발된다면 시장성이 없지는 않다고 본답니다.
어차피 그리스인들은 가스 오븐보다 전기 오븐을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전기료 사용의 변화는 없을 듯 하기 때문입
니다.
3. 재밌다!
이 반응은 다른 유럽인들 보다는 주로 그리스인들의 반응인데요.
도대체 무슨 말을 하는지, 궁금해서 아주 죽겠다는 반응을 보이며 제게 자꾸 물어 보곤 한답니다.
"뭐라고 하는 거야? 응? 뭐라는 거야? 지금? 응?"
그리고 그리스어로 해석을 해 주면, 재밌다고 깔깔깔 뒤집어 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떻게 저렇게 자세히 얘기한데? 이러면서요.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쿠쿠 압력밥솥의 경우 고유의 로고송과 취사 후 뻐꾸기 우는 소리 같은 게 나기도 하고,
중간에 증기 배출 시 사용자가 놀라지 말라고 기차 소리 같이 칙칙폭폭 거리는 소리가 나기도 하다보니, 이 소리에
자지러지며 웃는 경우가 많습니다.
너무 재밌다는 것이지요.
평소 유머와 코믹이 일상인 그리스인들에게는 이런 가전제품의 효과음은 정말 일상의 활력을 주는 신나는 장치인
것입니다.
그럼 한국에서부터 이 쿠쿠가 하는 말을 들어왔고, 효과음도 이미 잘 알고 있는 매니저 씨의 반응은 어떨까요?
평소 매니저 씨가 갑자기 신나는 음악이 나올 때 상황과 장소에 상관없이 뜬금없이 추는 춤이 있습니다.
바로 이 춤인데요.
영화 러브액츄얼리(Love Actually)의 휴 그랜트 춤
저희 집 압력밥솥이 취사를 종료할 때, 마침 본인이 그 앞을 지나게 된다면 쿠쿠 로고송에 맞추어 이 춤을 추는 것
입니다. (아시지요? ♪ "쿠쿠하세요~쿠쿠" ♬ 이 노래요^^)
그러니까 동영상의 휴 그랜트가 하는 것 처럼,
"쿠쿠하세~" 까지는 뒷걸음질을 치고,
"~요, 쿠!쿠! (뻐꾹~뻐꾹~)" 까지는 한 손과 검지 손가락을 앞으로 쭉 뻗고 정면을 무표정 하게 응시하며
180도를 움직이며 춤을 추는 것입니다.
물론 로고송을 따라부르면서요.
저와 딸아이는 열 번이면 열번 다, 뜬금없는 이 장면에 폭소를 터뜨린답니다.ㅋㅋㅋ
여러분 신나는 금요일 되세요!
'세계속의 한국' 카테고리의 다른 글
외국인 시어머니의 한국라면 보는 눈길을 무시한 걸 후회해요! (56) | 2013.07.03 |
---|---|
오스트리아 친척들이 한국인인 나를 기다리는 결정적 이유 (24) | 2013.07.02 |
그리스인들이 한국어 숫자를 셀 줄 아는 놀라운 이유 (39) | 2013.06.26 |
외국인 남편에게 한국에서의 가장 기뻤던 선물 (23) | 2013.06.22 |
한류팬 친구가 내게 한국 가면 꼭 사다 달라는 것 (41) | 2013.06.21 |
한국전쟁 참전용사셨던 나의 그리스인 시할아버님 (60) | 2013.06.06 |
외국인 남편이 좋아하는 감자탕집에 못 갔던 슬픈 이유 (58) | 2013.05.30 |
한국의 주도(酒道) 잘못 배워 큰코다친 외국인 친구들 (45) | 2013.05.29 |
외국인들의 서툴지만 사랑스러운 한국어 인터뷰 (40) | 2013.05.27 |
그리스에서 내가 좀처럼 먹기 힘든 한국음식 (86) | 2013.05.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