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재미있는 그리스어

아무에게나 "내 사랑"이라고 말하는 참 이상한 그리스 사람들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3. 25.

아무에게나 "내 사랑"이라고 말하는

참 이상한 그리스 사람들

 

 

 

 

 

 

 

 

그리스에 세 번째 쯤, 여행왔을 때의 일입니다.

로도스 시에서 한 시간 좀 넘게 떨어져 있는 고산 마을 엠보나라는 곳에

저, 매니저 씨, 친구 스떼르고스가 함께 놀러가게 되었습니다.

세계 와인대회에서 1등을 수상한 로도스 와인을 배출한 와이너리가 있는 그 마을은,

정말 아기자기하고 특이해서 저도 참 좋아하는 곳입니다.

 

<Embona 엠보나>

 

그곳은 친구 스떼르고스의 외갓집이 있는 동네로, 당시 스떼르고스는 그곳에 별장을 짓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지난 포스팅에서 그리스사람들이 별장을 흔하게 짓는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렇다보니 그곳은 그의 친척, 그의 어머님의 사돈의 팔촌까지 많은 아는 이들이 모여사는 곳이었습니다.

저희가 놀러갔던 그날도 한 젊은 아는 여성을 마주쳤는데, 이 아가씨가 우리와 얘기하다말고 

길에서 만난 잘 모르는 관광객 유모차 안의 아기를 보더니 반색을 하며

 

"Αγάπη μου!" 아가피 무! (내 사랑!)

 

이라는 게 아니겠어요?

저는 뜨악했답니다.

 

'아니, 저 아기를 언제 봤다고, 내 사랑이래? 저 아가씨 바다랑 먼 산마을에 살면서,

옷 완전 비키니 처럼 입었을까, 좀 헤프고 이상한 여자 아닌가???'

뭥미

라고 괜한 그 아가씨의 옷차림 까지 이상하게 보며 어이없다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며칠 후 혼자 빨리아 뽈리 안을 산책하고 있는데, 어떤 나이가 좀 지긋해 보이는 남자가 자기 카페에서

커피 마시고 가라고 호객행위를 하고 있었습니다.

 

 

<빨리야 뽈리 중세 성곽 마을 안에는 이렇게 카페와 상점이 1,000여 개가 있습니다.>

 

제게도 다정하게 영어로 말을 건네길래, 그리스어로 "Οχι, ευχαριστώ" 오히 에프하리스토.(고맙지만 됐어요.)라고 

대답하자, 저를 반색하며 붙잡고는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습니다.

 

"Αγάπη μου! ελάτε!" 아가피 무! 엘라떼! (내 사랑! 이리오세요!)

헉 

'내, 내가 왜 당신 사랑이야?' 라고 생각한 저는,

반지 낀 손을 그 남자 눈앞에 흔들어 보였습니다.

그 남자는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어깨를 한번 으쓱 해보이고는 다른 사람에게 호객행위를 하러 갔습니다. 

기분이 상당히 나빠진 저는 나중에 매니저 씨에게 그 남자 이상하다고 투덜댔습니다.

그런데 매니저 씨가 어이 없게도 허허 웃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거, 그냥 접대성 멘트야.

그리고 그리스 사람들은 원래 'Μου'(나의)라는 소유격을 아무한테나 잘 붙여."

 

오잉? 접대성 멘트? 그건 그렇다 치고 아무한테나 '나의'라는 말을 붙인다고?

미친거 아냐? 왜 자기 것도 아닌데 자기거래?????

그날 밤 제 머릿속은 뒤죽박죽 난리가 났답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즈음에 시아버님께서 제게 "나의 올리브나무야."라고 다정하게 불러주신 적이 있어서

속으로 적잖이 감동하고 있었거든요.

그것도 그럼 그냥 습관적으로 붙인 '나의'인가 싶어서 급 우울해졌던 것이지요.

그리고 몇년 뒤...

그리스에 이사와서 살다보니,

정말 이건 너무 심했다 싶게, 조금만 안면을 트면 서로서로 '나의'라는 말을 못 붙여서 안달이난

그리스 사람들의 언어 습관과 마주하게 된 것입니다!!!

특히 기분이 좋거나, 애정표현을 하고 싶거나, 뭔가 부탁을 해야할 때는 더 그 증상이 심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시어머니 : "나의 올리브나무야, 설탕 혹시 여분으로 사다둔 것 있니? 케이크 만들려는데 설탕이 똑 떨어졌네."

시누이 : "나의 올리브나무야, 우리 언제 같이 외출할까? 토요일?"

오스트리아 시고모님 : "내 사랑, 나의 올리브나무야, 요즘 어떻게 지냈어?"

친척 끼끼 : "나의 올리브나무야, 다음 주 뭐할거야?"

시할머님 : "나의 올리브나무야, 네 덕분에 오늘 즐거웠다."

이웃 술라 아줌마 : "좋은 아침, 나의 올리브나무야! 커피 마시러 올래? 내 사랑?"

운전학원 강사 : "나의 귀여움쟁이, 나의 올리브나무 씨! 여기선 운전을 똑바로 해야해!

        웃기시네운전학원 강사 씨, 소리나 버럭 버럭 지르지 말것이지

            이 언어의 앞 뒤 부조화는 어쩌라는 겁니까...

 

그리하여.... 저는 모든 그리스 지인들의 소유물이 되었습니다.--;

안습

그런데 희한한건, 이렇게 '나의'와 '내 사랑'을 남발하는 그리스인들이지만,

역시 그들은 헤프지 않고 콧대 높고 도도하기 때문에

"너를 사랑해"라는 말인 "Σ'αγαπώ"(싸가포) 라는 말은 아무에게나 절대 사용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정말 사랑하는 존재에게만 사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게 참 아이러니입니다. "내 사랑"은 되고, "너를 사랑해"는 안 된다는 건가요?

물론 저는 매니저 씨에게 "내 사랑"이라는 말도 아무 여자에게나 남발하지 못하도록 단속을 시켰습니다^^;

의미없이 하는 말이라해도 제 정서로는 기분이 언짢으니까 말이지요^^

 

어떻든 환경이라는게 그러하다보니,

저 역시 이 '나의'라는 말을 남발하는 사람으로 바뀌어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친구에게 친척들에게 딸아이에게 시도 때도 없이 '나의'라는 말을 저도 모르게 붙여서 말하게 되더라구요.

에휴.

혹시 제가 댓글에 여러분 아이디 앞에 '나의 누구누구님' 이라고 쓰게 되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아주세요.

이런 언어 습관 때문에 손가락이 저절로 그렇게 움직이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니 말입니다.

 헐

아마도 이건 가족문화에서 나온 언어습관들이 아닐까 짐작해봅니다.

그리스에서도 전혀 낯선 사람에게 이 소유격 '나의'를 쓰진 않으니까 말이지요.

그 엠보나의 아가씨가 아기에게 그렇게 말한 것은 아기가 너무 귀여워서였던 것이고,

성 안의 카페 아저씨도 호객행위를 하다보니 유난히 다정한 말투를 사용한 것 뿐이랍니다.

물론 조금이라도 안면을 튼 후에는 마구 남발하지만요~

아무튼 이 말이 듣기 좋기도 하지만, 이 다정한 호칭에 속마음까지 그럴거라고 속지 말아야지라고

다짐도 많이 한답니다.^^

여러분도 혹시 누군가 나를 "내 사랑" 으로 불러주길 원한다면,

그리스 친구를 한번 사귀어 보세요~

애인이 아니어도 쉽게 불러줄 거에요^^

 

'나의' 독자님들~ '나의' 방문객님들~부끄

좋은하루 되세요~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