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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 이민 초 딸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 2.끝.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2. 28.

 

 

 

 딸아이는 손을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그 작은 손을 잡은 제 손도 덩달아 떨리고 있었습니다.

"엄마, 너무 무서워~~엉엉엉.."

그런 딸아이를 지켜보는 제 눈에도 눈물이 고이고 있었습니다.

 

누가 보면 정말 큰 난리가 난 걸로 오해하기 딱 좋은 그런 장면을 연출하고 있었지만, 사실 저희 모녀가 그렇게 손까지 덜덜 떨며 마주 보고 울게 된 것은 다름 아닌 "흔들리는 치아" 때문이었습니다.

이민을 오고 1년 동안은 정말 제 정신이 아닌 상태로 넋을 놓고 지냈었던 저에게(그땐 길도 모르고 그리스어를 못 알아듣는 부분도 많았고, 겨울엔 태어나 처음 보는 형태의 폭우가 너무 무섭게 와서 집 밖에 3주나 못 나갔던 적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 일은 정말 갑자기 닥친 일이었습니다.

 

별안간 마리아나의 아랫니 하나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아이가 1학년에 입학이나 하면(여긴 한국 나이로 7세 가을에 입학해요.) 젖니를 갈겠거니 맘 놓고 있었던 저에게 정말 갑작스런 일이었고, 겁이 무척 많은 마리아나에겐 말할 것도 없이 당황스런 일이었습니다.

이민 전엔 이민 준비를 하느라, 이민 후엔 그렇게 1년을 이곳에 적응한다고 넋 놓고 지내느라, 정말 저에겐 이 맘 때 아이들이 젖니(유치)를 가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정보가 없었습니다.

부랴부랴 인터넷을 뒤지고 정보를 찾아 보았지만, 실질적인 부분에 대해 저에게 조언을 해줄 사람이 주변에 없었고, 그리스인 가족 친척 중에도 마리아나가 제일 큰 아이어서 물을 곳도 없었습니다.

마리아나보다 더 큰 아이들을 둔 미국 동생이나 한국 지인에게 전화해서 물어 보려니 시차가 잘 맞지 않아 통화가 잘 안될 때가 많았고, 저는 이러다 덧니라도 나면 큰 일이다 싶어 아이에게 일단 치과에 가보자고 재촉했는데요.

아이는 어릴 때 한국에서 재미있는 어린이 치과에서 치료나 검진를 받아 보았으면서도 치과, 라는 말이 나오기가 무섭게 "엉엉엉엉…"대성통곡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슬퍼2

절대로 치과는 갈 수 없다고 울어대는 아이에게, "그럼 엄마가 이 빼도록 도와 줄게." 라고 겨우 설득했고, 그럼 '나 어릴 때 친정엄마가 해주셨던 것처럼 실로 묶어서라도 빼줘야겠다' 싶어 아이를 먹는 걸로 겨우 달래 흔들리는 이에 굵은 실을 꽁꽁 동여 맸습니다.

이가 워낙 많이 흔들려서인지 실만 동여 맸는데도 피가 조금씩 나기 시작했고, 아이는 또 그걸 알고 대성통곡을 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애가 너무 울었지만, 저는 정신을 차리자 작정하고 동여맨 실 끝을 하나, 둘, 셋! 구령과 함께 힘껏 잡아 당겼습니다!!!!!!

헉

 

그런데....이걸 처음 해봐서 일까요? 이는 빠지지 않았고 덜렁거리며 아직도 잇몸에 간신히 붙어 있는 게 보였습니다!

손으로 살짝 잡아 당기면 빠질 만큼 덜렁덜렁 붙어 있는 상태여서 그렇게 해보려고 손을 갖다 대는데, 피가 또 나기 시작했고, 딸아이는 자지러지게 울면서 "엄마, 안 돼! 안 돼! 안 돼! 나 안 할 거에요~~엉 엉 엉"

엉엉

아주 경기하듯이 울어댔습니다.

 

사실 저는 그 때까지 젖니 뿌리는 이가 빠질 때가 되면 녹아 없어진다는 사실 조차 모르고 있었기에, 이가 덜렁거리는 모양을 보자마자, 

'헉, 내가 실로 이를 묶어 하게 잡아 당겨서,

뿌리가 아직 잇몸에 박혀 있고 이만 덜렁거리는 건가?'

 

싶어 또 엄청 놀랐는데요.

일단 소금물로 소독을 시키고, 덜렁거리는 이를 아직 달고 있는 아이를 품에 안아 진정시키는데 저까지 막 눈물이 쏟아졌던 것입니다.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렇게 낯선 곳에 와서, 애 젖니 빼는 것 하나 물어볼 지인이 없어서 이러고 있나 싶고, 한국이라면 고정적으로 다니던 치과도 있고, 물어볼 친구들도 있고, 하다 못해 부모님께라도 애를 데리고 가서 보여 주었을 텐데 싶어 괜한 혼자 서러움에 눈물이 왈칵했던 것입니다.

 엉엉슬퍼2

여름이라 모두 일이 바빠 출근하고 없는 빈 집에서, 그렇게 딸아이와 저는 서로 끌어 안고 삼십분이 넘도록 대성 통곡을 했습니다.

그깟 작은 젖니 하나 때문에 말이지요.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습고 창피한 일입니다.

 

 

결국 아이는 입 근처에 제가 손만 대도 자지러지려 해서, 그 덜렁이는 이빨을 그대로 놔둔 채 주말을 맞이했습니다.

토요일 저녁, 시아버님께서는 가족끼리 오랜만에 항구 근처 유적지가 있는 쪽으로 산책이라도 나가자고 하셨고, 저희 식구와 시부모님은 함께 산책을 나가게 되었습니다.

 

그 날 산책 길의 할아버지와 마리아나

 

길을 걷고 있는데 마침 견과류와 구운 옥수수, 솜사탕 등을 파는 가게가 보였는데요.

아버님은 딸아이에게 "마리아나! 솜사탕 하나 사 줄까?" 이러시며 냉큼 커다란 분홍색 솜사탕을 사서 딸아이 손에 쥐어 주셨습니다.

 

이 사진은 그날은 아니고, 초등학교 1학년 때 솜사탕을 먹는 사진입니다.

 

딸아이는 정말 좋았던지 "엄마! 이 솜사탕 진짜 크다! 우와~ 정말 좋아요~~~" 신이 나서 솜사탕을 입으로 녹여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솜사탕을 반쯤 먹었을 때, "어? 엄마! 이것 봐!" 라며 저에게 먹다 만 솜사탕을 보여 주었는데요.

 

아 글쎄, 솜사탕에 그 덜렁이던 아랫니가 떡하니 달라 붙어 있지 않겠어요???

ㅋㅋㅋ


세상에 그게 얼마나 빠지기 직전이었으면 엿이나 떡도 아닌, 솜사탕의 끈기에 떨어져버렸나 싶어 어이가 없었습니다.

 

녀석도 그게 그렇게 허무하게 빠져 버린 게 웃겼던지 깔깔거리고 웃기 시작했고, "이상하다. 엄마. 하나도 안 아프게 빠졌네?" 라며 신기해 했습니다.

ㅎㅎㅎ

옆에 있던 가족들도 "당연하지. 마리아나. 그렇게 덜렁거렸는데, 빠진다고 아플 리가 있어? 이미 전에 빼려고 시도했을 때 다 아팠을걸?" 이라며 함께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걸 지켜보던 아버님께서는 첫 이가 빠졌으니 요정이 가져가게 바다에 던져보라고 말씀을 하셨는데요.

그리스에서도 베게 밑에 빠진 이를 넣어두면 '이빨 요정'이 가져간다라는 말을 아이들에게 하곤 하는데, 아버님은 저희가 마침 항구 근처에 있으니 바다에 던져서 요정이 가져가게 하라고 말을 해준 것입니다.

사실 어릴 때부터 그런 것들은 잘 믿지 않던 딸아이지만, 그래도 신기하고 스스로가 대견했던지 '들고 있던 이'를 힘껏 바다로 던졌습니다.

??"어머!"

그런데 는 바다 속으로 들어간 게 아니라, 바닷가에 있던 바위 위에 떨어졌는데요.

파도가 철썩이는데도 '그 작은 이'는 굳건히 바위 위에 버티고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그게 비가 오지 않는 그리스의 여름 몇 달 동안 그 바위 위에 여전히 놓여 있었던 것입니다.

ㅎㅎㅎ

 

그렇게 몇 달 동안, '바위 위에 놓인 작은 이' 한번씩 구경하러 가는 것을 마치 놀이 공원이라도 가는 듯 신기해 하면서 딸아이의 젖니 빼기 트라우마는 사라졌습니다.

 

"마리아나, 몇 달만에 처음 비 오는 데 우리 네 '빠진 이' 구경 갈까?"

"우잉, 아마 이제 사라졌을 거에요~"

 

"아하하하~할아버지, 와보니 진짜 이젠 없어졌어요!"

우하하

이 '바위 위의 빠진 이' 구경하러 다닌 여름 몇 달 사이, 윗니도 하나 빠졌습니다.^^

당시 양쪽 귀를 뚫은 지 몇 달 되지 않아 첫 이가 빠진 마리아나는

이맘 때 사진에서 항상 귀걸이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나가 처음 부터 이렇게 빠진 아랫니를 자랑하며 웃었던 것은 아닙니다. 

 

첨엔 빠진 이를 이렇게 가리고 웃더니,

 

나중엔 이렇게 첫 젖니가 빠진 부분을 자랑하며 웃고 있네요.^^;; 

 

 

그렇게 몇 년의 세월이 흐르며 딸아이는 지금까지 젖니 9개를 갈았는데요.

트라우마가 사라졌으니, 두 번째 젖니가 빠질 때부터는 치과를 갔냐고요?

아닙니다.

학교에서 필요한 서류 때문에 정기 치아 검진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이 치과를 가지만 여전히 치과는 무섭다는 딸아이는, 첫 젖니 그 고생을 해서 솜사탕에 의지해 뺀 후로, 나머지 8개의 젖니 모두 혼자 흔들어 자기 손으로 자가 발치를 했습니다.

 

치과에서 정기 검진 중인 마리아나.

옆에서 매니저 씨가 계속 괜찮다고 말을 해주는 데도 손에 어찌나 힘을 주고 쫙 펴고 있던지

나중에 손가락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치과 로비에 진열되어 있던 이 조형물 때문에 더 겁 먹는 것 같아요^^

 

 

치과도 무섭고 제 손이 닫는 것도 무서워서 그럴 바엔 자기가 직접 뽑겠다며 그렇게 빼게 된 것이지요.

혼자 흔들어서 빼고, 소금물로 소독도 혼자하고, 빠진 도 알아서 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런 딸아이에게 저는 늘 말합니다.

"난…치과보다, 자기 손으로 이를 혼자 빼는 니가 더 무섭다. 딸…"

ㅋㅋㅋ

 

 

여러분 즐거운 금요일 되세요! 내일은 토요일! 이야호!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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