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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나를 떨도록 놀라게한 그리스 장례 문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1. 3.

 

 

얼마 전 교실 앞에서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리길 부모들끼리 기다리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리스 초등학교는 교실 앞에서 자녀를 교사에게 인계 받아 하교해야 합니다. 부모가 오지 않으면 아이는 건물 밖으로 나갈 수 없도록 법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늘 그렇듯 혹시라도 수업에 방해될까 삼삼오오 속삭이며 엄마들끼리 아빠들끼리 수다 삼매경에 빠져들었는데요.

데스피나 할머님은 딸아이 친구 빠나율라의 바쁜 엄마 대신 손녀를 데리러 오시는데, 68세가 되셔서 이미 연금을 받기 시작하셨는데도 놀면 뭐하냐며 공항에서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시는 열혈 할머님이십니다.

그런데 이날 따라 이 열혈 할머님께서 이상하게 풀이 죽어 계시는 게 아니겠어요?

"끼리아 데스피나!(데스피나 님) 무슨 일이 있으세요? 왜 그렇게 기운이 없으세요?" 묻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그녀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알지? 올리브나무. 지난 번에 우리 집에 차 마시러 왔을 때 봤던 우리 엄마. 연세가 많으시잖아. 근데 요즘 엄마가 몸이 많이 안 좋으셔. 최근 한 달 사이에 엄마 남동생, 조카, 사촌 둘…이렇게 네 명이 돌아가셨거든. 한꺼번에 네 번이나 장례식에 참석하시더니 당신도 기력이 쇠하셨는지 내내 침대에서 일어나질 못 하시네. 정말 속상해. 진짜 무서운 그리스 겨울 날씨 같으니라고. 어쩜 그렇게 줄줄이 돌아가실까…."

 

이 말을 듣는데, 저 역시 2년전 겨울이었던 이 맘 때 네 번의 장례식에 한 달 사이에 연달아 참석했던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건 정말 제게 대단한 문.화.충.격.을 주었으니까요.

 

2년전 겨울, 첫 장례식(νεκρώσιμη ακολουθία)은 다름 아닌 바로 옆집 할머님이 돌아가셨을 때였습니다.

할머님은 제가 그리스로 이민 와 옆집에 살면서도 단 한번도 얼굴을 뵌 적이 없을 정도로, 지병으로 침상에서 몇 년 동안 고생하고 계셨습니다. 한 동안 우리 가족은 바비큐파티를 늦은 밤 정원에서 할 때엔, 혹시라도 아프신 옆집 할머님이 잠을 못 주무실까 좀 작은 소리로 이야길 나누곤 했는데요.

 

그럼 이 장례식을 시작으로 저를 놀라게한 그리스 장례 문화를 소개하자면요. 

 

1. 그리스인들도 한국인처럼 온몸으로 통곡한다.

그 할머님이 돌아가신 날, 우린 단번에 할머님이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집에선 비명에 가까운 딸의 곡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으니까요. 감정표현이 풍부한 그리스인들은 가족이 죽었을 때 우리나라만큼이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냈습니다. 딸이 울기 시작하고 잠시 후 소식을 듣고 달려온 아들 내외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이 소린 이웃집에 들릴 만큼 컸고, 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그리스인들의 통곡 소리에 많이 놀라 대문 밖을 뛰쳐나가 상황을 파악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들 가족은 나중에 장례식 후 관이 묻힐 때에도 내내 이렇게 온몸으로 절규하듯 통곡했습니다.

다른 세 번의 장례식 역시 비슷했는데, 정말 연세가 많으셨던 다른 이웃의 할머님 장례식을 제외하고는 모두 직계가족들의 절규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제 지인이 미국 장례식에 여러 번 참석한 후에 '사람들이 슬픈 감정을 드러내는 것을 많이 절제하는 문화'가 있다는 말을 했었기에, 저는 '의례 서양인들의 슬픔에 대한 감정표현은 다 그렇지 않을까?'라는 선입견을 가졌었다가 이 모습을 접하게 되니, 갑자기 그리스인들이 한국인 만큼이나 친근하게 여겨지는 이상한 감정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2. 그리스에서는 빠르면 사람이 죽은 당일, 늦어도 하루 이틀 사이에 장례식을 치른다.

그리스에서는 우리나라처럼 3일장, 5일장을 치르는 문화가 없이, 되도록 빨리 장례식을 치르는 것입니다.

보통은 장례식을 치르는 정교회 건물이 국립 묘지(νεκροταφείο) 안에 있기 때문에, '장례식부터 땅에 관을 기 까지의 과정'을 더 일사천리로 치를 수 있기 때문인데요. 

연세가 아흔 가까이 되셨던 다른 이웃 할머님이 돌아가셨을 때는 아주 이른 새벽이었는데, 2년 넘게 침대에 누워 거의 의식이 없으셨기 때문에 딸인 술라 아주머님도 그냥 때가 왔다 생각하시고 크게 통곡하지 않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장례 준비를 하셨는데요.

새벽에 돌아가신 할머님을 그날 저녁 6시에 바로 장례를 치른다고 해서 저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이렇게 빨리 치러지는 장례식은 가족이 아닌 저에게까지도 좀 서운한 마음을 주었는데요.

우리나라 장례식은 발인 전까지 일반적으로, 전통 방식이든 종교 형식이든 그래도 사흘 동안 영정사진을 마주하며 고인에 대해 가족, 친지, 지인들이 회상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렇게 후다닥 치러진 장례식은 참 허전한 마음이 들었던 것입니다.

 

 

 3. 그리스의 장례식과 묘지 사용에는 비용이 별로 들지 않지만, 그 후엔?!

정교회가 그리스의 국교이기 때문에 세금을 통해 만들어진 묘지 대부분이 국가 소유라, 그리스인이라면 무료로 묘지를 사용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시신을 치장해 관에 넣는(관 뚜껑을 열고 하는 장례이므로 치장이 필요합니다.) 일들은 장례 업체에 돈을 지불해야 하며, 장례식이 끝난 후 국립 묘지에 한 켠에 마련된 시설에서 참석한 지인들에게 간단한 다과를 대접하는 정도의 비용은 듭니다.

그래도 기본적으로 묘지 사용료가 들지 않고 우리나라처럼 며칠 동안 식사를 대접하진 않기 때문에, 적은 비용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가능한 것이지요. 그래서 조의금을 주고 받는 문화도 없습니다.

 

그리스의 묘지들은 주로 이렇게 흰 비석을 사용해서 햇볕이 강렬한 날, 묘지를 방문하게 되면 눈이 부실 정도입니다.

 

하지만! 반전이 있습니다.

묘지를 사용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일정 기간 후에(전국 지역별로 기준이 다른데 평균 8년~15년 후) 관을 들어내, 따로 보관하는 납골당 비슷한 장소(오스테오필라키오οστεοφυλάκιο)로 옮겨야 합니다. 그럼 국립 묘지 자리는 비게 되고 다른 사람이 그 자리에 묻히게 되는 것이지요.

이렇게 무덤을 납골당으로 옮길 때 약 500유로(750,000원) 정도를 지불해야 하는데, 이 또한 국가 소유이기에 처음에만 이전 비용이 들고 그 후엔 돈을 지불하지 않습니다.

최근 그리스 신문 기사에 보면, 이 납골당 형태의 장소가 점점 포화되고 있다고 하는데요. 그도 그럴 것이, 화장을 해서 옮기는 것이 아니라 이장하듯 더 작은 관에 옮겨 보관하는 형태이니 납골당 보다는 부피를 더 차지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보통 이런 형태의 작은 관에 옮겨진다고 하네요.

 

이 국립 납골당 같은 장소인 '오스테오필라키오'를 전국 도시별로 검색해보니  

지역에 따라 이렇게 제법 갖추어진 형태로 된 곳도 있지만

 

  

이렇게 마치 창고에 상자가 쌓여 있는 것 처럼 오래된 시설도 있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꽃이 걸려 있고 레이스 깔개가 덮힌 채 있다는 것은 이 장소에 가족이 와서 놓고 갔다는 것인데,

아무래도 정말 놀랍고 낯선 형태입니다.

  

물론 이런 국립 납골당으로 이장하기 싫은 고인의 가족들은, 개인 비용을 들여 묘지를 구입하여 옮기거나 애초에 국립 묘지가 아닌, 돈을 내고 이용하는 사립 묘지에서 장례를 치르기도 하는데, 다수의 그리스인들은 국립 묘지에서 장례를 치르고 훗날 국립 납골당으로 이전하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비용 면에서 확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입니다.

 

 

4. 그리스 장례식, 다른 서양 장례식 처럼 관 뚜껑만 열린 게 아니라 더한 것이 있다!

이 마지막 소개하는 부분이 저를 정말 가장 떨도록 놀라게한 문화인데요.

OTL 다시 생각해도 후덜덜덜... 싫어요....

한번도 본 적 없던 옆집 할머님 얼굴을, 저는 장례식에서 처음 뵙게 되었는데요.

정교회 안에서 치러진 장례식에서, 관 뚜껑은 열려 있었고 약 100여 명의 사람들이 조용히 앉아 이 과정을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례식이 끝나니, 사람들이 앞쪽 가운데에 놓인 관 앞으로 길게 줄을 서서 누워있는 할머님 시신에게 고개 숙여 뭐라고 말을 하고 관을 돌아 상주에게 위로의 말을 건네며 밖으로 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뭔가 '잘 가라는 못 다한 인사와 축복의 말을 하나보다.' 생각했고, 제 차례가 되길 기다리며 줄 서 있었습니다.

드디어 제 앞으로 세 번째 사람의 차례가 되었고, 저는 그 아저씨가 고개를 숙이고 어떤 말로 인사를 하는지 지켜보았다가 따라 해야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아저씨는 누워있는 할머님 쪽으로 고개를 숙였고….인사가 아닌….

 

시신에 입을 맞추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헉

'난, 난, 이 할머님 얼굴을 돌아가신 오늘에야 처음 보는데, 살아있는 할머님도 아닌,

시신에 입을 맞춰야 하는 거야???????!!!!!!!!!!!'

 

저는 입안이 바싹 마르기 시작했습니다.

제 두 번째 앞의 아주머님 차례가 되자, 할머님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 성호를 긋고 관을 돌아 상주들에게 뺨 키스를 하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제 바로 앞의 청년은... 할머님의 손등에 입을 맞추고 나갔습니다.

드디어 제 차례가 되었고...태어나 처음 닥친 '모르는 시신에게 입맞추기' 상황에 다리가 다 후들거렸습니다. 

저는 옆집 아주머님을 생각해 참석한 장례식에서 도저히 일면식도 없는 할머님 시신에 입을 맞출 용기가 나질 않았고, 그러나 관 옆에서 울며 서 있는 옆집 아주머님 얼굴을 보니 그냥 아무 행동도 하지 않고 지나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고개를 깊이 숙여 할머님의 손등 1cm 앞에서 입을 대지 않고, 소리만 쪽 하고 내고는 황급히 상주 아주머님께 위로의 뺨 키스를 전하고 부랴부랴 그곳을 빠져 나왔습니다...

 

 

두 번째 술라 아주머님 어머님의 장례식에선, 의식이 있으실 때 저를 많이 예뻐해 주셨던 할머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이탈리아 점령기를 사셨던 분이시라 외국인은 모두 이탈리아인이라는 생각이 있으셔서, 제가 아무리 한국에서 왔다고 말씀을 드려도 제게 늘 '예쁜 아가야!' 라며 이탈리아어로 말을 걸어오셨던 정이 많으신 할머님이셨습니다.) 역시 제 가족이 아니어서인지 시신에 입맞출 용기는 나질 않았습니다.(미안해요. 할머니…)

저는 또 어쩔 수 없이 또 입맞추는 척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엉엉

그런데 알고 보니, 저처럼 친하지 않은 사람의 장례식에 참석한 그리스인들은 장례식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관이 장례식이 끝나고 나오길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장례식이 끝나면 이렇게 관이 밖으로 나오고 

장의차에 관을 실어 차가 천천히 묘로 이동할 때, 참석한 사람들도 함께 차를 뒤따라 이동을 합니다.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나머지 두 번의 장례식 역시 얼굴도 모르는 분들의 자녀들과의 친분으로 참석한 것이라, 저도 밖에서 그냥 기다리다 관이 묘로 이동하여 땅이 묻힐 때 우는 지인들을 위로하며 함께 하는 것으로 '시신에의 입맞춤'을 대신했습니다.

나중에 아테네 근교에서 장례 업체를 하는 매니저 씨 친구에게 물어보니, 이런 '시신에 입맞추는 장례 문화'는 정교회 내에서 죽은 자를 축복하는 의미로 하는 행위로 전국적으로 비슷하게 이루어지는데, 다만 경우에 따라 관 뚜껑을 닫고 진행해서 시신에게 입맞출 필요가 없는 장례식도 있다고 했습니다.

 

사진을 잘 살펴 보면 이 장례식이 왜 관 뚜껑을 열 수 없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 네 번의 장례식 이후로 2년 동안, 참석해야 하는 장례식이 없어서 다행이란 마음이 듭니다.

그리스 로도스는 요 며칠 비가 안 오더니, 오늘은 현재 10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그치지 않고 폭우가 쏟아지고 있어서,(김병만의 '정글의 법칙'의 무서운 정글 폭우 장면을 볼 때 이와 비슷하다고 느낀답니다.) 이런 날은 자동차가 오프로드 수륙양용차처럼 도로를 지나야 하는데요.

이런 그리스의 이상하고 습한 겨울 날씨에, 올해는 모든 분들이 무사히 건강했으면 좋겠습니다.

 

전 세계에 계신 여러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혹은 남반구에 계셔서 덥더라도

건강한 오늘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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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은 모두 google image가 출처입니다.

* 아름다운 여러분, 댓글도 제가 신고하지 않게 잘 생각하고 쓰실 거죠? (왜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에 붙은 문구가 생각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