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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 문구점엔 한국의 ‘이것’이 없다니!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1. 22.

 

 

오래 전 그리스에 여행을 와 아테네를 구경할 때였습니다.

중심지인 신타그마를 지나다가 한 대형 서점에 들르게 되었습니다. 마치 한국의 종로나 잠실, 강남에 있는 대형 서점을 연상시키는 여러 층으로 되어 있는 그 서점엔, 다양한 책 외에도 휴대폰 컴퓨터 등의 전자기기와 팬시상품, 문구류도 함께 있었습니다.

아테네 신타그마에 위치한 대형 서점 P

 

 

늘 보던 것과 다른 스타일의 팬시상품과 문구류에 마음이 빼앗긴 저는 1층부터 꼭대기층까지 구경하느라 정신이 없었는데요. 특히 다이어리들과 실용적이고 독특한 디자인의 수첩들에 홀딱 반했습니다. 뭔가 기록하길 좋아하는 저로서는 신나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구경을 하던 중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십 여가지가 넘는 다이어리나 수첩들이 단 한번도 열어 본 적이 없는 물건들처럼 빳빳했고, 도무지 누가 만져본 흔적이라곤 찾아 볼 수도 없었던 것입니다. 분명 유동인구가 많은 지역의 서점인데 어쩜 열어본 흔적이 이렇게나 없는지 신기할 정도였는데요.

나중에 아테네 공항에 있는 서점에서도 똑같은 현상을 발견하고 저는 몹시 희한하게 여기며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시간이 흘러 그리스로 이민을 온 후에도 대형 서점이나 문구점에 갈 때마다 역시 똑같은 현상을 발견했습니다. 

결국 궁금했던 저는, 아테네에서 살다 왔고 대형 서점에서 7년 동안 근무 중인 한국어 제자 디미트라에게 이런 현상에 대해 물어 보게 되었습니다.

디미트라의 대답은 이랬습니다.

 

"그리스에서는 물건을 쇼핑할 때 함부로 물건을 만지지 않고 조심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 문화가 있어요. 수첩이나 공책, 다이어리, 공예품 등 자꾸 손을 타면 팔 수 없도록 손상이 가는 물건은 말할 것도 없지요. 특히 대형 슈퍼마켓이나 쇼핑몰 보다 개인 소매상에서 쇼핑을 할 때는 더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지요. 그게 가게 주인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는 거에요. 물론 저희 서점에서도 필기구는 써 볼 수 있는 종이가 칸칸이 마련되어 있지만, 그 외의 물건은 그냥 조심스럽게 열어보고 만지는 것이 예의라고 여기는 문화랍니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갑자기 생각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이민 첫 해에 그리스에 여행 왔던 한국 친구들에게 로도스 중세성곽을 구경시켜 주던 중, 한 수공예품 가게를 지나다가 가게 밖에 전시된 물건을 살짝 만져 보는데 주인이 화를 내며 뛰어 나왔던 일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는 우리를 인종차별해서 이렇게 화를 내나? 만져 보지도 못 하게 할 거면 뭐하러 가게 밖에 버젓이 전시를 했나? 라며 속상해 했었는데, 그리스의 이런 쇼핑 문화를 듣고 보니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이 남의 가게의 물건을 만질 때 상당히 조심하는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에, 그에 비해 좀 과감하게 만져보던 저의 행동이 거슬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는 비단 그리스뿐만 아니라 인근 다른 유럽 국가에도 비슷하게 형성된 문화라고 볼 수 있는데요.

얼마 전 인기리에 방송되었던 프로그램 '꽃보다 누나'에서 여배우들이 크로아티아를 방문하던 중, 자그레브 시 중심가의 시장에서 김자옥 씨가 채소를 만지다가 주인으로부터 "충분히 만져봤잖아요!"라고 무안을 당하는 장면이 등장했는데요.

 

사실 이런 그리스와 인근 유럽의 쇼핑 문화를 아는 저로서는, 대형 슈퍼가 아닌 개인적으로 청과물을 취급하는 소매점에서 좀 오랜 시간 채소를 이리 저리 돌려보며 만지작거리는 김자옥 씨 모습에 심장이 쫄깃해지도록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니다 다를까 그 모습에 주인은 버럭 화를 냈고, 그런 반응에 여배우들은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 이렇게 물건을 소매로 파는 유럽 상인들의 반응이 더 예민해진 이유는 유럽 경제가 바닥을 치며 가장 큰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소매상들이기 때문입니다. 안 그래도 장사하기가 어려워진 유럽 상인들에게 사지도 않을 거면서 물건을 계속 조심성 없이 만져보는 관광객들은 미움의 대상의 되기 십상인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의 이런 쇼핑 시 물건을 조심해서 다루는 문화 때문에, 옷가게에서 손님이 옷을 입어 볼 때에도 주인은 한국처럼 "화장하셨으면 입어 보시면 안 됩니다." 라든가, "니트류는 입어 볼 수 없습니다.' 라는 말을 도리어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이제껏 그리스에서 쇼핑 하다가 옷을 입어 볼 때 이런 제약을 받은 적은 단 한번도 없었는데, 이는 그리스인 상점 주인들이 친절하기 때문이 결코 아니라, 그리스인 손님 뿐만 아니라 인근 유럽에서 오는 관관객들이 알아서 조심하니 제재을 굳이 가하지 않는 것입니다.       

 

작년 여름 옷 가게 탈의실에서 새 옷을 입어 보려는 딸아이에게 "조심해서 입어야 한다" 라고

주인이 아닌, 도리어 엄마인 제가 주의를 주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는, 식당이나 카페테리아에서 먹은 후 잘 치우지 않고 서비스를 누리는 그리스인들의 문화와 정말 상반되는 문화라 좀 모순이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럼, 결론적으로 이런 쇼핑 문화 때문에 한국 문구점엔 있는데 그리스 문구점엔 없는 것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바로 '견본(샘플)'입니다.

한국에서는 조금만 큰 규모의 동네 문구점에 가도, 수첩류나 공책류를 자세히 열어보며 편하게 구경할 수 있도록 <견본(샘플)> 이란 글씨가 붙은 물건들이 종류마다 하나씩 존재하는데요.

작년 여름 한국에서 대형 서점에 갔을 땐, 이런 문구류의 견본 문화가 몇 년 사이 더 체계화 되어 있는 것에 깜짝 놀랐었습니다. 대부분의 문구류엔 견본이 존재하는 듯 했습니다.

 

즉 그리스 문구점에는 견본을 굳이 두지 않아도, 팔 수 없게 될 정도로 물건을 만져 보는 쇼핑 문화가 없다는 이야기인데(물론 어디나 그렇듯 물건을 뒤지며 쇼핑하는 사람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닙니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조심하지 않고 견본품을 마구 뒤적여 보고 물건을 살 수 있는 서비스를 갖춘 한국의 문구점이 쇼핑하기엔 훨씬 편하다는 마음이 듭니다.

이런 그리스의 쇼핑 문화 떄문에 이곳에서 문구류를 쇼핑할 때는 저 스스로 조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이에게도'살살 만져야 해!' 라고 조심시키느라 신경이 곤두서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12월, 2014년 다이어리를 사러갔을 때입니다.

 

 

다만, 견본 문화가 갖추어진 문구점에서 맘 편하게 물건을 만져보며 쇼핑할 수 있는 서비스에 익숙해진 한국인이 그리스나 인근 유럽을 여행할 때는, 이렇게 조심스럽게 물건을 만져야 하는 쇼핑 문화를 이해하고 특히 소매점에서는 각별히 주의하는 것이 여행 중 괜한 오해를 사지 않는 방법이란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 물론 그리스에화장품 가게엔 한국처럼 견본(샘플)이 존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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