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미'를 남자 이름으로 사용하는
깜놀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에 오기 전, 제 평생 '미미'라는 이름을 들으면 떠오르던 것은 이런 이미지였습니다.
오! 어른이 되어 딸아이에게 사주면서도 기분이 좋아지는 미미 인형!
제가 어릴 때는 서구적인 얼굴의 바비 인형 보다도, 미미월드에서 만든 이 미미 인형이 최고의 인기였습니다.
그리고 제게는 상처를 안겨준 존재이기도 했지요.
미미인형이 아이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했을 때, "나도 미미가 갖고 싶어요" 라는 제 소원에,
평소 궁상맞을 만큼 검소하셨던 부모님께서 사다 주셨던 인형은 얼굴만 미미와 닮았을 뿐, 팔다리가 쉽게 빠지고
인형을 앉히면 무릎이 구부러지지 않는 소재로 만들어져 쩍벌 다리가 되던, 시장의 이름없는 인형이었던 것입니다.
그래도 동생들이 커가며, 딸이 셋이나 있는 집이라 가끔 자비로운 부모님의 친구분들이 명절 선물을 사들고 오셨
는데 그 중 미미 인형도 있었고, 우리는 그 미미들과 쩍벌녀 인형을 한데 모아 미용실 놀이를 한다며 돌이킬 수
없는 삭발을 시키기도 했고, 내 옷을 몰래 잘라 인형 옷을 만들었다가 엄마한테 들켜 당시 국민 회초리 구두 주걱으
로 뒤지게 맞기도 했었습니다.--;
미미는 저에게 그런 존재였기에, 친구들 이름 중에도 유미,정미,선미 처럼 '미' 자가 들어가는 이름은 어쩐지 이뻐
보이기 까지 했던 것이지요.
그리고 성인이 되어 외국 사람들을 알게 되면서 서양국가에서는 이 '미미'라는 이름을 본명으로 갖고 있거나 예명
으로 사용하는 일반인, 연예인들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어쩐지
예뻐 보이곤 했었습니다.
2010 Miss America(Puerto Rico) Mimi Pabon (미스 아메리카 "미미 파본")
그런데 그리스로 이사온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저의 이 미미에 대한 이미지를 확 깨는 사건이 생겼습니다.
당시 막 결혼 해서 시 외곽에 대궐같은 집을 지은 친구가 있었는데, 집들이를 한다고 해서 가게 되었습니다.
그 집에 너무 귀여운 통통한 고양이가 있어서, 아휴 예뻐!!!! 라고 말하는 제게, 친구는
"인사해. 미미야!" 라고 고양이 이름을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당.연.히. 여자 고양이라고 생각하고 "아이구, 니가 미미구나. 너무 이쁘네~~~" 라고 쓰담쓰담을 했답니다.
그러다 내 무릎에도 앉고, 제 다리를 휘감고 돌던 미미가 갑자기 애교를 부리며 발라당누웠는데,
아니! 거기에 여자 고양이에게 있어서는 안되는 물건이 떡 하니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어?? 얘 남자야???" 놀라서 다시 묻는 제게,
친구는 별 다른 설명 없이 "미미라고 했잖아." 라고 대답할 뿐이었습니다.
저는 몹시 혼란 스러웠지만 그 자리에 있던 누구도 그것에 대해 궁금해 하지 않았고 대궐같은 집을 구경하기에
바빴기 때문에 그냥 궁금한 걸 꾹 참고 있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저는 매니저 씨에게 이 미미라는 이름의 정체에 대해 다급하게 물었습니다.
매니저 씨는 당연한 걸 말해주듯이 그 궁금증에 대답을 해주었습니다.
" 미미Μιμή는 디미트리스Δημήτρης의 약칭이야. 그리스에서는 이름의 약칭을 많이 쓰는 거 알지? 내 이름처럼.
디미트리스는 미미, 미미초,미초 등의 약칭으로 부를 수 있는데, 미미라는 이름을 흔하게 쓰는 편이야."
그러니까 디미트리스가 미미라는 소리인거야???
쉽게 말해, 우리나라에서 김정훈 같은 이름을 훈아~, 이준혁 같은 이름을 혁아~ 라고 줄여서 부를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 이름들 중엔 성인의 이름에서 온, 부르기에 긴 이름이 많기 때문에 이렇게 줄여서 약칭으로 이름을 부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제가 자주 소개했던 끼끼의 경우에도 원래 까솔리끼가 본명인데, 대부분의 사람들을 그녀를 끼끼
라고 부르고, 이 끼끼라는 이름은 까솔리끼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여성들에게 공통적으로 사용되는 약칭입니다.
마치 영어권 이름 중에 엘리자베스를 리즈, 엘리, 베스 이렇게 부르는 것과 비슷한 원리라고 할 수 있는 것이지요.
아무튼 긴가민가 했던 저는 이 미미라는 이름이 어느 정도 빈도로 그리스에서 사용되는 지 알아보기 위해,
제가 아는 모든 디미트리스를 만날 때마다 불러보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첫 상대는 가게 직원 디미트리스였는데요.
그는 평소 주말이면 취미로, 숲에서 매를 사냥하는 상당히 활동적인 성격의 근육남입니다.
사냥개와 함께 사냥 중인 디미트리스 / 바다로 다이빙 하는 디미트리스
저는 일에 열중해 있는 그의 뒷 통수에 대고 "미미!"라고 불렀습니다.
그러자 그는 바로 뒤를 돌아보며 "응? 뭐?" 이러는 게 아니겠습니까?!
아아아..아무리 그게 디미트리스의 약칭이라고는 해도, 한국에서 미미 인형을 사랑해온 제게는 누가봐도 상 남자인
디미트리스를 미미라고 부르는 것도 이상하고, 그가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하는 것도 너어~~무 이상했습니다.
게다가 디미트리스와 같은 뿌리의 여성이름인, 디미트라에게도 미미라고 부를 수는 있지만,
여성의 경우 도리어 이 미미라는 호칭을 그리스에서는 자주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아직도 남자에게 이 미미라는 호칭을 부르는게 어색한 저는 여전히 이 호칭을 사용하지 않는답니다.
도리어 제가 좋아해서 자주 사용하는 그리스 이름 약칭은 따로 있습니다.
디미트리스의 어머님의 이름인데, 그녀의 이름 약칭은 "파트라" 입니다.
그럼 파트라의 원래 본명이 뭐길래, 제가 본명보다 약칭을 좋아하냐구요?
그녀의 본명은 바로
클레오파트라 Κλεοπάτρα 랍니다.ㅎㅎㅎㅎ.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는 원래 고대 마케도니아(현재 그리스 북부 지역)인이었다고 합니다. (현 마케도니아 공화국은 고대 마케도니아와 전혀 다른 지역이랍니다. 그리스인들은 이 이름을 도용한 부분에 대해 상당히 불쾌해 하고 있습니다.이 이야긴 다음에.)
그래서 이 이름은 지금까지도 그리스에서 간혹 찾아 볼 수 있는 이름이고, 그녀가 그렇게 유명해지기 전부터 그리스에 있었던 이름이기에, 누구도 이 이름을 어색해하지 않는답니다.
하지만 제가 아는 클레오파트라는 두 명인데, 모두에게 저는 파트라, 라고만 부른답니다.
클레오파트라라는 이름 속에서, 찰랑이는 검은 단발머리의 이집트의 그녀를 도저히 떠올리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도 모르게 형성된 고정관념이란 참 무서운 것 같습니다.^^
여러분 오늘 이야기, 재미있으셨어요?
혹시 여러분 중 꽃미남 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하신 분들께
그리스 남자 이름 '미미'를 추천해봅니다.
그리고 주변에 여러분을 스트레스 받게 하는 여성이 있다면,
(직장 상사 또는 어쩔 수 없이 만나야 하는 쫌 성격 이상한 여성)
"당신에게 그리스 이름을 하나 지어드릴게요" 라며 파트라라고 가끔 불러주시는 것도
여러분의 정신 건강에 완전 좋지 않을까요??
물론 클레오파트라가 본명이라는 건, 그녀에게 쉿 비밀로 하셔야해요!~^^ㅎㅎㅎㅎ
어제 만우절 보다 백 배쯤 즐거운 화요일 되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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