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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 초등학교에서 과일상자를 나누어 준 특별한 이유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4. 5.

그리스 초등학교에서

과일상자를 나누어 준 특별한 이유

 

 

 

 

 

 

 

어제 하교 길의 딸아이는 목소리가 한 껏 들떠, 기분 좋은 일이 있을 때 늘 하는 특유의 말투로

"엄마, 오늘 참 좋은 날이야~!" 라며 즐거워했습니다.

"뭐가 좋은 날인데?" 되묻는 제게 딸아이가 보여준 것은 어떤 상자였습니다.

아이의 이름까지 일일이 써서 모든 아이들에게 이 과일 상자를 나누어 주었다는 것입니다.

상자를 열어보니, 오렌지, 아흘라디(서양배와 비슷하나 좀 더 무르고 단맛이 강한 과일입니다.),

사과, 열대과일 모음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자 옆 면에는, 상자에 담긴 과일들이 어린이에게 어떻게 좋은지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씌여 있었습니다.

 

 

만약 그리스의 학교 문화나 현 실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초등학교에서 전교생에게 공짜로 나누어 준

이 상자를 본다면, 말 그대로 "학교에서 과일 먹기" 기획 프로모션을 유럽연합 전체 차원에서 하게 되어

이렇게 과일 상자를 나누어 주었구나 라고 단순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이 상자를 받고 좀 이상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유럽 연합 차원에서 여는 프로모션이라고 해도, 기본적으로 현재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그리스에서

아이들에게 단지 프로모션 때문에 이 많은 과일을 공짜로 나누어 준다는 것이 잘 이해가 가질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세금을 많이 내는 국가 답게 그리스의 공립 초등학교는 교과서와(그리스는 교과서가 상당히 많습니

다. 그리스어 한 과목만 해도 일 년에 여덟 권의 교과서가 있습니다.) 어린이용 사전까지 공짜로 나누어 주어,

학부모가 학교에 돈을 낼 일이 별로 없습니다. 영화나 연극을 단체 관람한다든가, 소풍이나 견학을 갈 때, 1~2유로

(2~3천원) 버스 대절비 정도 걷는 게 일년 내내 내는 돈의 다입니다.

이런 나라 경제 사정에, 이런 걷히는 돈 없는 교육부 예산에서 어떻게 이 많은 과일을 제공할 생각을 했는지

특별한 필연적인 이유가 없는데 단지 이 어려운 때에 이런 프로모션을 한다는 게 좀 이해가 되질 않았던 것입니다.

 

게다가 다른 나라도 아니고 그리스에서 "학교에서 과일 먹기"를 프로모션 한다는 것도 우스웠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의 대부분의 초등학교 아이들은 학교에 토스트나 샌드위치와 함께 과일을 거의 함께 도시락으로

싸서 등교하기 때문입니다.

방과 후 활동을 하는 아이들인 경우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그리스 아이들은 점심시간 없이 아침 8시에서 오후 2시

지 수업을 합니다. 그리스의 일반 회사와 공무원, 관공서, 은행 들의 점심시간이 오후 2시부터 5시 사이

가장 더운 시간인 메시메리ΜΕΣΗΜΕΡΙ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학교도 그 패턴에 맞게 수업을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아이들은 배가 고플 수 밖에 없고, 싸간 도시락은 주로 쉬는 시간에 먹게 되어 있는데, 일종의 아점(브런치)

개념으로 먹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초등학생들의 아점의 매뉴에는 위에 소개한 대로 이미 "과일"이 포함되어

있는게 그리스의 문화입니다. 저희 딸아이의 경우도 이런 그리스의 문화대로, 등교 할 때 각종 샌드위치와

대개 두 가지 정도의 과일을 먹기 좋게 잘라서 학교에 가져가는데, 아이들은 친구들끼리 서로 다른 과일을 바꿔

먹는 재미가 쏠쏠하다고 합니다. 주로 오렌지, 키위, 바나나, 사과, 아흘라디 등의 과일을 번갈아 가며 싸 가고

요즘 그리스는 딸기 철이라 딸기도 자주 가지고 간답니다.

 

'이렇게 이미 형성되어 있는 "학교에서 과일 먹기" 문화에 왜 새삼 프로모션을 하는걸까?'

'과일을 싫어하고 편식하는 아이들 때문에 그런건가?'

'그렇다고 보기엔 국가 지출이 너무 큰데?'

 

별의 별 가설을 세워가며 생각에 잠겨 있던 제 머리 속에 갑자기 번뜩하며 얼마 전,

딸아이와 했던 대화가 떠올랐습니다.

"엄마, 딸기 좀 많이 싸주면 안돼?"

"왜? 딸기가 모자라니? 그렇게 맛있었어?"

"응... 물론 맛있기도 하지만, 세바랑 조이랑 나누어 먹고 나면 너무 조금밖에 없어."

"네가 세바랑 조이가 싸온 과일을 같이 먹으면 되잖아?"

"그게, 세바랑 조이는 형편이 좋지 않아서 과일을 못 싸올때가 많아. 조이는 어떤 땐 샌드위치도 못 싸와서

선생님이 대신 매점에서 사 줄 때도 있어."

저는 딸아이의 말에 좀 충격을 받았었습니다.

세바라는 아이는 알바니아인 부모님을 둔 아이인데, 형편이 어렵다는 것을 진작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조이라는

아이는 그리스인인데도 그렇게 형편이 안 좋은가 싶었던 것입니다.

알고 보니 조이의 엄마는 그리스인이고 아빠가 알바니아인인데, 아테네에 살다가 경기가 나빠져서 좀 더 경제 상황

이 나은 로도스로 이사를 왔다고 했습니다.

저는 정말 마음이 아파서 그 다음 날부터 딸아이의 도시락 통 안에 과일을 듬뿍듬뿍 넣어주었습니다.

도시락 통은 매일 깨끗하게 비워져서 돌아왔고, 딸아이에게 물어보면 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했습니다.

 

이 사건을 떠올리고 나니, 왜 국가 차원에서 초등학생들에게 공짜로 많은 과일을 주었는지 비로소 이해가 되었습니

다. 국가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과일을 학교에 싸 와서 먹는 문화인 그리스 아이들이, 과일을 못 먹는 경우가 많아졌

기 때문이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영세 아이들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나누어주자니 아이들이 상처를 받을 것 같아

이런 방법을 택했다는 것을 금새 알 수 있었습니다. 

지난 번 소개한대로 그리스의 초등학교에서는 무료 심리 상담 과정을 열어, 현재까지도 잘 진행되고 있고

상담사를 찾는 아이들이 적다고 여겼는지 요즘은 아예 의무 상담제로 바꾸어 모든 아이들을 정기적으로 상담하고

있습니다. 이런 그리스의 현 교육 상황을 본다면, 충분히 아이들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는 방법으로 과일을 나누어

주려 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생일 초대장을 세바와 조이에게도 주었던 딸아이가 어제 제게 와서 물었습니다.

 

"엄마, 조이가 그러는데 선물을 살 수 없을 것 같다며, 직접 만들어서 줘도 되냐고 물었어."

 

저는 딸아이에게 대답했습니다.   

 

  "물론이지. 당연히 되지. 그런 선물이 더 의미있고 너에게 좋은 선물인걸."

 

이런 저의 말에 딸아이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이미 그렇게 내가 말했어. 엄마. 나 잘했지?"

 

 토닥토닥

 

 야경

배려하고 나누는

여러분에게도 그런 좋은 하루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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