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에서 배워 클럽에서 추는
그리스의 전통 춤
처음 그리스의 전통 춤을 보았던 것은 그리스에 여행을 왔을 때, 우연히 한 결혼식에 참석하면서였습니다.
이 전통 춤은 혼자서 출 수도 있고, 군무를 이루어 출 수도 있는데 결혼식에서 처음 본 군무는 제게 대단한 충격을 주었습니다.
어떻게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모든 사람이 발을 딱딱 맞추어 스텝이 꼬이지 않고 원을 도는지,
또 원이 작게 시작해서 춤을 추다가, 중간에 누구라도 들어가서 함께 춤을 출 수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답니다.
마치 단체 줄넘기를 하는데, 갑자기 두 명이 더 들어가고 세 명이 더 들어가도 줄이 걸리지 않고 계속 단체로 줄을 넘는 것을 보는 듯한 느낌이랄까요?
먼저 몇 년 전 한 친구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매니저 씨와 하객들이 전통 춤 군무를 추는 모습을 찍은 동영상을 공개합니다. (가운데 있는 분이 신부 어머님, 그 옆의 긴장해서 자꾸 틀리는 사람이 신부의 남동생이고, 바깥 원의 청바지 검정 셔츠가 매니저 씨에요.)
정말 신나 보이지요?
그리스 전통 춤은 피스따Πίστα(Pista), 시르따끼Συρτάκι (Sitraki) 등의 여러 이름으로 불리는데, 그 이유는 발의 스텝을 밟는 모양이나 순서에 따라 춤 이름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흔히 대중에게 알려진 그리스 전통 춤의 대명사는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입니다.
잠시 그리스 전통 악기 부주끼의 선율과 전통 춤에 젖어보세요.
the 1964 film Zorba the Greek (1964년 영화 그리스인 조르바)
그 후로도 그리스에 여행을 오거나, 그리스에 아예 정착해 살게 되면서 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는데요.
사람들은 그냥 바비큐를 하는 야외 가족 모임에서도, 그리스 전통 음악이나 전통 가요(우리의 트로트와 비슷한)를 틀어 두고 모임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파티가 무르익을 때쯤 몇몇 사람들이 이 전통 춤을 추기 시작하고, 그걸 쳐다보는 사람들도 주책이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남녀노소 불문하고 동참해서 함께 추는 경우가 흔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각 가정에서 저렇게 열심히 전통 춤을 추니까 아이들도 잘 추고, 군무를 출 때도 이탈 없이 스텝을 맞출 수 있는 것이구나 생각했었습니다.
<친구 스떼르고스가 한 가족 모임에서 조카 흐리스파에게 그리스 전통 춤을 가르치고 있네요>
그래서 저도 열심히 눈으로 발로 익히며, 적어도 군무에 민폐를 주지 않는 정도의 기본 여덟 동작 단위의 스텝은 겨우 밟을 수 있는 정도가 되었습니다.
아! 다행이야... 웨이브는 안 되도, 진정 몸치는 아니었던거야 !
그런데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해, 비가 내내 오는 겨울에 학교를 다니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리스 초등학교는 체육 수업(γυμναστική임나스띠끼) 시간이 많습니다. 주 5일 수업 중 4일은 체육 수업이 있는데, 비가 웬만큼 오는 날에는 그냥 비를 맞고 체육 수업을 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폭우가 쏟아졌고 마지막 수업이 체육이어서, 아이가 걱정된 저는 좀 일찍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습니다.
운동장에 보이지 않던 아이들은 실내에서 체육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놀랍게도 아이들은 체육 선생님이 준비한 그리스 전통 음악에 맞추어 전통 춤 군무 시르따끼를 배우고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시르따끼는 맨 아래 동영상으로 보실 수 있듯이 스텝이 어려운 춤 종류입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 스무 명 가량이 함께 군무를 배우는 모습이 상상이 가시나요?
어설프게 도는데, 아직 잘 못해서 느리고 하다가 넘어지기도 하고 아휴 얼마나 귀여웠나 모릅니다.
으이구 이쁜이들, 잘 했어. 잘했어.
어떻든 저는 그냥 폭우가 오니 임시 방편으로 전통 춤을 가르치나 보다 생각했었는데요.
그런데 다른 날 학교에 가보니 비가 오지 않는 날도 아이들은 전통 춤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궁금한 마음에 선생님께 여쭈어 보니, 그리스 전통 춤은 초등학교 정규 수업 과정에 6년간 포함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1학년이 끝나고, 다시 2학년이 되어 한 체육시간 전통 춤을 추는 모습을 보았는데요.
이제 아이들은 제법 속도감 있게 즐거워하며 군무를 추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이 전통 춤이 익숙해지면 학교에서는 고학년 때는 전통 춤 수업 빈도를 좀 줄이지만, 6학년 때까지 계속
가르치게 되고, 그러다 보니 어느 결혼식이든 파티이든 아이들은 자랑스럽게 전통 군무를 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리스에서는 전통 춤을 클럽에서도 출 수 있는데요.
그리스에는 두 종류의 클럽이 있는데, 우리나라의 클럽처럼 현대pop 에 맞추어 춤을 추거나 마시고 즐기는 일반 클럽과,
전통 춤을 추며 마시고 즐기는 클럽 부주끼아Μπουζούκια (Bouzoukia)가 그 것입니다.
부주끼아는 전통 악기 부주끼 음악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생긴 이름입니다.
그리스의 전통 음악을 연주하고 노래를 부르는 유명 가수들 - 어느 클럽 부주끼아 포스터입니다.
부주끼아에서는 이렇게 전통 춤 독무를 추기도 하고, 군무를 추기도 합니다. <출처-google image>
그리스의 클럽 부주끼아의 전통 악기 연주 밴드들 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전통 춤을 추는 클럽 부주끼아가 일반 클럽보다 더 입장료가 비싸며, 사람들은 특별한 날 그곳에
가는 것으로 여기고 친구들과 가족들이 그곳에 갈 때는 한껏 멋을 내고 행복해 하며 가게 됩니다.
그도 그럴 것이 군무까지 출 수 있는 넓은 홀과 전통 악기들을 연주하는 밴드가 구비되어 있고, 간단한 전통 음식들을 먹고, 전통 술도 마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등, 그리스인 이민자가 많은 나라에서도 이런 그리스식 부주끼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연말이면 그리스 TV 프로그램에서는 토크쇼 형태로 한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데, 역시 연예인이나 일반 패널들이 토크를 하다말고 다 같이 이 전통 춤 시르따끼를 추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어느 해 연말의 TV 토크쇼에서 패널들이 전통 음악 연주에 맞춰, 전통 춤 군무 시르따끼를 추는 장면입니다.
또한 지난 번 포스팅 했던 아뽀끄리에스 가장무도회 파티 같은 곳에서도, 만약 DJ가 전통 음악을 중간에 섞어서 틀게 되면,
역시 아이들이나 어른들은 망설임 없이 전통 춤 군무를 추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한국에서의 전통 춤의 위치 저도 한국에서 고등학교 체육 시간에 단체 부채춤을 배워서 성적에 반영시킨다 해서 아이들과 연습해 시험을 봤었던 기억이 있는 데요. 그 아름다운 부채춤을 도무지 활용할 때도, 일상에서 보여줄 상황도, 볼 때도 없다 보니, 지금은 한국 국경일 기념행사에서 가끔 TV로 보여주는 부채춤을 볼 때나, 딸아이가 한국의 유치원을 다녔을 때 재롱잔치에서 본 게 다인 것 같습니다. 만약 후다닥 끝나버리는 우리나라의 결혼식 피로연 장소나 우리나라 클럽 같은 곳에서, 제가 아리랑춤이나 부채춤을 춘다면 사람들 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살짝 미쳤나???"가 지배적 반응일 것이라는 데에 한 표를 던집니다. 사람들이 우리 전통 춤을 좋아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안타깝게도 현대 한국 사회의 대중적인 장소에서는, 전통 춤도 그에 어울리는 전통 음악도 이미 어울리지 않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
그리스인들 이렇게 전통 춤을 어디서나 출 수 있는 것은,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전통 춤을 배우면서
전통 춤이 얼마나 아름답고 자랑스러운 것인지에 대한 개념 역시 교육을 받고,
그 춤을 사용할 만한 장소와 환경이 계속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나라의 오래된 전통 춤을 자랑스럽게 여겨,
지식의 가장 기초를 배우는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며
그 춤을 어떤 상황에서라도 적극적으로 추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그리스 사람들을 보면서
한국에도 이런 문화와 교육이 조금씩이라도 형성되어,
잊혀져 가는 우리의 전통 문화를 자랑스러워하며 지켜나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즐거운 월요일 되세요!
* 발칸 지역의 다른 나라들 중 간혹 그리스의 전통 춤과 비슷한 형태를 갖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팔의 위치나 스텝의 종류가 다르며, 연주 악기 종류와 음악이 다르다는 것을 참고로 말씀드립니다.
* 그리스는 어제 부로 섬머타임이 시작되어, 이제 한국과 6시간 차이가 납니다. 기분 좋은 거짓말만 하는 만우절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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