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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깨닫지 못 하고 여기까지 와서, 돌아보니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10. 7.

 





그리스어에는 할라라(Χαλαρά), 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쩜 어감이 그리 뜻과 어울리는지 '느슨한, 헐렁한' 이란 뜻의 이 단어를 생각하며, 저는 오늘 애써 할라라 한 마음을 갖고 글을 쓰려고 차분히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이 길지도 않은 안부를 전하는데 다섯 번을 끊어서 다시 써야 했을 만큼, 제게 긴 시간이 없었던 탓입니다... 

 

 


도대체 올 여름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의 4개월 정도가 통으로 날아가버린 기분이 듭니다.

살며 이런 적이 몇 번인가 있었는데 열중했던 시간에 대한 결과물이 있다면, 분명 잃은 것들도 있었기에...

저는 일들이 마무리되어가는 이 시점에서 심호흡을 크게 하며 혹시 중요한 것을 놓쳤을까 잠시 뒤를 돌아보고 있습니다.    

 

 


 

마무리 되는 그리스의 여름 시즌, 변덕스런 날씨


그리스의 여름 시즌이 서서히 마무리 되는 때가 되었습니다. 작년엔 10월 말까지도 바다에 들어갈 수 있는 더운 날씨였는데, 올 해는 그보다는 좀 일찍 선선해져서 거리가 조금은 덜 붐벼 현지인으로서는 한결 낫습니다. 

정말 여름의 그리스 시내의 거리는 차와 오토바이, 사람에 북적북적 치일만큼 관광객들로 인구가 밀집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선선해지는 것도 좋지만 이상기후 탓에 9월 말이었던 열흘 전쯤, 로도스에는 첫 비가 내렸습니다.

 

 

왼쪽로도스 만드라끼 해변여름 사진이고, 오른쪽은 같은 장소의 비오는 겨울 사진입니다. 

정말 분위기가 다르지요?

 

대개 로도스에서는 겨울의 시작을 알리는 첫비가 10월에 오기 마련인데 올해는 갑자기 9월에 첫비가, 그것도 폭우로 내리며 관광객들도 비상이었지요. 게다가 비가 내렸던 날부터 이틀 정도 깜짝 추위가 와서 이게 무슨 조화인가 했었는데 그후 날씨는 다시 예년 기온으로 돌아와 따뜻해졌지만, 이 추웠던 이틀 동안은 담요와 내복을 꺼내야 할 만큼 추웠었습니다.

마리아나는 하필 그렇게 춥고 비오던 날, 동수 씨와 외출했다가 실수로 넘어져 비가 고여있던 곳에 풍덩 주저앉았다가 집에 돌아왔고, 꼴이 말이 아니었습니다.

집에 온 아이를 보자마자 얼른 더운 물로 씻겼지만, 안 그래도 새학년이 시작되며 고단했던 마리아나는 추운 날 물 웅덩이에 넘어져 버려서인지 감기 몸살을 된통 앓게 되었고 이틀을 학교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역시 아이가 아프면 엄마는 정신이 쏙 빠집니다. 지난 주 아이가 앓는데 옆에 붙어서 간호하고 또 학교를 보내면서, 아픈 게 좀 낫자마자 때마침 과목별 첫 시험도 있어서 아픈 애를 공부를 시키느라 저는 며칠이 어떻게 갔는지 정신이 없었습니다.

아직도 감기 끝에, 목소리가 그렁그렁한 좀 안쓰러운 마리아나입니다.



 

 

 


시간의 흐름을 깨닫지 못 하는 동안 있었던 일들

 


 

책 작업

저의 책 작업은 여름 내내, 그리고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되고 있습니다. 생각만큼 결과가 빨리 나와주지 않아 스스로에게 답답함을 느낄 때가 더 많은데, 그래도 매일 매일 어떻게든 작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출판사 편집자 분께서 끈질기에 기다려주고 계셔서 얼마나 감사한지요. 책이 어느 정도 완성이 되면 여러분께도 책에 대해 자세한 소개를 하겠습니다.

 

 



사람


올 여름은 제가 그리스에 이민 온 이후로 일이 가장 많아 바빴었고,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이나 때 아닌 교통사고처럼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있었던 시간이었기에 매일 매일 만나는 이 '사람'에 대한 부분을 거의 깨닫지 못 하고 지나쳤습니다. 

이제 와 돌아보니, 공사가 다망했던 만큼 이 여름에 제가 기존에 알던 그리스인들이 아닌 '새롭게 알게 된 사람'들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게다가 그간 그리스에 살며 만나본 적이 별로 없는 다양한 직업군, 출신국의 사람들을 알게 되어 그들과의 앞으로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될 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간략하게 그들 중 몇 사람에 대해 읊어보면 이렇습니다.

 

 


1. 시크하고 까칠한 젊은 변호사 하리스

  - 이 사람은 일 때문에 알게 되었는데, 까칠하고 시크한 성격만큼이나 다림질이 어찌나 잘 된 옷을 입고 다니는지, 저는 그의 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몹시 궁금해졌습니다. 

'이 사람, 성격이 이렇게 까칠해서 승률이 높은 건가?' 싶게 새삼 드라마 속의 변호사들을 떠올리게 만드는 시크함의 완성을 보여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 사람을 보는 내내 '미드 Good wife'에 나오는 '사적인 자리에서까지도 핵심만 딱딱 말하고 자리를 떠버리는 변호사들' 이 떠올랐답니다.) 

어떻든 이 사람과 일을 하면서, 덕분에 그리스 법원의 체계와 그리스인들의 변호사 이용 문화, 그리스 법률용어 등에 대해 속속 알게 되었습니다.

 

2014년 그리스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고, 9월에 로도스 신규 변호사로 허가 받은 새내기 변호사들 사진입니다.

(사진 출처 - 로도스 신문 '이 로디아끼' Η ΡΟΔΙΑΚΗ http://www.rodiaki.gr/)

 

 

2. 로도스 카지노 호텔(카지노 때문에 로도스로 여행을 오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로도스 카지노는 유럽에서는 유명하다고 하네요.) 딜러이며 싱글맘인 헝가리인 엘리자베스

- 그녀는 마리아나 수영 강습에서 알게 된 엄마인데 헝가리, 미국, 호주와 그리스를 오고가며 딜러로 활약 중인 딜러 경력 15년의 참 신기한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수영을 하는 동안 기다릴 때, 헝가리에 대해 전혀 몰랐던 이야기들을 듣는 재미가 쏠쏠 했었습니다.

참, 그리스에 사는 헝가리인들이 그리스 비자를 연장할 때, 그리스 현지 이민국보다 헝가리 주재 그리스 대사관인지대50% 이상 싸다는 사실도 그녀를 통해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3. 완벽한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불가리아인 엄마 티나

- 처음에 불가리아인이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그녀를 보았을 때, 이제껏 동유럽 외국인 중에 그렇게 모국어처럼 그리스어를 구사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기에 경이로울 수 밖에 없었는데요. 알고보니 그리스에 어릴 때 이민 왔다고 합니다.

물론 어릴 때 이민 온 경우엔 티나처럼 그리스어를 모국어와 다름없이 구사하는 외국인들이 그리스에도 많습니다. 제 독일인 친구 까떼리나 역시 그런 경우입니다.  하지만 그녀와 대화를 여러번 나눈 후에도 그녀에게 가장 신기했던 점은, 완벽한 그리스어와 대비되게 <마치 갓 이민 온 사람처럼 불가리아에 대해 대단한 자부심을 갖고 있었던 점>입니다.

마리아나도... 그렇게 자랐으면 좋겠습니다.


 

4. 최강 동안 미국인 영어 선생님 신시아

- 번 소개했듯 그녀와는 마리아나 학원을 오가며 자주 보았던 사이이지만, 개인적인 이야길 할 기회가 자주 있진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여름에 알고 보니 그녀의 집이 저희 집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어서 이래 저래 전화도 가끔하며 좀 더 친분을 갖게 되었는데,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그녀의 나이었습니다!

처음 그녀가 자신을 소개할 때 분명 40대 중반이라고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동안이라고 여겼었는데) 알고 보니 그녀는 54세였습니다!!! (제게 50대 중반이라고 소개했었다고 하네요!)

 

지난 2월 학원 가장 무도회 파티 때의 신시아 선생님 기억하시나요?

 

그녀와 자주 이야길 나누다보니, 아마도 그녀의 동안의 비결은 긍정적이고 따뜻한 그녀의 성격 때문이지 싶습니다.^^


 

9월엔 도의적으로, 업무적으로 참석해야 했던 두 번의 큰 파티가 있었는데,

이곳에서 만난 새로운 사람들 이야긴 다음에 또 하도록 할게요.



 


한국어 시험


사실 저는 이번 금요일에 아테네에 갑니다.

지난 번에 가려다 못 갔던 다른 일도 있어서 출장 일정을 잡은 것인데, 이 때 한국어를 배우는 그리스인 친구들에게는 한국어 시험이 있어 함께 아테네를 가게 되었습니다.

주말 동안 다녀오는 짧은 일정이라 일 외에 크게 다른 것을 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어떻든 이 친구들은 올 여름을 시험 공부로 하얗게 불태웠다고 할 수 있습니다.

덕분에 제가 입시 강사가 된 듯한 기분으로 여름 내내 자주 그 친구들의 공부를 봐주고 있는데요.

최근엔 한국어 주요 기초 단어 2,000단어를 요약해 알려주게 되었는데, 그 단어들을 설명하느라 도리어 제 그리스어가 느는 것 같아 일거양득이다 싶습니다.

 

 

 

가족 주변인들의 안부

 

동수 씨강아지 막스, 고양이들(늑대 군, 말라꼬, 하양이, 못난이, 포르토갈리 등등) 모두 건강합니다.

 

올 여름 저희 시할머님을 식구들이 병원에 돌아가며 모시고 다니느라 바빴는데요. 저 역시 순번이 있었기에 출근했다 병원에 갔다가 할머님 댁에 갔다가...무슨 정신이었는지 싶게 바쁘게 모시고 다녔지만, 어떻든 다행히 시할머님은 기력을 회복을 하셨습니다.

제 글에 자주 등장하던 저희 시댁 식구들에게는 신변에 이런 저런 큰 변화들이 있었는데, 이 이야기는 다음에 자세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오랜만의 안부를 마치며

 

글이 올라오는 간격이 길어지며, 저를 걱정해주시는 분들이 몇 분 계셨습니다. 

다행히 크게 아픈 곳은 없이 그럭저럭 보내고 있는데, 내년 여름에도 이런 식으로 일이 바쁘다면 집안 일을 도와주는 분을 부르든 무슨 수를 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있답니다. 그리스인 남자에게 청소기를 들게 만드는 것보다 제가 5킬로 마라톤을 하는 게 더 쉽다고 여겨지니 말이지요.


아마 이번 주 아테네 출장이 끝나고 나면 그리스의 여름도 어느 정도 마무리 될 듯 하고,

책 작업도 어느 정도는 진행이 되지 않을까 싶어,

여러분과도 더 자주 뵐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뜸한 글에도 기다려 주시고 호응해주시고 응원해주시는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다음 글은 좀 더 짧은 간격으로 찾아뵙도록 노력할게요.


여러분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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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글(역사 공부에 관한)과 이번 글에 대한 댓글에 대한 답글방명록 답글은 늦더라도 꼭 쓸 예정이니, 여러분의 소식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