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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준 것과 받은 것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11. 3.

 

 

 

 

준 것과 받은 것

 

제가 늘 잘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왔었습니다. 몇 년이 지난 후에 '그 때 참 고마웠었다'고 다시 찾아와 이야기 하는 지인들을 보며 그런 저의 정체성에 대해 의심해본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최근 어떤 계기로 전반적인 저의 재정에 대해 점검하며 세밀하게 기록하기로 마음 먹었고, 좀 새로운 시스템으로 돈의 출납뿐만 아니라 물건으로 주고 받은 것까지 매일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10 렙따(유로화10센트의 그리스어 표현=약140원)까지도 빠짐없이 기록했고, 커피 한잔, 토스트 하나를 대접 하거나 받은 것까지 기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불과 몇 주 기록하지 않아서 저는 중요한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저에 대해 늘 잘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은 사실일지 모르나, 놀랍게도 저는 준 것보다 받는 것이 훨씬, 그것도 몇 배는 많은 그런 사람이었는 것이었습니다. 다만 평소에 누군가에게 뭘 달라고 제 입으로 요구한 적이 별로 없고 웬만하면 우는 소리 없이 혼자 알아서 처리하려 하독립적인 성격이다 보니, 평소에 이렇게나 크고 작게 받고 살았다는 것에 대해  깨닫지 못 했던 것입니다.

시어머님이 생색 없이 건네 주는 연기가 모락 올라오는 갓 만든 음식 한 접시, 식빵 한 봉지나 오렌지 주스 한 병 같은 것부터 동네 지인께서 지나가다 사무실에 들러 한 번 씩 제게 건네시는 치즈 파이, 곡물 쿠키들, 지난 여름 알바니아인 조이 엄마가 제게 건넨 싸지만 사주고 싶었다며 건넨 팔찌까지... 제가 평소에 무심히 받는 것들은 참 많았습니다.

지나간 세월들을 돌아보면,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것들, 동생으로부터 받은 것들, 친구들로부터 받은 것들까지... 참 많은 것을 받고 살아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쯤 되면 저는 '잘 주는 사람'이기보다 '많이 받은 사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까 싶을 만큼이었습니다.

다만 꼭 내가 준 사람들로부터만 받는 것이 아닌, 내가 무언가를 주지 않은 전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받은 것들이 많기에 이렇게 자세히 적어보기 전엔 얼마나 고맙게 받고 사는지에 대해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이제껏 댓가를 바라고 무엇을 준 적은 없었지만, 적어도 내가 무언가를 줄 때의 상대를 향한 애정어린 마음만은 알아주길 바랐다가, 아낌없이 몇 년을 퍼주었던 상대로부터 더 달라라는 식의 투정을 들었다든가, 한 순간 내 삶이 버거워서 신경을 쓰지 못 했을 때 싸늘한 태도를 취하는 모습에서 크게 받은 상처들이 있었고, 결국 내가 그간 마음을 다해 퍼준 것은 다 소용없는 짓이었나 회의를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일을 계기로, 어쩌면 그런 상처들때문에 '나는 주기만 하고 잘 받지는 못 하는 사람' 이라고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 하고 속아서,  내 눈을 가리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싶었습니다.

 

 

 

받은 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었다.

 

연금이나 복지가 어떻든 유럽 기준인 그리스에서는, 연금으로 먹고 살 수는 있으니 일은 안 해도 되는 노년이지만 하루가 길고 지루한 노인 분들이 동네를 산책하거나 하루 내내 커피를 마시고 있는 모습들을 목격하기 쉽습니다.

(물론 최근 들어, 높아진 세금이나 갑자기 바뀐 연금 수령 시기 때문에 생활이 어려워진 노인분들도 계십니다.)

저희 사무실 앞에도 매일 출근 하듯 지나다니는 할머니, 할아버님들이 계십니다. 매일 아침 문을 열자마자 좋은 업무되라고 인사하는 할아버지, 매일 빵을 사서 지나가며 인사하는 할아버지 등등 여러 할아버지가 계십니다.

 

그분들의 사연은 다 알 수 없으나, 일부러 들어와 반갑게 인사를 건네고 가시니 저도 함께 인사를 하게 되곤 합니다.

 

그 중 한 할아버님이 며칠 전 뜬금없이 제게 몇 마디 말을 건네셨습니다.

"난, 자네 마음을 이해하지. 겉으로는 늘 웃고 있지만 속으로 얼마나 큰 아픔이 있겠어."

저는 깜짝 놀라서 무슨 말씀이신지? 싶은 얼굴로 그분을 말없이 쳐다보았습니다.

그분은 "사실은 나도 30년을 스웨덴에서 이민생활을 했었거든. 첫 아이를 낳았을 때는 이민 초기였는데, 낯선 곳에서 아기가 갑자기 큰 수술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서 얼마나 속을 끓이며 울었나 몰라. 이젠 다 지난 일이지만, 30년을 살면서도 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있더라고. 결국 네 명의 다른 자식들은 나고 자란 스웨덴을 떠날 수 없다며 거기서 결혼해 자리를 잡았고, 병약했던 큰 아들만 데리고 30년만에 그리스로 돌아오게 되었지. "

라며 묻지도 않은 이야길 꺼내놓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아...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라며 고개를 끄덕이며 이야길 들었습니다.

 "그렇게 돌아와서 세월이 흘렀는데, 함께 돌아온 큰 아들이 올해 60살이 되었다고. "

 "어머! 그럼 선생님은 그렇게 연세가 많으세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시는데…"

 "하하하! 나를 젊게 봐주어 고마워. 하지만 아직도 내 기억력은 여전하다고. 젊을 때 외웠던 그리스 시들을 아직도 다 외우지."

오래된 고시를 연극배우처럼 멋들어지게 손동작을 곁들여 외워 보인 할아버지는 하얗게 센 머리카락이나 구부정한 다리와는 달리 눈동자만은 반짝였습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지? 여기서 얼마를 살든, 어떻게 익숙해지든,

고향과 가족이 그리운 마음 때문에 아픔이 느껴지는 것은 없어지진 않을 거야.

 난 정말 자네 마음을 이해한다네.... 얼마나 어려울 때가 많을지. 하지만 자네는 늘 웃은 얼굴이니 그 웃는 입 꼬리에 행운이 소복소복 담길 거라고 난 믿는다고. 힘 내게나! "

 

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떠났습니다.

 

나를 잘 모르던 이로부터 받은, 그러나 적절했던 작은 위로의 말은, 말을 들었던 때보다 시간이 지난 뒤 두고두고 그 여운이 남았습니다.

그리고 잠시 생각해보니, 이렇게 위로든 격려 작은 감동을 주는 행동이나 말들을 받고 그 여운으로 오랫동안 힘을 얻었던 일들도 살며 참 많았었다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제가 받고 살아왔던 것은 물질적으로 눈에 보이는 것만이 아니었음을 새삼 느끼게 되는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젠 내가 애정을 쏟은 사람들이 내 마음을 알아주지 않고 오해했을 때 느꼈던 마음의 상처에 대해서, 서운해 하거나 맘 아파 하지도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저도 당연히 받고 감사함 없이 받았던 것들이 모르는 새에 많았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세세하게 받은 것을 적어나가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겠다 싶습니다. 그게 눈에 보이는 것이든 눈에 보이지 않고 마음에 얹혀지는 것이든 말이지요. 

 

 

여러분 따뜻한 11월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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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글에서는 정말로 엉뚱한 마리아나의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답글도 빨리 못 쓰다 보니 꼭 '지난 주 낚시질 예고 해 놓고 본방에서 그 내용은 보여주지 않고 <또 다음 주에!> 라고 말 하는 예능프로를 방송하는 기분'이라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 딸의 엉뚱함이 어디에 가는 건 아니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