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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회사가 해고해줘서 고맙다는 내 그리스인 친구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2. 12.

 

 

 

"올리브나무, 나 해고 당했어!"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말인가 싶었습니다. 남편이 어이 없게 군대간지 얼마 되지도 않아 혼자 아이들을 돌보며 고군분투 중인 친구 엘레니가 저를 만나자 마자 내뱉은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번 그녀의 남편의 군대 이야기 이후 그간 블로그에 위로의 글을 남겨 주신 독자님들의 응원을 전했었고, 깜짝 놀라 "정말?"이라며 낯선 한국인들이 자신을 응원해 준다는 사실에 몹시 기뻐했던 친구였습니다.

이런 상황에 지난 토요일 그 친구 집에 딸아이를 데리고 놀러 갔을 때, 다짜고짜 이런 말을 듣게 되었으니 제가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되시지요?

 

그런데 뭐라고 위로의 말을 이어야 하나 싶어 멍하게 그녀의 얼굴을 쳐다보고 있는데, 좀 이상한 점을 발견한 것입니다.

나 해고 당했어, 라고 말하는 그녀의 얼굴분명 속상한 표정이 지배적이었는데 그 가운데 미풍처럼 묘한 흥분과 즐거움이 스치고 지나갔던 것입니다.


'이건 도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이야. 왜 저런 신나는 일이라도 있는 것 같은 흥분된 표정을 애써 감추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거지? 이건 마치 진짜 맛있는 사탕을 엄마 몰래 얻었는데 엄마가 알면 뭐라 할까 살짝 감추어 놓고 친구에게만 실토하는 어린애 같은 표정인데??'

 

제가 잠깐 이런 생각을 하는 틈을 타, 엘레니는 자신의 솔직한 속사정을 털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솔직히 계약기간도 남았는데 갑자기 정리해고 대상이 되어서 잠깐 속상하긴 했어.

알지? 요새 그리스 상황에 새 직장을 찾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지만 사실 내 근무시간이 아이들을 돌보는데 정말 힘들 때가 많아서

안 그래도 여름이 오기 전에 직장을 옮겨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거든. 야근이 좀 많아야지…

특히 작년 여름엔 점심 시간에 잠깐 쉬러 들어왔다가 (그리스는 여름엔 점심 시간이 2시~5시 사이 업무를 쉬는 회사가 많습니다.) 11시 넘어 일이 끝나는 도 허다했거든.

애들이 매일 울고 난리도 아니었어. 차라리 여름 전에 잘라 준 게 다행이다 싶기도 하고…

그리고 이렇게 계약 기간이 남았는데 회사가 날 자를 경우, 회사는 나한테 해고급여를 지급해야 하거든."

 

"해고급여? 그런 게 있어?"


"응. 어차피 직장을 구할 때까지 3개월은 실업급여를 받겠지만,

계약직이라고 하더라도 계약 기간이 아직 남았는데 해고할 경우

해고급여를 줘야 하는 게 법으로 정해져 있어."

 

그랬던 것입니다.

그리스 역시 현재 정규직보다 계약직이 더 많은 추세인데, 아무리 짧은 기간 근무했다 하더라도 회사가 계약직 직원을 해고할 경우 해고급여 라는 것을 일시불로 지불해야 하는데, 이것은 퇴직금과 별도로 지불되는 것으로 자신이 스스로 그만 둔 게 아니고 해고를 당했을 경우에는 6개월을 근무했든 1년을 근무했든 주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해고 당한 근로자'는 개인 회계사(그리스에서는 세금 종류가 많고 금액도 크기 때문에 일반 직장인들도 개인 회계사를 두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와 의논해 이 받아야 할 금액을 근무 기간별로 정확하게 산정해 세무서와 해당 회사에 제출하게 되고, 해당 회사는 그 산정된 금액을 '해고 당한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하는 방식입니다.

물론 회사 역시 이 해고급여에 대해 나중에 국가 지원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이 있고 세금부분에서 이익을 보기 때문에 이를 시행하는 것이 가능한 일일 수 있습니다.

 

제 친구 엘레니 현재 처한 입장에서는, 새 직장을 구하는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이 분명 닥친 문제이긴 하지만, 어차피 이직을 고려하고 있던 찰나에 스스로 그만두기 전에 잘라 주어서 해고급여를 받을 수 있게 되었으니 잘된 면이 없지 않은 것입니다.

게다가 현 직장에서 4년을 근무했던 엘레니의 해고급여는 평소 받던 월급의 3개월치 월급에 해당되는 것이어서, 거기에 앞으로 직장을 구할 때까지 3개월 동안 실업급여를 받을 수 있으니 당장 먹고 사는 데에 큰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닌 상황인 것입니다. 만약 이런 상황에 취업이 빨리 된다면 도리어 이 해고급여로 그간 사고 싶었던 살림을 장만할 수도 있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갑작스런 해고' 라는 좋아할 수 없는 상황에도, 그런 알 수 없는 즐거움이 그녀 얼굴에 깃들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아직 젊고 성실한 친구이니 얼마든지 재취업 할 수 있을 거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이번 엘레니의 일 그리스의 해고급여 시스템에 대한 내용을 알게 되면서, 한편으론 마음이 씁쓸했던 것은 한국의 경우 만약 계약직 직원이 6개월 일하다가 해고될 경우 아무리 계약 기간이 남아 있다 하더라도 이런 해고급여와 같은 위로금을 충분히 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었고, 현재 그리스가 경제적으로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중이라고는 하나 이미 만들어져 있는 유럽연합 기준의 복지에 관하여 국민들이 혜택을 받고 살고 있는 것은 사실이구나 싶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이 이미 경제 강국으로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고는 해도 현재 당면한 청년 실업 등으로 장기간 취업을 하지 못하거나 계약직이 정규직으로 빠르게 옮겨가지 못할 때 전전긍긍 불안감을 갖는 사람 많은데, 이는 분명 아직 선진국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국가의 복지 정책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사실 이런 복지 정책 중 하나로 국민연금을 예로 들 수 있는데요.

저는 작년까지 한국에 벌여둔 사업에서 약간의 소득이 발생했었는 이유로 국민연금 재가입에 대해 부모님 댁으로 지속적으로 독촉을 받았었습니다. 결국 국내 거주하지 않는다는 증명을 다시 보내 일을 무마시켰는데요. 재외국민이라도 국내에 소득이 발생해 소득세를 내는 것은 저 역시 당연한 일로 여기므로, 세금 납부의 의무를 다하는 것엔 아무 불만 없이 납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의료보험공단에서는 출국과 동시에 전산을 통해 자동으로 거주자가 되어 의료보험료 납부 대상에서 제외될 수 있는 발 빠른 전산 시스템을 갖추고 있는 나라이면서, 도대체 제가 해외에 나와 산지가 몇 년인데 왜 국민연금만큼은 계속 제도가 바뀌며 이런 시스템 조차 갖추지 못해서 불편함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쩌면, 다른 나라에 비해 비교적 잘 갖춰진 한국의 의료보험제도 다른 나라에 비해 여전히 문제가 많은 한국의 국민연금제도 한 단면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국민연금과 관련하여 그리스의 경우를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  정규직, 계약직, 사업자 할 것 없이 수입에 따른 세금을 투명하게 내야 하는데, 좀 과하다 싶거두어 들이는 이 세금은 나라의 복지 정책을 유지하는 데에 중요한 버팀목이 됩니다.

세금 문제를 다시 다루겠지만, 일예로 모든 사업의 경우 세무서에서 지정한 계산대만 사용해야 하고 각 사업장의 계산대는 세무서와 특별한 코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즉 영수증을 의무로 발행해야 하는데 발행할 경우 그 기록이 모두 계산대에 남아 세무서로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 여성들이 정규직이 되지 못하더라도 계약직으로나마 연금 수령 나이까지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근무 조건이 좋아서만은 아닙니다.

관광 성수기의 그리스의 근무 조건은 몰려오는 관광객 때문에 여름엔 한국보다도 열악할 때가 많습니다.

여러번 말씀 드렸듯, 그리스는 유럽 OECD 국가 중 1위, 전체 OECD 국가 중 3위의 노동시간을 자랑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 여성들은 어떻게 연금 수령 나이까지 일할 수 있는 걸까요?

        (그리스의 연금 수령 나이는 현재 그리스의 연금 제도의 개편으로 개인차가 있습니다.)


▷ 급여에 따른 국민연금을 계속 납입한 사람이라면 연금 수령 시점부터 사망 시까지 생계 보장 가능한 금액의 연금을 받을 수 있어 연금 수령일이 진정한 은퇴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망 후 배우자에게 연금이 승계 되는 제도 역시 여성에겐 큰 안정감을 주는데, 도리어 이런 안정감은 여성 역시 안정된 노후를 위해 연금 수령시기까지 근무해야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게 해서, 육아와 가사일을 병행하면서도 직장생활에 악착같이 애쓰는 경우가 많을 수 밖에 없습니다.



▷ 만약 배우자가 일찍 사망하거나 이혼을 해서 여성이 싱글맘이 된 경우, 여성 사망 시까지 법적으로 지원해주는 제도가 있어 혼자 아이를 키워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되더라도 이런 제도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고 금전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실제 제 지인인 이로 아주머님은 남편 사망 후 현재 자녀들이 이미 성인이 되었지만 15년 넘게 매달 60만원의 싱글맘 지원금을 받고 있고, 이 지원금은 이로 아주머님의 사망 시까지 유지될 예정입니다. 본인 명의의 집을 갖고 있는 이로 아주머님의 상황에도 이 정도의 싱글맘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만 했는데요. 비록 연금 수령도를 채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 두셔야 했지만 꽤 긴 기간 근무할 힘을 낼 수 있었던 것도, 싱글맘 지원금에 연금까지 수령한다면 자녀들을 결혼시키고 혼자 사는 데에 큰 문제는 없겠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복지 제도 때문에 그리스의 여성들은 출산과 2세 미만의 자녀 육아 시기를 제외하고 지속적으로 일을 하려 하는 사람이 많고, 사회 전체가 이런 분위기로 흘러가니 기혼 여성이라고 미혼 여성과 큰 차별을 받을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직장에는 미혼 여성보다 기혼 여성이 훨씬 많을 수 밖에으니 말입니다.


 

 

엘레니의 두 자녀 (좌우)

 


 

결론적으로 세금 제도와 이에 따른 복지 제도가 체계화 되어 있다면, 다시 말해 이익을 본 자에게 세금을 투명하게 잘 거둬 들이고 그 돈을 국민 복지에 잘 사용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 있다면, 사회적으로 어쩔 수 없이 약자가 된 사람들 약간의 성실성만 있어도 적어도 생계를 이어가지 못해 고통 받진 않게 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외국에 있는 제가 한국의 복지에 대해, 특히 약자에 관한 복지나 여성 복지에 관한 현주소를 다 알 수는 없겠지만 제 한국의 여성 지인들이 출산 후 직장을 그만 둔 경우, 나이나 혼인 유무 때문에 해고 당한 경우를 보면서 느낀 점이 많습니다.

만약 그들이 제 친구 엘레니 처럼 아이들을 혼자 돌봐야 하환경 갑자기 처하게 되었고 거기다 해고까지 당한 상황이 되었을, 이 갑작스런 해고에도 불구하고 든든한 복지 정책 덕에 생계 불안감을 느끼진 않아 한 줄기 웃음은 유지할 수 있면 좋겠습니다.

그런 희망 있는 대한민국이 되도록, 이제는 경제와 걸맞게 복지 정책도 선진국다운 면모를 좀 갖추어 주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은 소망을 가져봅니다.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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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철도노조 관련글에 '영웅심리로 너랑 상관도 없는 책임지지도 못할 글을 쓰지 마라. 그래서 바뀐 게 뭐냐!' 라는 댓글을 입에 담기 어려운 험한 욕설과 함께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물론 대답할 가치도 못 느껴 삭제하고 차단하긴 했습니다만, 제가 영웅이 되려 했다면 뭐 글이나 쓰는 방법으로 굳이 영웅이 되려 하겠냐는 말과, 과연 철도노조의 일이 제가 해외에 산다고 해서 한국인인 저와 상관이 없는 일일 수 있는가 라는 말을 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분이 뱉어 놓은 욕설들이 저에게 하는 말이 아닌, 약자가 살기 힘든 대한민국에 대해 한탄하는 울림으로 들렸던 것은 저만의 착각은 아닐 것 같네요. 여러분 파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