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야! 너의 얼굴 분장은 우리가 책임진다!"
딸아이를 늘 친구라고 부르는 한국어 제자 갈리오삐는 딸아이의 학교 주최로 가장무도회가 있다는 말에 환호를 지르며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안 그래도 일하느라 공부하느라 나름 바쁘고 피곤할 텐데, 그렇게까지 신경 써 준다니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들었는데요.
약속된 토요일 전교생 가장무도회 파티 전에, 저와 딸아이는 조각 케이크를 한 아름 사서 디미트라의 집에 들렀습니다.
"아니, 이 낯선 처자가 뉘신지…?^^"
화장을 이렇게 진하게 처음 해보는 딸아이는, 본인 얼굴이 몹시 낯설어서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지만, 메이크업을 해 준 디미트라가 "일년에 한번인데 어때~ 방금 너 오기 전에 내가 얼굴 분장 해준 아이는 완전 검댕을 잔뜩 칠하고 해적 분장을 하고 갔다고~~" 라며 딸아이를 달랬습니다.
그렇게 파티에 가니, 올해에도 재미있는 복장, 재미있는 분장의 아이들과 학부모들이 보였는데요.
딸아이 반 학부모들은 어머니회 소속으로 파티를 진행하는 엄마들을 제외하고는 그렇게까지 꾸민 사람이 없어서 도리어 다행이라 여겨졌습니다. (저도 아무 분장도 않했거든요^^;;)
체육 선생님께서 파티를 진행하고 계십니다.
아이들을 무대위로 올려 놓고 무대 아래에서 춤을 지휘하시는
특별 초빙 댄스 선생님 (빨간 바지)^^
앗! 그런데 500명의 파티 참석자 중에 정말 최고로 반가운 얼굴이 하나 있었는데요!
바로 얼마 전 35살에 군대에 입대한 엘레니의 남편 야니스였습니다!!
"아니, 어떻게 온 거에요?"
호들갑스럽게 반기는 다른 엄마 아빠들의 반응에 야니스는 좀 쑥스러운 듯, "훈련 끝나고 자대배치 받기 전에 휴가 나왔어요!" 라고 말을 했는데요.
마지막으로 볼 때와 달리 머리카락이 짧게 잘려 있어서 새삼 군대에 갔다는 게 실감이 났습니다.
어떻든 이 예상치 않은 만남 때문에 학부모들인 제 친구들은 몹시 즐거웠습니다.
건강해 보여 다행이었지만, 가까이서 보니 흰 머리도 제법 많던데 저렇게 흰머리가 많으면서 군복무를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싶어 좀 안쓰러운 마음도 들었습니다.
딸아이 친구 바실리끼, 엄마 엘레니, 아빠 야니스
그런데 이날 파티에는 최고로 귀여웠던 얼굴도 있었는데요.
저희 테이블에 함께 앉았던 까떼리나 친구의 아들이었는데요.
큰 아이가 1학년이라 함께 따라온 동생은, 이제 돌이 막 지난 아직 아가였습니다.
근데 이 녀석, 어휴~~조로 복장이 이렇게 귀여웠던가요??
꺄악~ 정말 귀여워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답니다.
사실 이날 파티에서 최고로 제게 큰 웃음을 주었던 얼굴도 있습니다.
짜잔~~♪
바로 이 아주머님과 친구분이신데요.
학부형이 분명한데…
공사장 인부로 분장하시고, 맞은 편엔 죄수복장의 친구분과 함께 앉으셔서, 설정을 하시느라 얼굴에 검댕을 묻히신 채 거의 웃지 않고 계셔서 차마 무서워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묻질 못해, 잠깐 웃으실 때 몰래 도둑촬영을 했답니다.
죄수복장 학부형과 공사장 인부복장 학부형
근데 이 분이 저와 대각선 방향에 앉아 계셔서 계속 눈이 마주쳤는데,
어찌나 웃기던지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간 해마다 별별 분장을 다 보았었지만, 정말 그런 복장을 자발적으로 입고 오셔 놓고, 시크한척 하고 뚝뚝하게 앉아 계시던 이 아주머님의 모습은 정말 압권이었습니다. ^^
올해 학교 파티가 유난히 더 즐거울 수 있었던 이유는, 딸아이 반의 알바니아 아이들 넷, 폴란드 아이 하나가 모두 부모님과 참석했다는 점 때문입니다.
사실 파티 티켓이 작년보다 좀 오른 인당 8유로(약12,000원)여서, 올해도 작년처럼 알바니아 아이들은 한 명도 못 오려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는데, 올해는 이민자 엄마들끼리 의논을 미리 했는지 한 테이블에 앉아 모두 참석해서 그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기뻤습니다.
제 포스팅에 가끔 등장했던 아이들끼리 친해서 어른들도 친해진 제 친구들입니다.
친구들이 앉은 뒷편에 서 있는 부모들이 있는 곳이, 알바니아인 부모들이 앉아 있던 곳이었는데요.
그 중엔 올해 전학을 온 아이가 둘 이나 되어서 이곳에서 아이 엄마를 처음 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앞으로는 서로 사진을 찍어도 민망하지 않을 만큼 점점 친해지면 좋겠구나 싶었습니다.
이날 처음 얘기를 나눈 새로운 이민자 엄마 중에 알바니아에서 프랑스어 선생님을 했던 한 엄마는, 알바니아인을 무시하는 그리스에 와서는 선생님을 계속 할 수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일용직 청소일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요.
그렇게 그리스인들에게 은근히 무시를 당하면서도 착실하게 일을 하며 자식들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같은 이민자로서 저도 큰 박수를 쳐 주고 싶었습니다.
결국 이날의 최고의 얼굴들은 어쩌면, 그렇게 힘들게 번 돈으로 아이들을 기 죽이지 않으려고 어려운 형편에도 학교 파티에 참석해서 밝게 웃고 있는 알바니아인 이민자 부모들이 아닐까 싶네요.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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