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야, 안 갈래요. 엉엉엉..나 무서워요. 엉엉엉..”
그리스로 이민 당시 딸아이는 아직 어린 나이였습니다.
모든 게 낯설었던 이곳에서의 생활에 막 적응하려고 애쓰는 중이었지요.
그런 딸아이를 매니저 씨가 억지로 끌고 어디론가 가려고 씨름하는 중이었고, 딸아이는 울며 불며 안 가겠다고 버티는 중이었습니다.
“도대체 어딜 데리고 가려고 그래?” 이상해서 묻는 제게 매니저 씨의 대답은 깜짝 놀랄만한 것이었습니다.
“응. 마리아나 귀 뚫어 주려고.”
"뭐라고????
얘가 몇 살인데 귀를 뚫는다는 거야???? 안 돼!!"
한국에선 단 한번도 애 귀를 뚫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꺼낸 적도 없는 매니저 씨였는데, 그리스에 오자마자 귀를 뚫어 주겠다고 성화이니 저는 기가 막힐 수 밖에 없었습니다.
“올리브나무, 그리스 여성들은 5세 이전에 귀를 뚫는 경우가 굉장히 많아. 그래야 파티 때 예쁘게들 하고 가지.”
저는 기가 차서 말문이 막혔지만 겨우 마음을 가다듬고 대답을 했습니다.
“있잖아. 난 너무 일찍 귀를 뚫는 게 좋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도 스무 살이나 되어서 귀를 뚫었는걸. 게다가 이런 식으로 억지로 끌고 가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아. 아무리 애가 어려도 자기 의견이란 게 있는데…게다가 이 겁 많은 애를 굳이 그렇게 데리고 가야 하겠어? “
“아냐. 두고 봐. 마리아나는 처음엔 무서워하겠지만 분명 뚫고 나면 좋아할 거야. 너와 마리아나가 성격이 다른 건 알고 있겠지? 많은 귀걸이를 고르고 치장할 자유가 주어지는 거라고. 난 알고 있어. 저 아이가 얼마나 꾸미길 좋아하는 아이인지! 난 마리아나가 예쁘게 하고 다녔으면 좋겠어.”
터키 출장길에도 꼭 딸아이 옷을 몇 벌이나 사오고 아테네 출장길에는 꼭 딸아이 구두를 사오는 매니저 씨이니, 아이가 예쁘게 꾸미길 원하는 심정이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귀를 뚫기에 너무 어린 게 아닌가 싶었던 저는 주변 그리스인들에게 부랴부랴 물어보고 다니기 시작했는데요.
대답은 한결 같았습니다.
“뭐 어때? 여기서는 다들 애들 때 뚫곤 하는데.”
저는 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딸아이와 저는 불안한 마음으로 시외삼촌께서 하시는 금은방을 찾게 되었고 바로 그 옆 가게에 어린이 귀걸이를 전문으로 파는 가게가 있어서 옆 가게 언니가 귀를 뚫어 주기로 했습니다.
벌벌 떠는 딸아이를 무릎에 앉히니 진짜 돌아가고 싶었지만, 매니저 씨의 얼굴이 워낙 완강해서 자포자기한 심정이 되었습니다.
사실 매니저 씨가 그렇게 혈기왕성하게 왕왕거리며 고집을 피울 때는 시부모님을 비롯하여 누구도 말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부분 때문에 자기 부모인데도 한번씩 시아버님과 혹은 시어머님과 크게 싸우는 매니저 씨입니다. 그러면서도 저희 부모님께는 나긋나긋 하게 굴 때가 많아서 참 자기 밥그릇은 잘도 챙기는구나 싶습니다.)
그렇게 새파랗게 질린 딸아이의 귀에 귀 뚫는 총이 겨누어 졌고, 빡 소리와 함께 귀가 폭 하고 뚫렸는데요.
아이는 마치 세상이 무너진 듯 통곡을 하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울지 않는 아이들도 많다는데, 아마 미리 워낙 겁을 먹어서 아픈 것에 서러움이 더해져서 더 크게 우는 것 같았습니다.
결국 다른 쪽 귀는 건드리지도 못할 만큼 울어 대서 한쪽 귀만 뚫은 채 집으로 돌아와야 했고 아이를 달래 겨우 진정시켜 재우고 나니, 매니저 씨에 대한 원망이 크게 밀려 왔습니다.
‘진짜, 애한테 꼭 저렇게 해야 했나…어휴. 웬수.’
그런데 말이지요.
꼭 1주일이 지난 후에 딸아이는 이렇게 말을 하는 게 아니겠어요?
“엄마. 있잖아…자꾸 거울을 보니까 귀걸이가 반짝반짝 정말 예뻐! 그리고 사실은 그렇게 아프진 않았던 것 같기도 해. 거기에 정말 예쁜 귀걸이가 많이 팔았는데, 만약 다른 한쪽도 뚫으면 그 귀걸이 중에 하나를 골라도 될까? 나는 헬로키티 귀걸이가 생각 나는데…”
부녀가 세트로 나를 놀라게 하는구나...
매니저 씨 말이 맞았습니다.
저희 딸아이는…겁이 많아 비록 귀를 뚫는 당시엔 무서워했지만, 막상 귀걸이를 하고 나니 정말 좋아했던 것입니다.
당시 귀를 뚫고 좋다고 멋내고 사무실에 나왔던 딸아이
(이렇게 어렸던 때가 있었나 싶습니다...)
이렇게 1주일 후, 자발적으로 다른 한쪽을 뚫기로 작정한 딸아이와 저는 다시 그 어린이 귀걸이 전문 가게를 찾았고, 5세 이전에 귀를 뚫어 기억도 나지 않는다는 시어머님께서도 귀를 하나 더 뚫고 싶으시다며 동행하셨습니다.
그리고..
딸아이는 귀 뚫는 총이 빡 하고 귀 볼을 뚫어도 전혀 울지 않았습니다.
그 아픔보다는 예쁜 헬로키티 귀걸이를 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큰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런데 복병은 다른 곳에 있었으니…
너무 어릴 때 귀를 뚫어 그 아픔의 정도도 기억나지 않아, 귀 뚫는 것을 우습게 생각하고 오신 시어머님께서는 귀 볼 바로 위에 구멍을 하나 더 뚫는데 예상치 않게 너무 아프셨던지 엉엉 우시기 시작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창피하니 나름 울지 않으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었지만, 그 푸른 눈에서 눈물이 뚝뚝 떨어질 만큼 많이 아프신 눈치셨습니다.
저는 어쩔 줄을 몰라 어머님을 달랬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훌쩍거리는 어머님을, 딸아이는 작은 손으로 어깨를 주물러 드리며 “할머니~ 괜찮아져요. 괜찮아질 거에요. 그만 우세요.” 를 반복했습니다.
마치 자기는 그렇게 운 적이 없었다는 듯 말이지요^^
그 후로 딸아이는 그리스의 여느 아이들처럼 이젠 특별한 날엔 보석함을 열어 귀걸이부터 고르는 재미를 알아 버렸습니다.
중요한 결혼식이나 세례식 파티에 초대 받았을 때
그리스 여자 아이들은 보통 드레스 형태의 옷을 입어야 하는데요.
그에 맞는 귀걸이를 고르는 것입니다.
3년 전 어느 세례식 파티에 초대받았던 딸아이와 시어머님
그러나 딸아이에게 또 하나의 충격적인 난생 처음 겪는 일이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발생했으니…
그 통곡의 현장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소개하도록 할게요.^^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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