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는 북미 문화와 달리 집 바닥에 카펫이 깔려있지 않습니다.
길고 뜨거우며 비가 오지 않는 여름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의 대부분의 집은 방이든 거실이든 부엌이든 모두 큰 타일이 깔려 있는데요.
여름엔 비가 오랫동안 오지 않다 보니 집 안에 먼지가 아주 잘 들어오는데, 이런 타일 바닥은 시원하기도 하고 먼지를 청소하기도 손쉽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겨울 동안 비가 많이 와, 측정 기온보다 체감 온도가 5~10도 이하로 떨어지는 으슬으슬한 날씨가 되면, 이 타일 바닥은 몹시 춥기 때문에 카펫을 깔게 되는데요.
도대체 카펫을 어떻게 까는 것인지, 이민 후 첫 겨울을 맞았던 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지 전혀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방바닥이 뜨뜻한 온돌문화에서 평생을 살다가 온돌 문화가 아닌 그리스로 이사를 와보니, 한국처럼 그냥 거실에 큰 카펫을 까는 그런 정도로 카펫을 까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시어머님을 비롯하여, 친척여성들, 이웃 아주머니들의 카펫 까는 광경을 목격하며, 저는 정말 신기해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한 마디로 바닥의 타일이 거의 보이는 부분이 없이 깔기 위해 넙적한 카펫, 긴 카펫, 정사각형 카펫, 직사각형 카펫, 원형 카펫 등 모양이 각양 각색이었고, 내가 필요한 모양의 카펫을 길이와 넓이를 미리 측정해 카펫 가게에서 맞추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식탁 아래 까는 것 따로, 복도에 까는 것 따로, 소파 아래 까는 것 따로, 부엌 싱크대 옆에 까는 것 따로, 화장실에 까는 것 따로…등등 조각 조각 연결되지 않은 카펫들이 집집마다 넘쳐났으며, 소파에도 두툼한 겨울용 깔개 같은 각양 디자인의 천을 씌우는 것이었습니다.
이민 첫 해에 아는 게 없었던 저 역시, 어머님을 따라하며 이런 저런 조각들의 카펫들을 집안 구석구석 일단 빈틈 없이 깔았는데요.
그래도 한국에서 온돌 문화에 살다가, 벽난로와 히터 종류로 겨울을 나려니 첫 겨울엔 정말 추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습니다.
게다가 한국의 대략 2~3배 정도 하는 그리스 전기료를 감안한다면, 히터 역시 원하는 대로 막 틀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 그리스의 전기료는 이렇습니다. 그리스에서는 기본 전력 사용에 대한 전기료가 비싼 것은 아닙니다. 태양열을 이용하는 집들도 많고, 시에서도 태양열을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전기료 자체가 비싼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전기료가 한국에 비해 높은 이유는 다름이 아닌 전기료에 부가되는 세금 때문입니다.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 살았던 한국에서의 12년 동안의 매년 평균 전기료와,(상승률을 감안하더라도) 그리스의 전기료는 분명히 큰 차이가 있습니다. 심지어 한국에서 지금보다 조금 더 큰 집에 살았던 것을 고려한다면 그 차이는 더 극명할 것 같은데요. 한국에서 세무공무원으로 있던 저의 지인이, 주변인들에게 '전기세'가 아니라 '전기료'(세금이 아님으로)가 맞는 표현이라고 강조하고 다녔던 기억을 떠올려 볼 때, 그리스에서는 '세금과 전력 사용 금액이 거의 비슷한 금액으로 고지'되므로 '전기세'라고 표현해도 무리가 없겠구나 싶습니다. |
결국 옷을 있는 대로 껴 입고 그리스의 첫 해 겨울을 나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를 정말 놀라게 했던 것은 겨울이 끝나고 짧은 봄이 왔을 때였습니다.
몇 주 안에 여름이 금새 올 것을 대비해, 시어머님을 비롯한 주변 그리스 여성들은 카펫 조각들을 다시 걷기 시작했는데요.
물론 몹시 바쁜 여성들 중에는 카펫 세탁을 세탁소에 맡기는 경우도 있고, 전문 업체에 맡기는 경우, 특수 청소기를 사용하는 경우 등도 있지만,
그리스 카펫 세탁 업체와 키펫 청소기 광고들
그리스에서의 카펫 세탁비는 한국에 비해 훨씬 더 비싸다 보니, 그리스 여성들은 주택에 살든, 아파트에 살든
카펫 세탁을 집에서 직접 하는 여성들이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뭘 그런 걸, 다 집에서 하고 그러지....대...박....당신들 정체가 뭐야...
1~2m 정도 크기의 카펫이야 세탁기에 어떻게 돌리든 발로 대충 밟아 빨든 무슨 수를 낸다고는 하나, 거실용이나 부엌 식탁 아래 깔았던 커다란 카펫들은 도대체 어떻게 빤다는 것인지, 경험해본 적이 없는 저로서는 기가 막힐 노릇이었는데요.
그런데 막상 배워 보니 그 요령이 생각보다 간단했습니다.
1. 카펫을 담벼락이나, 배란다 난간에 척 걸치든지, 마당의 타일에나(그리스의 집 마당은, 정원 사이 사이에 타일 혹은 여기선 비싸지 않은 대리석이 깔려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베란다에 펼쳐 놓습니다.
2. 물을 카펫에 골고루 뿌립니다.
3. 큰 솔이 달린 긴 빗자루 같은 청소도구로 (바닥의 묵은 때를 닦아내는 형태의 청소도구와 비슷합니다.) 카펫에 세제를 뿌린 뒤 골고루 문질러 줍니다.
4. 그 솔에 카펫에 있던 먼지들이 저절로 붙고, 그 솔이 카펫에 세제를 골고루 비벼주는 역할을 합니다.
5. 그 위에 물을 다시 골고루 뿌리고 솔로 다시 한번 문질러 거품을 완전히 제거해줍니다.
6. 그대로 카펫을 담벼락이나 베란다에 널어 놓습니다. (무겁기 때문에 빨래 줄에 널 순 없습니다.)
대략 이런 식인데요.
(출처 google image)
해가 좋은 그리스에서는 이렇게 카펫 조각들을 널어 놓으면 하루 만에 싹 말라서 깨끗해 지는데요.
이것들을 잘 접어 보관용 비닐이나 커버를 씌우고 창고나 다락(그리스의 옛 집 형태엔 다락이 있는 집들이 있습니다.)에 겨울 옷들과 함께 차곡차곡 보관하는 것입니다.
사실 저는 이 카펫 청소가 서툴던 첫 해엔 몹시 헤맸고, 괜히 슬리퍼를 신고 물청소 하듯 카펫을 세탁하다가 감기 몸살이 났었는데요.
이제 몇 년이 지나고 나니 저도 요령이 생겨서, 카펫을 깔 때도 필요하지 않은 조각은 깔지 않게 되고, 필요한 조각들만 찾아서 깔며, 봄에 카펫을 걷을 때에도 긴 비장화를 신고 척척 전용 솔 빗자루로 청소해 널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난 주말 시누이가 입원 수술하는 것을 돕느라 주말 전후로 정신이 없었고, 지난 주까지 비가 많이 왔었기 때문에, 많이 추워진 오늘에야 저희 집은 카펫을 꺼내 깔았는데요.
왜냐하면 이렇게 겨울이 와 꺼내 깔 때도, 작년에 세탁해 둔 것이지만 해가 좋은 날을 골라 깔기 전에 햇볕에 한 나절 널어둔 후 깔게 되면 냄새도 상쾌하고 보송보송한 상태의 카펫을 깔 수 있답니다.
대부분 여성들이 맞벌이를 함에도 불구하고, 침구를 며칠에 한번씩은 바꾸고, 청소를 할 땐 소파나 침대 등 가구를 밀어 옮겨가며 하며, 집에서 입는 잠옷이나 실내복까지도 다림질 하고, 집밥까지 선호하며, 맨 얼굴로 외출하지 않고, 손발톱 관리를 열심히 하는 슈퍼우먼들인 그리스 여성들.
카펫 손 세탁까지 요령껏 척척하다니, 이만하면 그녀들의 기가 그렇게 센 것도 좀 이해해 줘야 하지 않나 싶고,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녀들의 콧대 높음이, 그리스에 살면 살수록 그럴만도 한 건가 싶어,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되네요.
뜨뜻하게 엉덩이를 지지는 한국의 아랫목이 몹시 그리운 오늘, 1인용 전기 방석이라도 깔고 앉아
"아랫목이다, 아랫목이야. 이것은 아랫목이다…아하하하"
.......라고 상상이라도 해야겠습니다.^^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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