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아이 담임이 딸아이에게 호통을 친 기막힌 이유
(이글 뒤에 딸아이에 대해 인신공격한 막말자가 많아 딸아이 사진을 내렸습니다.)
폭우로 사망 사고까지 났던 금요일 아침, 저희 집은 엄청난 천둥 번개 후 15분 정도 정전이 되었었는데요.
이런 일은 로도스의 겨울에는 흔하게 일어나는 일이라 크게 놀라진 않았지만, 날씨 탓에 정전이 되었던 아침 7시에도 캄캄한 상태라 앞이 잘 보이지 않아 등교준비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었고, 결국 그날 딸아이는 10분 정도 학교에 늦었습니다.
저는 평소 딸아이의 3학년 새 담임이 아이들이 늦는 것을 싫어하고 꼼꼼한 성격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딸아이를 교실로 올려 보내며 선생님께 잘 말씀 드리라고 당부를 했는데요.
사실 저희는 사무실에서 가까운 곳으로 학교를 배정받았기 때문에, 딸아이 학교는 집에서 자동차로 25분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보통 그리스에서도 도시 안의 초등학교는 집에서 5분 거리로 배정받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기에 저희 동네에서는 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없고 동네 정전 상황을 선생님이 모를 수 있기에, 더 말을 잘 하라고 당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금요일 오후, 폭우를 뚫고 딸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 저를 보자마자 딸아이는 우울한 얼굴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선생님이 아침에 늦었다고 나한테 소리질렀어."
"어머! 왜? 정전되어서 등교준비를 할 수 없었다고 말씀 안 드렸어?"
"말씀 드렸는데, 선생님이 '왜, 정전이 되면 학교에 늦는데? 너 걸어온 것도 아니고 차 타고 왔잖아!'
이렇게 소리질렀어…"
저는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는데요.
그리스 초등학교는 등하교 때 부모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해서, 가까운 거리라도 원칙적으로는 아이 혼자 학교를 왔다 갔다 할 수 없도록 주지하고 있기 때문에 집이 코앞인 경우에도 부모가 함께 걸어서 등교를 하도록 되어 있는데요.
담임이 저희 집이 어딘지는 정확하게 모른다 해도 차를 타고 등교한다는 것은 알고 있어 그렇게 말한 것은 알겠는데, 그럼 더더욱 애한테 소리를 치면 안 되고, 만약 늦는 것이 싫다면 부모인 저에게 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부모가 운전하는 차를 타고 오는데, 딸아이 의지로 빨리 학교에 올 수 없으니까요.
실제로 1학년 때 담임은 딸아이가 한번 늦었을 때, 당시 매니저 씨가 등교를 시켰는데 (전날 야근으로 늦잠을 자서 늦은 날이라) 딸아이가 설명을 했더니, "다음엔 아빠한테 좀 더 일찍 일어나 달라고 부탁하렴." 이라고 완곡하게 표현했었는데요. 이런 방식이 상식적인 것일 텐데, 이 새 담임이 애의 말을 이해도 제대로 못 하고, 게다가 잘못도 없는 애한테 소리까지 질렀다는 사실에 저는 화가 나서 정말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금요일이라 선생님에게 이 상황에 대해 따지든 뭐든 말을 하려 해도 월요일까지 기다려야 해서 더 분통이 터졌습니다.
그리스 학교는 학부모에게 선생님의 개인 전화번호를 주지 않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연락은 학급 홈페이지의 이메일을 통해서 하든, 등하교 때 얼굴을 맞대고 하든, 학교로 직접 전화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든… 사무실에 들러 매니저 씨에게 분통을 터트리자, 매니저 씨도 함께 흥분해서 월요일에 당장 학교를 찾아가겠다고 열을 내서 도리어 제가 진정을 시켜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요.
물론 만약 딸아이가 야단 맞을 짓을 해서, 예를 들어 친구와 싸웠다든가 수업 태도가 좋지 않다든가 선생님 말을 잘 듣지 않고 제 멋대로 했다든가 했다면, 선생님이 딸아이를 야단치는 것에 대해서 저는 얼마든지 동의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야단을 쳤다는 것은, 부모로서 도저히 용납이 안 되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그리스에서 선생님이란 직업은 그 위상이 대단한 경우가 많아, 아이들이 선생님을 상당히 어려워하고 존경하도록 교육받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이 결근하고 싶을 때는 다소 교과 과정에 책임감 없이 월차를 내고 결근을 해도 되는 정책을 따르고 있습니다.
한참 경제 문제로 공무원들의 시위가 많았던 2년 전엔, 아이들이 다 등교했는데 갑자기 선생님이 예고 없이 파업(스트라이크)에 돌입해 수업을 못하고 집에 돌아왔던 적도 몇 번이나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 덕에 제 딸아이는 그리스어로 이 파업이란 단어인 아뻬르기아Απεργία 라는 말을 아주 일찍 배울 수 밖에 없어, 시어머님이 요리하기 싫다고 투덜대실 때, "할머니, 파업하는 거야?" 라고 사용했을 정도이니까요.
그래도 결국 정부는 EU와 구제금융의 요구대로, 교직원 대다수를 해임 또는 오지로 발령했고, 월급의 30%를 삭감시켰습니다.
그리스인들의 파업 시위 풍경
2년 전, 갑작스런 선생님의 파업으로 학교 갔다가 다시 하교해, 저희 가게 앞에서 파이를 먹고 있는 딸아이입니다.
주말 내내, 도대체 담임이 왜 그렇게 화를 냈던 걸까, 이런 불안해진 교사로서의 지위에 대해 불만이 많아 스트레스가 쌓였던 걸까, 자기도 딸을 키우면서 부모 마음을 모르진 않을 텐데 등등 생각이 많았던 저는, 월요일이었던 어제 딸아이를 데리러 가며 담임에게 어떻게 말을 하면 좋을지 이래 저래 생각이 많았는데요.
드디어 담임을 만났고...
저는 담임에게 화를 내지 않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러나 강경하게 이에 대해 물었는데요.
담임은 평소에 생글생글 잘 웃던 제가 정색을 하며 이에 대해 묻자 좀 당황한 듯, 얼버무리며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뭐. 상황은 이해합니다만, 워낙 그날 늦은 아이들이 많아 저는 담임으로서 할 말은 해야 하는 입장이라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래도 앞으로 늦은 등교가 문제가 되면 저에게 말씀을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집이 다른 아이들 보다 먼 편인데, 늦게 된다면 그건 제 잘못이지 아이 잘못이 아니니까요. 저도 앞으로 늦지 않도록 주의를 하겠지만, 그날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좀 이해하셨으면 좋겠네요. 애가 혼자 등교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닌데 그런 일로 아이에게 소리를 지르셨다고 해서 좀 당황했었습니다."
"아…네…뭐…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이건 무슨 말이야. 뭘 감사해? 라고 생각했지만, 일단 담임에게 할 말을 했기 때문에 인사를 하고 돌아서서 나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오는 차 안에서 딸아이의 말을 듣고 저는 완전 깜짝 놀랐는데요.
"엄마, 우리 선생님이 좀 말을 못 알아 들을 때가 있나 봐."
"응? 그게 무슨 말이야."
"오늘 내가 선생님께 '학교 매점이 마지막 쉬는 시간에도 열어요?'라고 물어 봤었거든. 알바니아에서 이번에 전학 온 친구가 말이 좀 서툰데, 초코바를 사고 싶다고 해서 내가 대신 물어봤던 거야. 오늘 비가 많이 와서 매점이 일찍 닫았을 수도 있는 거였거든. 근데 선생님이 이렇게 대답하는 거 있지. '학교 매점은 일요일엔 문을 열지 않지. 당연히.' …난 분명히 마지막 쉬는 시간이라고 또박또박 물어봤는데, 선생님이 그 말을 비슷하지도 않는 일요일로 알아들은 게 정말 이상해…그러고 보니, 우리 선생님은 그럴 때가 가끔 있어. 우리들 말을 전혀 엉뚱한 소리로 알아듣곤 해."
그러니까...
얘기를 종합해 보자면, 딸아이의 지각 이유를 듣고 화를 낸 이유는 선생님이 딸아이 말을 제대로 이해를 못 해서일 가능성이 크단 말이고, 제가 조목조목 설명한 후에 저에게 고맙다고 말을 한 이유도 선생님은 그제야 딸아이가 늦은 이유를 제대로 파악했던 것입니다...
저는 똑똑하고 꼼꼼해 보이며, 실제로 일 처리도 잘 하며, 패션 센스도 남다른 이 담임이, 실은 사오정 끼가 다분하다는 사실에 폭소하지 않을 수 없었는데요.
유난히 잘난척하는 그리스인 지식인들 중에도 이런 류의 허당이 있다는 사실에 웃음이 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마치, 공부를 저희 세 자매 중에 제일 오래해 유학까지 갔던 제 막내 동생이 사실은 사오정이라, 공부 외의 분야에서 귀를 덮은 머리카락을 손으로 들쳐 올리며 말을 또박또박 해주어야 알아 듣곤 했을 때처럼, 제 한국의 동료이자 절친이 별명이 헬렌 켈러일 만큼 사오정이라, 고속도로에서 갑자기 "곰사슴을 주의해야 한다는 표지판이 있어요! 야생동물이 출몰하는 지역인가봐요!" 라고 말해 놀라 표지판을 확인하니 '공사중 주의' 였던 때처럼,
사오정인 담임 선생님을 좀 이해해주고 제가 더 신경 써야겠다는 마음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런데 사오정인 제 친구 별명이 왜 헬렌 켈러냐고요?
겉보기엔 똑똑해 보이고 실제로도 아이들 잘 가르치고 자기 일을 잘 하는데, 자주 사물을 잘 못 보고, 잘 못 알아 듣고, 엉뚱하게 잘 못 말할 때가 많아서 랍니다.
그래도 친구가 자기 별명을 소개하면 남들은 그녀가 헬렌 켈러 처럼 위대한 인물의 성격이라 그렇게 불리우나 착각해 주기도 한다니, 다행인 것이지요.^^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 이 글에, 상황을 이해 못한 댓글이 많이 달려서 추가 글을 남깁니다. 1. 그리스 초등학교는 부모가 자녀의 교실 앞까지 데려다 주는 것을 법으로 정해 놓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법적으로 처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아이들은 부모의 차를 타고 등교를 합니다. 즉, 그리스 초등학교 아이가 지각을 했다면, 그것은 부모가 서두르지 않거나 준비를 늦게 한 등등, 부모에게 책임이 있으므로, 한국 초등학교의 지각상황을 대입해서 보는 것은 맞지 않습니다. 윗글에서도 밝혔듯이, 저도 아이가 야단 맞을 짓을 해서 야단 맞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기고, 이에 선생님께 어떤 건의를 한 적은 단 한번도 없습니다. 2. 그리스 공립학교 교사는 부업이 합법적으로 가능하여, 교사를 하며 개인 사업을 하거나 과외를 하는 등 부업에 신경쓰느라 본 업부를 소홀히 하는 교사들도 더러 있고, 월차나 년차를 교장 선생님에게만 얘기하고 학생이나 학부모에게 말하지 않고 무단 결근하는 등, 일반 회사생활 하듯이 교사 업무를 하는 선생님들이 있는 것을 다소 당.연.하.게. 여기는 문화입니다. 특히 정부의 과한 인원 감축으로 교사 부족현상을 겪고 있는 (현재 딸아이 학급은 3개월 째 음악 교사가 없어 음악 시간에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스의 경우, 교사가 이렇게 무단 결근을 하면, 그 반 아이들은 3명씩 나뉘어져 다른 반, 심지어 다른 학년에서 수업을 받게 하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는데, 교과 과정이 맞지 않으니 역시 아이들은 그림을 그리며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3. 이런 그리스 공립 교사들 중에도 지각있고 책임있는 교사들도 존재하고, 기본적으로 공교육 내용은 충실하므로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부디 다른 관련글, 이라고 쓴 다른 글도 좀 읽어봐 주세요.) 4. 딸아이 담임선생님이 9월 중순 새학년이 시작된 이후로 6회 이상 무단 결근 했고, 부모가 없다고 다른 아이에게 별 일 아닌 것으로 비 인격적으로 버럭버럭 소리지르는 광경을 몇 번이나 목격했기 때문에 담임선생님에게 진작 화가 난 것은 사실이었습니다. 5.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사오정 운운 했던 것은 담임선생님을 모욕하거나 욕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렇게라도 선생님을 이해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쓴 글임을 인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증거로 사오정이라고 예를 든 두 사람이 제 가족인 동생과 제 절친이라고 말씀드렸듯, 평소 제가 아끼는 사람에 대해서도 이 부분을 이해하기에 선생님도 그런 이유로 아이들을 나무란 거라면 이해해주고 싶은 마음에서 쓴 글입니다. 6. 이런 상황을 모르고 저나 제 아이를 인신 공격, 반말 댓글 쓰신 분들, 또한 한국 상황을 생각하고 교권 추락까지 운운하신 분들께, 제가 진심으로 드리고 싶은 말씀은, 부디 전 세계의 200여개의 나라의 모든 공립초등학교가 한국과 똑같지 않다는 점을 인지하시고, 한국의 교권이 추락한 가슴아픈 상황을 그리스 교사들의 문제와 연관지어 분노하지 마시길 바라며, 다음에 댓글을 쓰실 때는 이렇게 막말로 서로 상처내지 말아주시길 정중하게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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