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참석했던 결혼식 때 제가 찍은 사진입니다.
그간 수 차례 그리스 결혼식에 참석하면서 저는 습관이 하나 생겼는데요.
다름이 아니라, '이번 결혼식은 대략 하객이 몇 명 정도 되나?' 수를 어림짐작 해보는 습관입니다.
이유는 그리스 결혼식에서 하객 수에 따라 식이 끝난 후 신랑 신부와 부모님들이 얼마나 양 뺨을 돌려대야 하는 지 결정 나기 때문인데요.
제 결혼식 때는 그리스로부터 먼 한국에서 비행기를 타고 온 제 쪽 하객이 10명 정도 참석했고, 최대한 간소하게 하길 원했기 때문에 신랑 쪽만 200명이 좀 안 되는 인원이 왔음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이 끝난 후 저희 한국인 아버지께서는 "아이고, 볼이 얼얼하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게 도대체 어떤 문화인지 설명을 좀 드리자면요.
이전 그리스 결혼식 포스팅에서 말씀 드린 대로, 하루 종일 신랑과 신부는 각자의 집에서 하객을 맞이한 후에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는데요.
그리스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 신랑 부모님, 신부 부모님, 들러리까지 모두 함께 차례로 입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음악이 없이 빠르게 온 가족이 나란히 입장한 후부터가 본 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리스 결혼식에서는 신부 아버지가 딸의 손을 잡고 결혼행진곡에 맞춰 입장하며 뭔가 뭉클한 느낌을 가질 일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온 가족이 함께 후다닥 입장해 버리니까요.^^
그렇게 길고 긴 결혼식이 끝나고 나면(결혼식이 왜 그렇게 긴지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나눌게요.) 신랑, 신부, 신랑 부모님, 신부 부모님, 신랑 들러리, 신부 들러리가 퇴장을 해 일렬로 맨 뒤에 나란히 선답니다.
그러면 참석했던 하객들은 신랑 앞쪽으로 줄을 서는 것이지요.
그런 후 하객들은 신랑부터 시작해 들러리까지 약 10명 정도의 인원에게 각각 빰키스(볼키스)를 시작합니다.
그리스식 뺨키스는 양 뺨을 왼쪽, 오른쪽 이렇게 두번을 상대의 뺨에 맞대며 입으로 쪽, 쪽,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아주 친한 사이엔 직접 뺨에 뽀뽀를 하기도 합니다.
신랑, 신부와 가족들에게 뺨키스를 하며 축하 인사를 하려고 줄 서 있는 하객들입니다.
"Να ζήσετε!" (나 지세떼) 라는 축하 인사를 일일이 건네며 인사를 하는 하객도 10명에게나 이렇게 말과 뺨키스를 하려니 정신이 없긴 합니다.
(이 말은 한국어로 번역하자면 «잘 사세요! 축하합니다!» 라는 뜻으로, 그리스의 전형적인 결혼 축하인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신랑,신부와 부모님들, 들러리들 입장에서는 불편한 드레스와 정장을 입고 하객 수 만큼 뺨키스를 나누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전혀 일면식이 없는 경우나 외국인 하객의 경우 악수로 대신하는 경우도 간혹 있긴 하지만, 대개는 뺨키스를 한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일반적인 그리스 결혼식의 하객 수에 있습니다.
사돈의 팔촌이 누군지도 이름을 알만하고, 두 가족이 함께 결혼식에서 입장 퇴장할 정도로 가족 문화 색이 강한 그리스인지라, 제대로 하는 결혼식의 경우 하객이 800명에서 1,000명을 넘는 경우도 아주 흔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제가 최근 몇 년간 참석했던 그리스 결혼식 중 하객이 양가 800명에 육박했던 결혼식이 대부분이었고, 간소하게 한다고 해도 300~400명은 거뜬히 넘는 결혼식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몇 년 전 제가 참석했던 1,000명 가까운 하객이 온 결혼식이 있었는데, 신랑 신부 둘 다 그냥 평범한 집안의 자제들이었습니다.
당시 저희는 뺨키스를 하며 축하를 해줄 저희 차례를 기다리는 것도 한 시간이 넘게 기다려야 했었는데요.
거의 뺨키스 막바지인 저희 차례가 되어 신랑, 신부에게 축하하고 신랑 어머님께 뺨키스를 하며 축하 인사를 건네는데 어머님께서 1,000명에게 뺨키스를 하시고 어지러우신지 휘청 하시며 머리를 짚으셔서 옆에서 사람들이 붙잡아주며 아주 놀랐던 기억이 있습니다.
이런 그리스의 결혼 축하 인사 문화는 많은 사람과 얼굴을 대야 하므로 피곤하며 제 정신이 아니긴 하지만, 나를 축하해 주러 온 사람들이기에 최선을 다해 웃으며 인사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중에 계속 웃고 있느라 정말 광대가 터지도록 아프지요^^)
게다가 간혹 엉뚱한 일이 벌어지기도 하는데요.
저희 결혼식 뺨키스 타임에서는 매니저 씨의 외할머님(제 포스팅에 가끔 등장하시는)께서 갑자기 매니저 씨를 끌어 안고 혼자 감격에 겨워 폭풍 오열을 하셔서, 뒤에 계신 많은 분들이 한참을 차례를 기다리셔야 했답니다.
또 마지막엔 전혀 누구인지 알 수도 없고, 차림도 결혼식 차림이 아닌 분이 뺨키스를 해서 도대체 누군가 했었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시내 안을 구경하며 지나던 관광객이 들어와 결혼식 구경을 하고, 그 하객 행렬이 뺨키스를 하는 광경에 감격해서 본인도 축하를 해주었던 것이지요.
그리고 그리스에서는 축하 인사를 할 때나 만났을 때 뺨키스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입에다가 키스 하는 것은 연인이나 부부끼리만 하는 문화인데요.
인근 유럽국 중에는 아주 친한 사이에는 남녀를 불문하고 입에다 뽀뽀를 하는 문화도 더러 있기에, 이 뺨키스를 할 때 오스트리아에서 오신 가족분들이 제 입에 뽀뽀를 해 오셔서 아주 당황해 미춰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왜 여자가 내 입에 뽀뽀를....나, 지금 안드로메다로 가는 거야?
만약 여러분들도 그리스의 거대한 결혼식에 참석할 기회가 있으시다면, 하객이 되셔서 누구에게라도 어색함 없이 최소 다섯 명 이상과 뺨키스를 경험하실 수 있을 것 같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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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독자님들의 질문이 올라와서 조만간 그리스 결혼식 들러리 패션과 하객 패션에 대해 포스팅하도록 하겠습니다^^ 거대하고 독특한 그리스식 결혼식에 대한 이야기는 계속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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