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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돌다리도 두드리는 그리스의 초등학생 의료검사 의무제도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9. 13.

 

 

그리스에 살면서 가끔 이 나라에 대한 선입견이 깨지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햇볕이 좋은 곳에 살며 개방적이고 여유로워 보이는 미소를 짓고 있는 이 나라 사람들이, 실상은 성격들이 급하기 이를 때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도 그랬고, 공무원 부정부패로 나라를 심각한 경제 위기로 몰고 갔던 만큼 자격 미달의 공무원이 여전히 많이 일하고 있는 그리스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제도적으로 필요이상 꼼꼼하게 융통성 없이 행정처리를 위한 서류들을 요구할 때도 그랬습니다. (그리스 관공서에서는 사정한다고 해서 이번에만 봐 줄 테니 다음에는 꼭 준비하셔야 한다, 라는 식이 통하질 않습니다. 사소한 서류가 하나라도 완벽하지 않으면 몇 번이고 다시 준비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장점이기도 하고 단점일 수도 있는데요. 한국은 이 부분에서 좀 융통성이 있다는 것을 이번에 한국 관공서에서 중요한 서류를 만들면서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가을 입학제인 그리스에서 딸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에 입학했을 때, 정말 아이가 무슨 병이라도 있을까봐 이러나 싶을 만큼 여러 가지 의료검사 결과표를 첨부하도록 되어 있어서, 동분서주 아이를 데리고 검사를 하러 다녀야 했습니다.

그런데 2년 후인 현재 3학년이 시작되는 시점에서 1학년 때 보다 더 다양한 검사 결과를 요구하는 통신문을 받고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사실 한국에서의 경우 학교 안에서 시행되는 여러 종류의 신체 검사들로 아이들의 대략의 건강상태를 체크하고 있기에, 처음엔 그리스의 초등학교의 이런 꼼꼼한 의료검사 절차에 대해 불필요한 과정으로 여겼었는데요.

3학년이 되어 요 며칠, 병원을 예약하고 딸아이와 필요한 검사를 받고 전문의의 소견이 들어간 결과표를 받기 위해, 이 병원 저 병원으로 바쁘게 다니면서, 그간 경험한 이 제도가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의 교육부가 의무로 요구하는 초등학생 의료검사는 1학년 3학년 5학년, 이렇게 2년에 한 번씩 이루어지게 되어있습니다. 그리스 초등학교에서도 교내 신체검사를 합니다만, 새 학년이 시작될 때, 학부모는 자녀에게 의무적으로 소아과, 치과, 안과, 심장외과 전문의를 찾아 요구된 검사들을 해야만 합니다. 일반 검사의 경우 검사비가 비쌀 수 있지만, 미리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병원을 예약을 해서 검사를 받을 경우 아주 소액의 검사비만 지불하면 됩니다. (예를 들어 저는 이번에 딸아이의 심전도 검사를 비롯한 심장 관련 검사 비용으로 9유로(약 13,000원)를 지불했고, 그 조차도 나중에 보험료에서 소급 받을 수 있어 실제로 비용이 없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만약 의료보험 혜택이 없는 사립 기관을 찾아 검사할 경우 60유로(약 90,000원)를 지불해야 합니다.)  

 

 

이번에 검사한 딸아이 심전도 검사표 일부와 심장외과전문의가 쓴 검사 소견서입니다.

이런 자세한 검사결과표와 위 사진의 요약본 서류를 함께 제출해야 합니다. 

 

교육부에서 이런 초등학생의 자세한 의료검사를 의무적으로 하게 하는 이유는, 우선 학교 수업을 원활하게 소화할 수 있는지 어린이의 신체 상태를 알기 위해 필요한 부분이여서 라고 하는데요, 매일 체육시간이 배정되어 있는 그리스 초등학교의 특성 때문에, 심전도 검사는 미리 꼭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검사과정에서 학부모는 의외로 그간 문제가 있는데 몰랐던 아이들의 신체적 문제를 인지하고 치료 혹은 교정할 수 있게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렇게 교육부 방침으로 강제적인 검사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아이가 몸에 이상이 있으면 부모에게 말을 할 것이고 그 때 부모는 당연히 아이를 데리고 의사에게 가서 문제를 찾으려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새 학년 전 검사인 <과거 병력, 청력, 신체 균형감각, 피부 상태, 알러지, 시력, 안구 건조 상태, 심박수, 심전도, 발치 및 충치 상태 등>을 전문의와 첨단 의료기계를 통해 의무적으로 자세히 검사를 하다 보니, 이 과정에서 아이가 어리기 때문에 잘 느끼지 못하는 신체의 문제를 학부모가 미리 발견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이 모든 제출된 서류를 학교에서 보관하며 담임교사가 학급 아이들의 신체 상태를 인지하고 있어, 만약 학교에서 수업을 받던 중 아이가 어떤 신체적인 문제를 일으킬 경우 신속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예방책이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특히 그리스인들의 경우 한국에서는 전혀 들어본 적이 없는 특이한 알러지를 갖고 있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되는데(한국인과 인종이 다르므로), 작년 딸아이 학급의 한 여학생도 갑자기 현기증을 일으키며 특이 알러지 반응을 보여 평소 이를 인지하고 있던 담임교사가 신속하게 병원으로 연락해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고 몇 시간 후 다시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번거롭고, 시간을 많이 소요해야 하는 의료검사 절차라 처음엔 불편했던 '초등학생 의료검사 의무제도'이지만, 단 한 가지 검사라도 누락될 경우 서류를 다시 작성해 오라고 계속 가정으로 돌려 보내는 이런 돌다리도 두드리는 의료검사 의무제도에 대해 몇 년간 경험하다 보니, 분명 장점이 더 많은 제도라는 생각이 듭니다.

 

다음 기회에 그리스의 '어린이 예방접종카드 의무소지 제도'의 장단점에 대해서도 이야기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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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통신문에서 말한 준비물을 챙기고 딸아이의 3학년 새 교과서 모두 비닐을 싸고 연필 한 자루까지 이름표를 붙여주고 나니 어제 늦은 시간이었는데요. 오늘 아침, 딸아이를 학교에 보내고 드디어 혼자 커피를 마시는 잠깐의 여유가 있었답니다.^^도대체 이게 얼마만인지요~^^일 때문에 관공서 돌아다닐 때도, "엄마 왜 이렇게 걸음이 빨라? 다리 아파." 이 소리가 안 들리니 정말 좋습니다. 대신 매니저 씨, 제게 일 많이 시킬 수 있다고 환호하는군요.--;; 매니저 씨는 여름 내내 하루 12~14시간 꼬박 일하고 있어, 좀 불쌍모드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