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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날마다 사탕을 나눠 주는 그리스인들의 특별한 사탕 철학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3. 13.

날마다 사탕을 나눠 주는

그리스인들의 특별한 사탕 철학

 

 

 

한국에서의 화이트 데이는 아무리 상술로 만들어진 날이라 해도 사탕을 받지 못한 여자는 어쩐지 서운하고,

주지 않은 남자는 뭔가 찝찝한 그런 날입니다.

경기침체로, 적은 돈으로 뭘 살까 고민하는 목하 열애 중인 남성들과, 발렌타인 데이에 준 게 있으니 뭔가는 돌아오겠지

내심 기대하는 여성들 사이의 묘한 기류가 감지되는 날인 것입니다.

 

이런 기류들 속에서 사탕을 주는 것에 대한 남다른 철학을 갖고 있는 그리스인들의 사탕 철학 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  을 나누는 의미 

 

관광객들은 그리스에서 약국이나 상점, 병원을 들르게 되면, 계산대 옆에 놓인 먹음직스런 사탕바구니를 흔하게 발견하곤 합니다.

그리스로 이사를 오기 전, 딸아이와 이곳에 여행을 왔을 때, 매니저 씨는 일로 바빠 저와 딸아이 둘이서만 여기저기 돌아다니곤 했었습니다.

태양이 무척 뜨거웠던 날, 시내 구경에 정신이 팔린 딸아이는 그만 다리가 풀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양 무릎에서 피가 나자 겁먹은 아이는 울먹 울먹거렸고, 아이를 진정시키며 가까운 약국으로 급히 들어가 연고와 밴드를 주문했습니다.

그런데 물건을 내 주는 약국 아주머니께서는 눈물을 가득 머금은 딸아이의 눈을 보시더니 계산대 옆에 비치되어 있던 먹음직스런 사탕 바구니를 내밀며,

"갖고 싶은 만큼 얼마든지 가져가렴." 이라고 말해주셨습니다.

더운 날씨에 달콤한 사탕 하나를 입에 문 아이는 무릎의 상처도 잊은 채 언제 울었냐는 듯 즐거워했습니다.

 

 

   둘  마케팅의 의미 

 

 

매니저 씨의 가게에도 사탕 바구니가 있습니다.

주로 젤리 종류의 사탕을, 시아버님은 떨어질 새라 사다가 채워 놓습니다.

사실 주로 뭘 고치거나 만드는 기술적인 일을 의뢰하러 오는 성인 고객들에게 이 사탕 바구니가 무슨 어필을 할까 싶지만, 시아버님은 사탕 바구니를 사업을 해온 세월 내내 카운터 옆에 두셨다고 했습니다.

때로는 노인 고객들도 사탕을 집어 가고, 아주머니 고객들은 어떤 맛을 고를까 망설이다 집어가기도 하십니다.

간단한 일을 의뢰하러 오신 분들은 기다리는 동안의 무료함을 이 사탕 하나로 채웁니다.

그래서 시아버님은 이 사탕이 마케팅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환영 감사의 의미  

 

 

이제껏 저는 운이 좋게도 여러 나라의 비행기를 타보았습니다. 항공사마다 '승객들의 탑승부터 비행기가 이륙할 때까지의 사이 시간'에 취하는 태도서비스는 확연히 다릅니다. 특히 이코노미 클래스의 서비스는 거기서 거기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차이가 있습니다.

어떤 항공사는 안전 수칙에 많은 시간을 소요하기도 하고, 어떤 항공사는 좋은 음악을 틀어주기도 합니다.

어떤 항공사는 승객들에게 인사하기에 주력을 다하고, 어떤 항공사는 어린이 고객의 선물을 먼저 챙깁니다.

그런데 주로 국내도시, 섬과 유럽을 운항하는 그리스 항공사인 에이지안 에어라인Aegean Airlines와 올림픽 에어라인Olympic Airlines, 이 두 항공사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탑승하자마자 바로 사탕을 나눠 준다는 것입니다.

두 항공사 다, 바캉스 나라의 승무원답게 민소매 유니폼을 입은 여성들이 "까라멜레스καραμέλες?(사탕들 드세요)" 라며 사탕 바구니를 내밉니다.

이 사탕은 얼마든지 가져가도 되어서, 한 개씩만 들고 가세요 라는 식의 제약은 전혀 없습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고 요지부동 할 수 없는 짧지만 무료한 시간에, 안전 수칙을 들으며 사탕을 오물거리는 기분은,

단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저에게도 기분 좋은 시간입니다.

 

또한 그리스 결혼식에서는 와주셔서 감사하다는 답례로 반드시 특별한 사탕 주머니를 제작해 하객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분분예레스 라고 불리우는 이 사탕주머니는 웨딩업체에 주문을 하기도 하지만, 결혼식 며칠 전쯤 신부의 친척 친구들이 둘러앉아 함께 만들며 이야기 꽃을 피우게 만드는 특별한 매개체가 되기도 합니다. 

 

 

그 밖에도 다른 서양 나라에서도 가끔 볼 수 있듯이 가정에 사탕 바구니를 비치해서 손님에게 대접하기도 합니다.

 

그리스의 이런 사탕을 맘껏 나눠 주는 문화를 접하면서, 저는 문득 중학교 때 교과서에 실렸던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이해의 선물)라는 외국 소설이 생각났습니다. 저와 비슷한 시기에 같은 교과서를 사용했다면 기억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위그든 씨는 사탕을 먹고 싶어 돈 대신 버찌 씨를 은박지에 싸서 지불한 주인공 아이에게 그 아이의 동심을 깨고 싶지 않아 공짜로 사탕을 주고 오히려 거스름 돈을 거슬러 주는 그런 사탕가게 이야기입니다.

 

위그든 씨의 사탕가게 (양장)
국내도서>시/에세이
저자 : 폴 빌리어드 / 류해욱역
출판 : 문예출판사 2007.10.10
상세보기

발렌타인 데이든, 화이트 데이든 상술이라고 치부하고 무시하기에 서운하거나 찝찝한 기분이 드는 것은 평소 바빠서 혹은 표현이 서툴러서 서로 사랑한다고 진심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애정을 표현할 수 있는 빌미를 제공해 주는 날이기 때문입니다.

이번 화이트 데이, 알 박힌 반지도 좋고 번쩍이는 가방도 좋겠지만, 주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물건의 값과 크기에 치중하기 보다 진심으로 서로 사랑한다고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를 교감하고 나누는 특별한 시간을 갖는 것이, 서로에게 더 값진 선물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비록 마케팅일 수도 있지만 사탕 하나에 사람에게 쉼을 주고, 기다림을 지루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하는 그리스인들의 특별한 사탕 철학을 살짝 빌려 쓰면 어떨까요.

어쩜 위그든 씨 사탕가게를 처음 읽었던 때의 저처럼, 눈물을 폭 쏟는 감동의 화학작용이 일어날 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