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기한 그리스 문화

값싼 과일샐러드가 외국인 시어머니에게 미친 영향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5. 13.

값싼 과일샐러드가

외국인 시어머니에게 미친 영향

 

 

 

 

 

 

 

저녁 무렵 시어머님께서 열려 있던 집 뒷창문으로 "올리브나무~" 라며 제 이름의 말꼬리를 쭉 빼며 특별히 다정

하게 부르셨습니다.

그러시더니 곧 '요 며칠 생일을 핑계로 딸아이만 겨우 뭔가 해 먹이고 요리 파업 중인' 저에게

"배고프지 않니? 치즈 넣어서 파이를 좀 구울 건데? 네 것도 해 줄까?" 라고 물어 보셨습니다.

"아.. 안 그래도 배고팠는데, 해주시면 많이 감사하지요."

라고 대답을 하면서도 참 별일이 다 있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에 워낙 파이나 케이크 만들기가 생활화 되어 계신 분이라 뭔가 열심히 만들어 턱 한 접시 씩

안겨 주시는 일은 흔한 일상이지만, 그렇다고 손녀인 제 딸아이에게가 아닌, 제게! 뭔가 만들어 줄까? 라고 물어

보시는 경우는 제가 사십 도 고열에 시달려 정신을 못 차리던 이민 초기를 제외하고는 흔한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

다. (기억하시지요? 제가 수술했던 날에도 당신 자식들 챙기기 바쁘셨던 것을^^) 

 

게다가 파이가 다 되었다며 특별히 저를 아랫집으로 불러 따끈하게 치즈가 쭉쭉 늘어나는 파이 접시를 떠 안겨

주시면서, "올리브나무만 해주고 나는 안 해주는거야?" 라고 농담을 하시는 시아버지께

"올리브나무니까 특별히 해주는 거에요!" 라며 말도 안되는 이유까지 대시는 것이었습니다!

 

헉

'이게 뭔 조화란 말인가...

어제 생일 턱 낸다우리 부부가 새로 생긴 피쩨리아(그리스식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외식 시켜드려서 기분이 좋으셨나?  뭐지?

??

아니면 명절 연휴 끝나고 시외할머님 시골 댁까지 내가 어머님 대신 모셔다 드렸다고 이러시는 건가?

요염 

이런 서비스는 제작년 생신 때 시어머님이 그토록 원하시던 알파카 코트를 사드렸을 때도 받은 적이 없고,

작년 생신 때 그토록 홈쇼핑을 보며 원하시던 최신유행 겨울부츠를 사드렸을 때도 없었던 일인데!!!

뭐란 말인가???!!!! 왜? 우리 시어머님, 이렇게 예쁜 말까지 하시며 내게 서비스 하시는 거야???!!!'

 

오늘 뭐가 기분이 좋은 일이 있으시다고 해도, 마음 씀씀이가 나쁜 분이 아니어서 남에게 감동 주 행동을 하시고

툭 던지는 듯한 직설화법으그 공을 다 깍아 먹는 어머님 스타일과 참 맞지 않는 행동이셨습니다.

 생각중

그런데 번뜩 어제 어머님이 근사한 외식 자리에서 한껏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제게 하셨던 말이 떠올랐습니

다.

"얘, 올리브나무. 네가 엘레니에게 과일샐러드를 사다줬다며? 언제 그런거야?"

"아...별것도 아니었어요. 그냥 엘레니가 워낙 일이 많은 것 같아서, 덥기도 한데 애쓰는 것 같아서요.

비싼 것도 아니었어요. 왜, 빠스하 전 주에 고기 못 먹는 주간이라 마트에 과일샐러드가 많이 팔더라구요.

병원 가는 길에 생각나서 마트에 들렀더니 신선하게 막 만든 게 냉장칸에 있길래 사다 준거에요."

어머님은 눈웃음까지 지으시며 "너무 잘했다. 어휴, 엘레니 엄마 세바가 얼마나 그 얘길 하던지, 너 참 잘했다."

"..하하..별말씀을요. 엘레니가 저를 위해서 애 써준 것도 있는데요. 정말 별것도 아닌 거였어요."

 

 

         

 

 엘레니는 제 수술을 담당했던 전문의의 개인병원 행정직원인데, 우연히 만난 그녀가 알고 보니 어머님 직장의

이십 년 지기 동료 세바 아줌마의 딸이었던 것입니다.

그녀가 어느 파티에서 저를 봤다며 먼저 기억해 냈고, 우린 반갑게 인사를 하며 최근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갈 때마

다 그녀와 이런 저런 이야길 나누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과일샐러드를 사다 주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었는데요.

그 의사가 워낙 환자 잘 보기로 유명한 인기 의사라, 행정직원인 그녀까지 오전 8시터 저녁 10시까지 밥 먹는

시간제대로 보장되지 않은 채 정신 없이 일해야 하는 상황을 그간 쭉 봐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시어머님께 전해들은 얘기로는 안정된 직장이라 보험이나 보장제도가 많은 대신 세금 떼고 나면 그녀의

급여가 너무 적었습니다. 일을 그렇게 척척 잘 해내는 그녀에게 좀 맞지 않는 급여란 생각에, 저를 위해서도 애쎴던

부분도 있는데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병원 가는 길에 사다 준 것 뿐이었습니다.

그런 아무 것도 아닌 제 행동이 엘레니의 엄마 세바 아줌마 귀에 들어갔고, 그 아줌마는 시어머님께 저에 대해 좋게

얘기하면서 어머님 직장 동료분들 앞에서 어머님의 체면을 좀 살려준 것 같았습니다. 게다가 이십 년 지기 친구 딸

이니 더 그러셨나 싶기도 했습니다.

 

이런 결과를 바라고 한 행동은 결코 아닌데도, 그 값싼 과일샐러드는어머님의 기분까지 좋게 만들었고,

비록 며칠 못 갈 호의라 하더라도 시어머님으로 하여금 저에게 예쁜 말까지 하게 만든 셈입니다.

 

결국 제가 생일 때마다 해 드렸던 어떤 비싼 선물 보다도, 시어머님께는 더 작은 것이라도 본인 체면도 살고

가슴도 따뜻해지는 무언가가 필요했었나보다 싶었습니다.

 

요리 파업도 끝났으니 내일은 바쁜 어머님 대신 시아버님 점심까지 해서 가게로 갖다 드려야겠다고,

시어머님의 기분 좋은 한 마디에 또 깜빡 넘어가 헤벌쭉 퍼다 주려는 속 없는 올리브나무였습니다.

 

 

여러분 좋은 월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관련글

2013/03/28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내 숨통을 틔우는 그리스인 시어머니의 단점

2013/03/27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그리스인 며느리들도 혀를 내두르는 ‘그리스인 시어머니들’

2013/03/23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그리스 남자들이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그들만의 심리

2013/04/25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그리스 스타벅스 운영에 마마보이가 미치는 영향

 

 

* 제 3의 글을 썼네요. 내일도 내키는대로 써서 올릴게요. 피쩨리아 이야기가 될 수도, 리더십관련 글이 될 수도...저도 몰라요. 

원래는 이제껏 미리 짠 일주일 글 발행 계획표대로 글을 썼답니다. 제가 약간 강박증이 있다는 것 독자님들 눈치 채셨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