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최대 명절 빠스하(Πάσχα)의
신기한 풍습들
그리스의 연중 가장 큰 명절은 빠스하(Πάσχα)와 흐리스투예나(Χριστούγεννα) 인데요.
그 중 그리스의 국민들은 요즘 '빠스하 명절 기간'을 보내고 있는 중입니다.
학교는 지난 금요일부터 2주간 빠스하 방학에 들어갔고, 관공서, 회사와 가게들도 이번 주 금요일 오후부터 다음
주 화요일까지는 연휴입니다.
빠스하는 사실 다른 나라의 부활절인 셈인데요.
천 년 넘게 이어진 국교 정교회의 풍습대로 굳어진 '빠스하의 풍습들'은 사실 종교적인 의미를 넘어서 우리나라의
추석에 가족들이 송편을 빚고, 설날 때 전을 만들고 떡국을 끓여 먹는 것처럼 전 국민이 하나같이 풍습대로 일사
분란하게 따르는 신기한 기간인 것입니다.
자, 그럼 제가 처음 겪으며 몹시 놀랐던,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진
그리스 전국민이 일사 분란하게 따르는 이 빠스하의 풍습을 요일 별로 소개해 볼게요.
일요일 (빠스하 일주일 전)
전국민이 생선 치뿌라(τσιπούρα 도미)와 홍합등을 구워 먹습니다.
빨리 장을 보지 않으면, 전국민 모두가 몇 마리 이상 사는 생선이다 보니 다 팔려 품절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하루 전인 토요일에 저 역시 이 치뿌라를 사려고 여기저기 들렀으나 세 번째의 생선 가게를 들러서야 겨우 살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대형 마트에도 모두 품절된 상태였으니까요.
지난 토요일 들렀던 생선가게입니다.
사람들 표정이 너무 생생하게 살아 있네요.^^
그리고 일요일 생선을 바비큐 그릴에 구워서 홍합 쌀요리와 함께 온 가족이 모여 함께 먹었습니다.
그리고 이날 오후엔 온 가족이 모여 빠스하 쿠키를 만들어 굽습니다.
작년에 딸아이가 만들었던 특이한 모양의 빠스하 쿠키
큰 월요일 ~ 큰 수요일
(이날 부터 일주일 동안은 요일 이름 앞에 '큰'이라는 형용사가 붙습니다.)
유아들을 제외한 전국민이 금요일까지는 모든 종류의 고기, 치즈, 햄, 달걀, 우유 생선 등은 전혀 먹지 않습니다.
처음엔 이런 풍습에 몹시 놀랐었습니다.
원래 기원은 예수님의 죽음을 생각하며 먹는 것을 먹지 않는 것으로 고난을 함께한다는 의미였지만,
현재 그리스에서는 오래 굳어진 국교의 행위로, 신앙이 전혀 없는 대부분의 국민들의 단순한 풍습으로 자리매김
했을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대부분의 국민들은 주식인 고기와 치즈 등을 전혀 먹지 못하고, 대부분 마치 다이어트라도 하듯이
"배고파…"를 연발하면서도 풍습이니 따르는 것입니다.
원래 육식보다는 채식을 좋아하는 저로서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매끼 한식을 만들고 있는데요.
저야 이 풍습을 따르지 않아도 큰 문제될 게 없지만 요리를 해야 하는 입장이라 매니저 씨와 가게 직원들이 먹을
음식을 이 풍습에 맞게 요리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글에서 설명했듯이 그리스에서는 점심이 하루 중 가장 잘 먹어야 하는 식사라, 밖에서 사 먹는 경우도 많지만 늦은 오후 집에 와서 먹고 가거나, 집에서 싸서 갖다 먹기도 하는 것이 흔한 모습입니다. )
월요일은 새우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 화요일은 당근, 버섯, 호박, 양파 등을 볶은 달걀 없는 비빔밥과 야채로 육수
를 낸 국수, 수요일인 어제는 그리스 식 감자 요리와 콩 요리를 해서 점심으로 먹였답니다.
그리고 추레끼라는 특이한 빵을 만들거나 사 놓고, 일요일까지 참고 먹지는 않습니다.(버터를 먹지 않으므로)
큰 목요일
고기를 뺀 돌마다끼아를 만들어 먹습니다. (돌아다끼아를 다른 요일에 해 먹는 지역도 있습니다.)
(2013/04/19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 그리스음식 BEST 참고)
원래 갈은 소고기를 넣어 만드는 돌마다끼아이지만, 소고기를 넣지 않고 만들어도 아주 맛있답니다.
그리고 이 날 저녁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달걀 염색과 달걀 꾸미기를 하는데요.
주로 빨간 색으로 염색을 하지만, 다른 색으로 하기도 하는데 이 과정이 정말 재미있는데요.
작년 염색했던 달걀사진들을 올려봅니다.
시누이가 그린 달걀들^^
제가 그린 달걀들과 시아버님의 달걀들^^
딸아이가 그린 달걀들과 만든 이름표...ㅎㅎㅎ
역시 빠스하 새벽까지 먹지 않고 바구니에 담아두기만 합니다.
큰 금요일
전국민이 하루 종일 야채 외에는 아무 것도 먹지 못합니다.
빵 등의 탄수화물, 식물성 기름 등도 먹을 수 없습니다.
물론 저는 그냥 시어머님 안 보실 때 먹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면 전국의 동네 마다 정교회의 사제들의 십자가를 매고 빈 관을 든 행렬이 동네로 내려오는데,
온 동네의 사람들은 그 행렬을 따라 특이한 향을 들고 초를 들고 동네를 한 바퀴 돈답니다.
물론 신앙이 없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보니 이 행렬을 도는 것은, 수백 명의 동네 사람들이 오랜만에 수다를 떨며
함께 모여 도는 동네 잔치 분위기 같습니다.
(도리어 만약 신앙이 있는 외국인 입장에서 본다면, 이 행렬은 상당히 엄숙한 행렬이라 뜻 깊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큰 토요일
전 국민이 오징어 몸통을 동그란 모양으로 자른 오징어튀김을 먹습니다.
(정말 맛있습니다.^^)
그리고 소 간이나 염소 간을 삶아 함께 넣은 쌀 요리를 미리 만들어, 염소 뱃속에 채워 넣습니다.
이렇게 준비된 염소는 일요일에 통구이로 구워질 준비를 하는 셈이지요.
토요일 저녁 대부분의 신앙이 없는 국민들도 이날만은 일 년에 한 번 정교회에 가는 날인데요.
왜냐하면 이날 12시가 넘어 사제의 축복을 받지 않으면 뭔가 일이 잘 풀리지 않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이날 정교회
에서 받아온 촛불을 40일 이상 꺼뜨리지 않고 집에 켜두면 가정이 잘 된다는 교회와 상관 없는 좀 미신적인 풍습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이날 교회 주변에서는 폭죽과 불꽃놀이 잔치가 열리고, 역시 신앙이 있는 사람 입장에서 본다면
자정 일요일이 되면서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한다는 의미의 폭죽처럼 여겨져 감동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
은 교회 앞 마당의 불꽃놀이를 즐기기 위함도 크다고 볼 수 있습니다.
12시가 넘어 집으로 돌아온 각 가정의 사람들은 미리 끓여둔 소 혓바닥 스프를 먹습니다.
처음 이것을 먹었던 날을 저는 잊을 수 없는데요.
생각보다 부드러운 고기이긴 했지만, 낯선 소 혓바닥 고기는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 고기인데다가,
12시가 넘어 고기 스프를 먹고, 늦은 새벽까지 이어지는 삶아 염색해 바구니에 넣어 두었던 달걀을 깨는 내기는
즐겁기도 하지만 참 피곤하기도 하답니다.
그리고 드디어 빠스하!
염소 통 구이와 창자를 구이를 해서 먹는 이날의 풍습은 이번 일요일 가문의 50명 이상이 저희 집에 모여
'일주일간 잘 못 먹었던 사람들이 하루 종일 먹는' 빠스하의 현장을 통해 월요일 포스팅에서 생생하게 알려드리
도록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년 빠스하 사진입니다.^^
이렇게 굽기 시작해서 3 시간 이상 기계로 뱅글뱅글 돌려서 구우면?
요렇게 구워진답니다.
신기한 그리스 명절 빠스하의 풍습들 재미있으셨나요?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 여자들은 조금 피곤하겠지요? 아무래도 그리스 역시 가족들이 계속 모이는 명절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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