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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내 숨통을 틔우는 그리스인 시어머니의 단점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3. 28.

내 숨통을 틔우는

그리스인 시어머니의 단점

 

 

 






 

드디어! 저희 시어머님 이야기를 하는군요.^^

한 사람에 대해 단정적으로 몇 문장에 추려서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저희 그리스인 시어머님이 어떤 분인지 얘기를 좀 해볼까 합니다. 흠흠..자, 시동을 걸어볼까요? (왠지 저, 너무 신난 것 같은걸요?)


 

1 . 시어머님은 청소, 또 빨래, 또 청소, 또 빨래를 하시는 분

 

저도 상당히 깔끔한 부모 밑에서 자랐습니다. 저희 엄마는 식사 후 싱크대가 뚫리도록 닦아대는 스타일이시고, 아버지는 진공청소기를 돌린 후, 매일 분해해 청소하는 분이십니다. (젊을 땐 바빠 그렇게 까진 못 하셨는데, 나이가 드시니 늘 그러시지요.--;)

그래서 저 역시 바깥일이 바빠 일을 못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깔끔하게 해 놓고 살려고 하는 편입니다.

그러나 사실 한국에 살 때는 야근을 하고 밤 1시에 들어왔던 날도 있었고, 세미나에 지방 강의에 정신 없이 출장을 다녔던 적도 있었기 때문에, 양껏 깔끔하게 살지는 못했었습니다. 일하며 어렸던 딸아이 돌보기에도 정신 없던 시간이었지요. 일로 걸려오는 통화로 전화기를 손에서 놓을 수가 없을 정도로 바빴었으니까요.

그러다가 그리스에 살기 시작하면서, 도무지 한국과 많이 다른 그리스 청소 방법에 적응도 안되고(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번 소개할게요.), 시어머님과 앞 뒷집에 붙어 살기에, 수시로 들락날락하시는 시어머님이 늘 집안의 청소상태를 볼 수 있어서 더더욱 긴장의 연속인 시간들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리스는 여름 7개월간 전혀 비가 오지 않는 건조한 날씨로 인해 먼지가 집안으로 많이 들어옵니다. 게다가 신발을 신고 들어올 수 있는 입식 문화이기 때문에 더더욱 먼지가 쉽게 쌓이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그리스 시어머니들처럼, 저희 시어머님도 청소, 빨래, 다림질에 엄청나게 열을 올리는 분이십니다.

자 한번 상상을 해보세요.

매일 아침 청소를 할 때마다, 소파 밑, 침대 밑까지 가구를 옮겨가며 다 청소를 하십니다. 여름시즌이라 직장을 가셔야 해 바쁘시더라도, 매일 모든 크고 작은 선반, TV, 냉장고 문짝, 현관 앞뒤 문짝, 창문까지 닦으십니다.

게다가 전에도 말씀 드렸지만 거의 이틀에 한번 침대 시트와 베개 커버를 새 것으로 갈아 씌우는데, 그 빨래와 매일 벗어놓는 옷의 빨래를 더하면 당연히 빨래가 많을 수 밖에 없어서 매일 빨래를 하십니다. 두툼한 외투는 어쩔 수 없지만, 가벼운 봄여름 점퍼는 이런 시어머님의 영향으로 온 가족이 한번 이상 절대로 입지 않습니다. 한 두 시간 외출로 새청바지를 입었더라도 다음날 다시 입지 않습니다.

자, 저희 집 빨래 양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되시지요? 그래서 아기가 있는 집도 아닌데, 시어머님과 저희 집 세탁기는 하루도 쉬지 못하고 돌아갑니다. 하루도 쉬지 않고 2층 베란다의 긴 빨랫줄 6줄은 빨래로 꽉꽉 들어차 있습니다.

 

처음 저는 정말 이런 시어머님의 모습에 기절초풍할 정도로 놀랐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에 하루에 몇 번씩 손녀를 본다는 이유나, 맛있는 것을 먹어 보라도 갖다 주는 이유 등으로 들락거리시면서, 때 마침 제가 청소를 하고 있으면 저는 할 예정도 없던 소파 밑을 청소하라고 친절하게 가구를 옮겨 주시기 까지 하시는 것이지요.

헐

저는 정말 미춰버리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제 몇 년 그 생활을 하다 보니, 저도 싫은 소리 듣기도 싫고 눈치보기도 싫어서, 시어머님이랑 똑 같은 패턴으로 청소, 빨래, 다림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가끔 미국에 있는 동생이 제게 전화를 할 때, 주로 첫 인사는 "언니 뭐하고 있었어?"인데

저는 대부분 "빨래 널다 받았어." "빨래 개키다 받았어." "다림질 하고 있었어." 인 경우가 많아진 것입니다.

대부분 동생이 제게 전화하는 시간은 미국 시간으로 동생이 일 끝나고 좀 한가한 오후 시간인데, 그럼 그리스는 저녁시간이라 하루 일과를 마치고 주로 이런 일들을 하고 있을 때 전화를 받게 되어서 그런 셈이지요.

 

어떻든 오늘도 바쁜 중에도 열심히 청소를 하며 소파 아래, TV 테이블 뒤에, 침대 아래까지 가열차게 가구를 옮겨가며 청소 하고 있는 저의 모습이, 어이없고 우습게 여겨 저서 혼자 헛웃음을 웃을 때도 많답니다.

 


2. 시어머님은 직설화법의 선구자

 

저희 식구들, 심지어는 시아버님, 시누이 까지도 시어머님께 부탁하는 말이 있습니다.

평소 시아버님께 의존적이고 순종적인 성향이 강한 시어머님이지만, 이 부분만큼은 남편도 딸도 참기가 어렵기 때문인 것이지요.

"엄마! 제발 생각을 먼저하고, 그리고 말을 해! 말을 먼저 한 후에 생각하지 말고!!!!"

평소에 죽이 잘 맞는 시누이와 시어머님이지만, 어머님이 가끔 아무 생각 없이 던진 말 때문에 시누이가 상처를 받아 자기 집으로 급작스레 돌아가 버릴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가족들도 이런 시어머님의 성격을 알고 있다는 것은 저에게는 다행스런 일이지만, 정작 시어머님 본인은 본인이 무슨 상처 주는 말을 했는지 전혀 인지를 못하실 때가 많습니다.

예를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며칠 전, 딸아이시어머님은 대화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제 작은 동생이 임신을 해서 아이가 태어날 거라는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는데, 그 아이가 딸이라는 소식을 들은 후였습니다.

제 딸아이할머니에게

"그런데 그 아이가 딸이면, 한국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그 아이를 나보다 더 예뻐하면 어떻게 하지?"

지레 걱정하는 질문을 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인 저희 시어머님저희 딸아이의 걱정하는 기색이나, 듣고 싶어하는 대답과는 아무 상관 없이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당연히 더 예뻐 하시겠지. 걔는 아기이고 너는 큰 애인데, 아무래도 아기가 더 예쁘지 않겠니."

헉

딸아이는 곧 울먹이기 시작했고, 그제야 상황이 파악되신 시어머님은 "아니야, 그게 아니고…" 라고 말하셨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 수습은 물 건너 간 일이었답니다.

이렇게 평생 돌직구를 구사해온 직설화법의 선구자인 저희 시어머님으로부터, 며느리인 제가

얼마나 많은 상처의 말을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그냥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습니다.

다 나열하다가는 그런 말을 듣고도 어떻게 사냐는 식의 댓글이 분명 올라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3. 시어머님은 딸과 아들의 일에서만큼은 이성 상실 주의자

 

모든 부모는 자식의 일에 대해 이성적일 수 만은 없습니다. 특히 헌신적인 그리스 시어머님들은 더더욱 그런 태도를 취하기가 어렵겠지요.

하지만 저희 시어머님은 당신의 딸 아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게 됐을 때, 침착하게 일을 처리하거나 돕기 보다는

일단 이성을 상실해 버리는 스타일이십니다.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작년에 시누이가 작은 수술을 했었는데, 시어머님, 친척 끼끼가 새벽부터 병원 수술실 앞을 지키게 되었습니다.

두 시간여의 수술 시간 동안 시어머님은, 정말 작은 수술이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계셨고 수술이 끝나고 회복실에 있다가 제 발로 멀쩡히 걸어 나와 시어머님 옆에서 있는 시누이를 몰라보고, 수술실에서 다른 환자가 이동침대에 누운 채 옮겨 지고 있는데 그 옆에서 병원이 떠나가라 시누이 이름을 부르며 뛰어 쫓아가시는 거였습니다. 제 옆에 멀쩡히 서였던 시누이는 너무 기가 막혀서 "엄마!" 하고 소리를 질렀고, 그제야 정신이 돌아온 시어머님은 휘청거리며 제 쪽으로 걸어오셨습니다. 그러고도 수술 받은 시누이보다도 정신을 못 차리시고 넋을 놓고 계셔서 오후에 잠깐 시누이를 보러 오신 시아버님께서 결국 시어머님의 뺨을 한번 살짝 때려주셨더니, 그제야 여기가 어디고 본인이 누군지 득도한 표정이 되셔서 시누이에게 뭐 필요한 게 없냐고 호들갑을 떠셨습니다. 결국, 시누이 병원일 뒤처리는 저와 끼끼가 다 맡았고, 딸이 아픈데 정신을 못 차리는 어머님께 짜증이 난 시누이는 제발 집에 가라고 소리를 지르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


<동그란 얼굴의 올리브나무 씨와 CD만한 얼굴의 시어머님- 시누이의 퇴원 후 가족 외식 자리에서, 여전히 기운이 없으신 시어머님>


제가 눈으로 본 것 외에도 이런 스토리들은 100개도 넘게 존재해서, 마치 축구선수의 코믹스런 헛발질을 회자하듯, 시어머님의 지난 세월 어이없었던 행동들은 가족 모임 때마다 회자되고 있습니다.

 

결론은 아들인 매니저 씨가 시키면(부탁하는 게 아니라) 무엇이든 하고, 딸이 시키면 어디라도 달려가 도우려고 뒷발을 굴러가며 상시 대기 시동을 걸고 있는데, 너무 가열차게 뒷발을 구르시다가 목적지에 도달하기도 전에 넘어져서 우는 상황이 발생하곤 한다는 것입니다.

어찌 보면 참 귀엽기도 하십니다.

 

어떻든 툭하면 장성한 아들을 포옹하고 얼굴을 만지고 "아이구 우리 아가"라고 하시고, 여느 그리스인 시어머니들처럼

제가 없을 때도 저희 집에 당연히 들어와서 필요한 걸 찾아가시는 이런 1,2,3 성향의 시어머님 때문에 미춰버릴 것 같던 제가,

정말 숨통이 탁 하고 트일 때가 있는데, 그건 저희 시어머님께서 능숙하게 못하시는 일을 발견할 때입니다.

굳이 단점이라고 제목을 정하긴 했지만, 사실은 단점이라기 보다 사람마다 갖고 있는 부족한 부분에 대해 발견할 때인데요.

그 청소대장인 시어머님께서는 공교롭게도 공간을 활용해 물건을 정리하는 것을 잘 못하십니다.

ㅎㅎㅎ

물건을 깨끗하게 치우시기는 하시지만, 어떻게 정리하면 좁은 공간에 많은 물건이 들어가는지, 잘 어질러지지 않는지 잘 모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신발장을 신고 벗기 좋게 정리해 둔 것이나, 싱크대 안을 정리해둔 것을 보실 때, 늘 "어떻게 그렇게 했니?" 라고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평소엔 버럭버럭 거리셔도 다행히 자존심을 많이 세우는 성격이 아니셔서 저런 질문도 하실 수 있는 것 같습니다. )

그리고 케이크 쿠키 등의 디저트는 끝내주게 만드시면서, 요리는 늘 자신 없어 하시고 지루해 하십니다. 자식들의 요리사 유전자는 아무래도 아버님 쪽에서 온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리할 때 손이 빠른 편인 저에게 늘, "그거 어떻게 그렇게 하니?"라고 물어보십니다.

 

저는 정말 그나마 이런 부분이라도 어머님이 잘 못하셔서

정말 정말 정말 x 1,000,000,000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것까지 모두 완벽하게 잘하시면서 제 뒷집에서 저희 집을 들락거리셨다면, 어쩌면 저는 지금쯤 꽃을 머리에 꽂고

우리 동네 아크로폴리스 들판을 아하하하아하하하하하하 돌아다니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요.


샤방앗하하하하하....여기는 어디?? 나는 누구???

 

평소 사람을 숨막히게 하지만, 완벽하지는 않은 시어머님을 주신 신께 아무래도 오늘은 감사기도라도 해야 하는 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점점 며느리인 저를, 살갑지 않은 아들보다 더 의지하시는 시어머님의 모습이 새삼 눈에 들어오는 날이기도 하네요.

또 저도 어머님께 저의 부족한 모습을 감추려 하기 보다, 보여드리고 배우려는 모습으로 다가가야겠다고 여겨지는 날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도 본인이 고부간의 갈등 중에 있거나

혹은 갈등의 핵(아들)이거나,

주변에서 이런 갈등을 보신 적이 있으시지요?

분명히 내 숨통을 조여오는 상대에게도(시어머님, 혹은 며느리, 혹은 아내나 어머니)

찾아보면 뭔가 부족한 부분이 있을 거에요.

그걸 발견하시면 조금은 숨통이 트여, 상대가 덜 밉게 보일지도 몰라요~

좋은 하루 되세요~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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