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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그리스 남자들이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그들만의 심리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3. 23.

그리스 남자들이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그들만의 심리

 

 

 

 

 

 

처음 그리스에 이민을 왔을 때, 이상해 보였던 일이 있습니다.

평소 유쾌하고 친절한 편인 그리스 남자들이라 (게다가 힘이 넘치는) 분명히 집안일도 잘 도와줄 듯 보였는데,

실상은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아내들에게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시키기만 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친하지도 않은 젊은 친척 남자가 와서 '부탁인데요'라는 말도 하지 않고, 반 명령조로 커피를 만들어 줄 것을 요구하곤 할 때는, 마치 여자를 집안일 하는 종 취급하는 것 같아서 기분이 무척 나빴었습니다.

그런데 더 충격이었던 것은 그런 명령조로 말하는 남자에게 별 불평 없이 커피를 만들어 주는 그리스 여자들이었습니다.

그러니 그리스 여자들이 순종적이라는 등의 당치도 않는 관광객의 시각그리스 여행기에 등장하곤 하는 것입니다.

결코 순종적이지 않고 도리어 여느 다른 나라보다도 여권이 강력한 그리스 여자들의 힘은, 그리스의 가족 문화인 여자 집안 중심으로 모이고 여자가 결혼할 때 집을 사는 문화 안에 있습니다.

<참고 글: 2013/01/09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그리스에선 결혼할 때, 여자가 집을 산다?>

그럼 그리스 여자들은 왜 그렇게 순종적인 척, 하는 걸까요?

그리고 그리스 남자들은 왜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 하지 않는 걸까요?

 

수 년간 그리스에 살면서 이 이유에 대해 분석해 보았습니다.^^

 

 

    하나. 그리스 남자들은 스파르타 후예들로 마초 근성이 탁월

 

스파르타를 소재로 다룬 영화 300의 한 장면과 그리스 지도의 스파르타 

그리스 전 지역이 스파르타였던 것은 아닙니다. 스파르타는 현 그리스 내의 일부 지역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남자들은 이 스파르타의 핏줄과 문화를 여전히 갖고 있는 듯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일단 다른 나라 남자들에 비해 힘이 센 편입니다. 그 이유는 육체 노동에 몸을 아끼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에서는 대개 조금만 여유가 있어도 시 외곽이나 다른 지역에 별장을 지어 놓고 그 곳에 주말마다 가족단위로 쉬다 오는 경우가 아주 흔한데, 그런 별장을 지을 때 시간이 걸리더라도 본인들이 직접 집을 짓는 경우가 흔합니다.

그렇다 보니 어릴 때부터 부모나 조부모를 따라다니며 직업과 관계 없이 이런 류의 힘쓰는 일들을 배우게 되고, 자연스레 근육이 발달하고 힘이 세 지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집안 일을 여성의 영역이라는 생각이 여전히 지배적인 것입니다. 반대로 집안에서 무언가 고쳐야 하는 경우 여성을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지붕에 올라가거나 전구를 갈거나 못을 박거나, 이런 류의 일들은 남자의 영역이라고 생각해서 여자에게 이런 일을 시키는 남자는 못난 남자로 여기는 성향이 강합니다.

     

     

    둘. 실권 없는 자들의 소리 없는 외침

 

여자가 집을 사고, 그래서 집은 여자 명의 이고, 명절이면 처갓집 중심으로 모여야 하는 이 그리스의 문화에서 남자들은 사실 경제적으로 실권자가 될 수가 없습니다. 물론 남편을 존중할 줄 아는 지혜로는 여자들의 경우 친정 집 파워(잦은 친정 집 모임에서 내 편이 되어주고, 경제적으로도 큰 소리 치는)와 남편 사이에서 중재를 잘 하며 남편과 경제권을 잘 분배해서 생활할 줄 알지만, 친정 집 파워만 믿고 당연히 너는 이런 걸 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식으로 남자를 은근히 깔보는 여자들도 많습니다.

그렇다 보니 실권 없는 남자들이, 그러나 스파르타 후예인 남자들이, 자신의 강함을 보여줄 수 있는 방법은 여자 일은 안 하는 것입니다.

맞벌이라 하더라도 집안일은 여자들이 하도록 하고 자기 가정에서라도 당당해야, 그나마 잦은 처갓집 모임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심리는 역으로 우리나라의 여자들을 보면 이해할 수 있는데요.

가족 중심의 문화가 강하고 시댁 중심으로 모여야 하며, 남자가 결혼할 때 집을 사는 문화를 갖고 있는 한국의 경우, 억울한 게 많은 여성들의 목소리가 집안에서 클 수 밖에 없고 집안일도 최대한 남자와 분업해서 하길 요구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반대로 힘쓰는 일들도 척척 하는 여성들이 많은 것 또한 이런 스스로 강해야 부계 중심의 사회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라는 심리를 반영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셋. 요리는 능력 과시의 도구

 

그러나 이런 그리스 남자들이 하는 유일한 집안일이 요리라고 다른 글에서 말씀 드렸었는데요.

그것은 맛있는 것을 좋아하고 먹는 파티와 국경일이 많은 그리스 문화에서 도리어 자신의 능력을 뽐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그리스 내에는 요리를 잘 하는 남자들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이 해외로 이민을 갈 경우, 식당을 주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도 이런 남자들이 많기 때문에 가능한 일인 것이지요.

 

물론 예외적으로 집안일을 도와주는 남자들도 있는데, 대개는 여자가 자영사업을 하거나 전문직이어서 일반 직장인인 남자보다 근무시간이 현저히 많은 경우입니다. 아무래도 그런 경우는 수입도 크게 차이가 날 것이고, 집안에서 다달이 지불할 집 대출금이나 공과금 자녀 교육비 등도 다른 집처럼 부부가 비슷하게 부담하기 보다, 여자가 더 많이 부담하게 되겠지요. 원래 그리스 가족문화의 힘의 논리에서 여자 집안 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힘이, 그런 경우 더 기울어지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아무리 스파르타 후예라 하더라도 여자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안일을 돕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저희 집 얘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매니저 씨도  - 그리스 경제위기로 사업을 꾸려가시기 어려워진 시아버님 요청 때문에 그리스에 들어오지 않았었다면 - 피따 기로스 식당을 열려고 알아보고 있었답니다.^^

짜지끼 소스, 양파, 토마토, 훈제 고기를 넣어 싸서 먹는 피따 기로스

그러나!

그리스 남자들은 요리만 하지 요리 재료 다듬기, 요리 한 후 어질러진 뒤처리는 모두 여자의 몫이기 때문에

저는 매니저 씨가 요리하는 게 늘 반갑지는 않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 그리스 전통음식 돌마다끼아, 예미스타, 파스띠치오 등을 만들어서 제 친구들과 가족들에게 자주 대접해 주던 매니저 씨였는데, 그 때는 뒷 청소 설거지를 함께 했었답니다.

 

그리스 전통 음식 돌마다끼아 & 짜지끼 소스

 

그런데 그리스로 돌아오니 손 하나 까딱 안하고 저와 시어머니를 부려먹는 매니저 씨를 보면서

이 사람이 한국에 있을 땐,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편인 한국남자 정서대로, 그리스 있을 때는 집안 일 안 도와주는 그리스남자 정서대로 사는구나 싶어서 더 얄밉기도 하답니다.^^

반면에 저는 아들이 없는 집 장녀로 태어나서 웬만한 남자가 하는 집안 수리는 다 할 줄 아는 데도 불구하고, 그리스에 와서는 이런 문화 때문에 그냥 안 합니다.

빨래 청소 설거지 등의 집안 일을 훨씬 더 많이 하고, 대신 못 박기나 전등 갈기 같은 건 이제 안 하게 된 셈입니다.

 

어떻든 이민 초기에는, 밤에 해리포터 투명망토라도 빌려 쓰고 친척집을 돌며 자고 있는 남자들만 한대씩 꿀밤을 먹이고 돌아다니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눌렀을 만큼, 그런 집안일에 손 하나 까딱 안 하는 그리스 남자들이 얄미웠는데,

시간이 이렇게 흐르면서 그리스 가족문화도 알게 되면서,

또 이혼을 하는 경우 거의 맨 몸으로 쫓겨나다시피 하는 그들의 사정을 들여다 보면서

그들 나름의 심리를 이해하게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커피 만들어 내라는 남자 친척들의 명령조의 말도 별로 얄밉지 않고,

그들에게 그냥 해주는 그리스 여자들도 이해가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들이 실질적 기득권 자인데,

굳이 그런 일에 열 낼 필요가 없겠구나 싶습니다.

 

 

집안일 해줄 누군가가 우리 집안에 있다 해도

그냥 한번 도와보는 주말이 되신다면

더욱 풍성하고 좋은 날이 되시지 않을까요? 

만약 여러분이 집안일의 당사자시라면

나도 휴가가 필요한데, 조금만 도와달라고 먼저 손 내밀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

사실 도와줘도 일을 잘 못하니 그냥 안 시키는 것도 있잖아요?^^

못해도 대충 잘 한다 잘 한다 해야 다음에 또 도와주더라구요.

매니저 씨 이야기냐구요? 그럴리가요.

제 딸아이 이야기입니다. ㅎㅎㅎㅎ

굶지 마시고, 밥 잘 챙겨 드시는 주말 되세요^^

좋은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