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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항상 폭소를 부르는 나의 외국인 시할머니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5. 4.

항상 폭소를 부르는

나의 외국인 시할머니

 

 

 

 

 

 

 

저에겐 두 분의 그리스인 시할머님이 계시는데 오늘 이야기는 그 중 시외할머님, 그러니까 시어머님의 엄마에 관한이야기입니다.

이 시할머님에 대한 이야기는 전에 팬티스타킹 착용에 대해서도 한번 말씀 드린 적이 있는데요.

지금 본격적인 명절을 보내시기 위해 딸인 저희 시어머님 댁에 와 계십니다.

그런데 매번 오실 때마다 모계 사회인 그리스답게 사위(제 시아버님)의 분노를 유발하셔서, 눈치 0단인 시외할머님은 어쩔 수 없이 저희 집 소파베드를 펼쳐 주무시거나 딸아이 방에 있는 여분의 침대에서 주무시곤 한답니다.

그러나 저희 부부나 딸아이에게는 한 세대 건너의 일이라 그런 할머님이 귀엽고 재미있기만 한데요.

 (만약 시어머님이셨다면 얘기가 좀 달랐을 것 같습니다.^^)

 

시외할머님과 시어머님

 

 

  

   시아버님의 분노를 유발하시는 할머님의 특징을 잠깐 설명 드리자면요.

   그리스인 여성답지 않게 치우는 걸 싫어하셔서 자기 몸만 깨끗하게 돌보시고 집은 난장판이 따로 없습니다.^^  

     (저희는 그 집에서 뭔가를 잘 먹지 않으려 하지요.)

  하고 싶은 말은 상황과 상대의 기분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돌직구를 날리십니다. (이건 저희 시어머님이 엄마를 좀 닮으셨을까요? 저희 시어머님이 좀 덜 하신 것 같습니다^^)

  ♡ 아흔 다된 노인 분께서 설명 없이 가고 싶은 데로 막 돌아다니셔서 가족들 심장을 철렁하게 하십니다.  

  잘 때 코를 많이 고시고 잠꼬대를 하십니다.

(예민하신 시아버님은 한 집에서 도저히 못 주무시는데, 저희 딸아이와 매니저 씨는 둘 다 잠꼬대를 하기 때문에 저희 집에서는 저만 희생하면 된답니다^^)

 

 

 

자, 이 네 가지 할머님의 특징에 따른 폭소를 부른 에피소드를 오늘은 두 가지만 소개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야기1.

작년에 할머님께서 그렇게 아무데나 밭으로 산으로 돌아다니시다가 혈압이 급 상승해 국립종합병원에 입원을 하셨는데요.

어머님과 가족들은 모두 바쁜 여름 시즌이라 할머님을 돌봐드릴 수가 없어서, 컴퓨터만 있으면 비교적 자유롭게 일할 수 있는 제가 할머님 곁을 출퇴근하며 며칠간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프신 분 답지 않게 맛 없어 보이는 병원식을 얼마나 잘 드시던지요.

ㅎㅎㅎ

할머님은 워낙 말씀이 많은 분이고 심하게 고향 깔파토스 섬 사투리를 쓰시기 때문에 그냥 저는 할머님의 말씀을 계속 고개를 끄덕이며 들어 드리기만 했습니다.

그러던 중, 담당 의사들이 회진을 돌게 되었고, 할머님은 회진 돌 때 보호자가 나가 있어야 하는 그리스 병원 문화를 모르실 리 없는데도, 계속 의사에게 제가 같이 있어야 한다고 우기시기 시작하시는 거였습니다.

안습

저는 민망함에 할머님을 달랬지만, 막무가내로 계속 우기시니 담당과장쯤 보이는 연세 지긋한 의사는

"도대체 이 여자분이 누구길래 그렇게 못 나가게 막으시는 거에요?" 라고 물어왔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누가 봐도 동양인인 제가, 누가 봐도 그리스인인 푸른 눈의 할머니를 계속 간호하고 있으니, 어쩌면 의사는 저를 전문 간병인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할머님은 다짜고짜 이렇게 대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 손녀야."

 

"네???" 

생각중

 

의사는 제 얼굴과 할머님 얼굴을 번갈아 쳐다보시며 고개를 갸우뚱 하더니 다시 물었습니다.

 

"아니요. 어르신. 말을 잘 못 알아 들으셨나 본데, 어르신과 관계가 어떻게 되는 분이냐고요?"

 

"내 손녀라니까 귓구멍이 막혔나 왜 똑 같은 말을 자꾸 물어보고 그래?!"

 

헉

저는 민망해서 손녀가 아니라 손주며느리라고 설명하고 싶었지만 설명할 틈도 없이,

할머님은 나이 지긋한 의사의 귀를 잡아 당기시더니

"손녀라고, 손녀, 손녀!" 라고 무한 반복하셨고, 옆의 간호사와 다른 의사들이 말리고 난리가 아니었습니다.

헉

보다 못한 옆 침대 할머니께서 "손주며느리야. 의사 씨." 라고 말하며 사건은 종결되었습니다.

결국 회진이 끝나도록 저는 병실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고, 옆의 다른 다섯 할머님들은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웃느라고 아주 정신을 못 차리셨습니다.

ㅎㅎㅎㅋㅋㅋ우하하

 

 

이야기2.

하루는 저희 집에 먼 친척 사촌인 레프테리스 군 금발머리의 명랑해 보이는 새 여자친구를 데리고 불시에 찾아왔습니다.

마침 저희 집에서 낮잠을 주무시고 일어나 커피를 드시던 할머님께서 그들을 반갑게 맞이하게 되셨는데요.

레프테리스이 예쁜 여자친구를 자랑하고 할머님께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할머니, 제 여자친구 마띠나에요. 예쁘지요?"

여행

 

그리고 할머니의 한 마디에 저와 레프테리스 군은 쓰러지도록 놀라고, 옆에 있던 마띠나는 울면서 집을 뛰쳐나갔는데요.

도대체 뭐라고 말씀하셨길래 그 자리의 모든 사람을 멘붕시키셨을까요?

할머님은 표정 하나 변화 없이 아주 평소의 말투로 이렇게 대답하셨답니다.

 

"응. 거 참 창녀같이 생겼구나."

헉

 

그녀가 그날따라 좀 노출이 심한 옷을 입고 오긴 했지만, 여름이었기 때문에 그리스 여성들이라면 얼마든지 입을 수 있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렇게 느끼셨더라도 그렇게 대 놓고 돌직구를 날리시는 바람에 그 둘의 관계가 그 후 어떻게 진행 되었는지 안 봐도 비디오지요?

당시엔 식겁했던 이야기지만, 지금은 두고두고 이런 이야기들로 우리끼리 낄낄거리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저녁, 할머님이 코를 골골 고며 잠꼬대하며 주무실 텐데, 잠꼬대 대장 매니저 씨와 딸아이와 셋이 아래 위층에서 자면서 서로 대화하는 내용을 자장가로 들으며 밤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그들이 평소에 각 방에서 자주 하는 잠꼬대 내용을 공개하며 이 글을 마칩니다.

 

딸아이       "내 밥이라고! 너 혼자 먹으면 안 돼! 미카!" 

매니저 씨   "날 믿어보세요. 이건 독일 거라고요!"

할머님       "나 아무데나 갈 거야. 말리지 말라구!"

우하하

 

여러분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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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 글을 여기까지 쓰고 편집하는데, 제 옆에서 혼자 TV를 보시던 할머님께서 TV속 주인공과 얘기를 나누고 계시네요.--;ㅎㅎㅎㅎ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