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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사랑을 잃은 너에게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25. 8. 24.

2016년 어느 날 아버님과 마리아나가 장난치고 노는 모습이 흐뭇해 찍어두었던 사진

 

나는 너를 잘 몰라. 어제 어딘가에 뜨는 기도를 부탁하는 네 글을 처음 보았어.

갑자기 사랑하는 사람이 작별인사를 할 틈도 없이 죽어버렸다는 글. 

너는 그렇게 홀로 아이들과 남겨져 버렸지.

그리스는 8월엔 더운 바람이 불어. 바람을 타고가 날아가 위로를 건넬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 바람에 축복의 말들을 담는다면 너에게 닿을까. 무슨 말이 다 소용이 있을까. 

나도 4년 전 여름에 사랑하던 시아버지를 잃었어. 너무나 갑자기. 한 순간에.

항암 치료 중이긴 했지만 잘 견디고 계셨거든. 

집에 돌아와 힘들다던 그날, 식은 땀을 흘리며 부엌 식탁에 앉아 계시는 아버님께 해드릴 수 있는 게 없어서 물었어.

아버님, 제가 잠시 기도해도 될까요? 

그래. 그래 줘.

나는 아프다는 아버님의 등에 손을 대고 한참을 조용히 기도를 했어. 부디 아프시지 않았으면 이렇게 힘드시지 않았으면

시어머님은 훗날 그 기도를 두고두고 기억하며 그날 아버님이 편안해 하시며 계속 나를 찾았다고 하셨어.

나는 작은 아이를 돌보느라 잠시 놀이터에 다녀왔어. 그날도 이렇게 여름 밤바람이 불고 있었지.

늦은 저녁 집에 돌아오니 아버님이 나를 찾는다고 어머님이 불러서 다시 갔지.

아버님은 소파에 기대어 많이 힘들다고 하셨어.

우리는 일단 구급차를 불렀어.

장정같은 남자 구급대원 두 사람이 휠체어를 들고 왔어. 전화로 잘 걸어다니는 상태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지.

아버님은 일어나서 잠옷을 벗고 신사답게 잘 다려진 바지를 갈아입고 좋아하는 티셔츠를 입으셨어. 

그리고 잘 걸어와서 휠체어에 앉으셨지.

그런데 아버님이 휠체어에 앉자마자 구급대원들이 소리를 질렀지.

난 아버님 얼굴이 보이는 곳에 정면으로 서 있었어. 

갑자기 혀가 밖으로 나오면서 의식을 잃으셨지.

구급대원들이 심폐소생을 했지만 그게 아버님의 마지막 모습이었어. 

2021년 여름, 코로나로 모두가 힘들었던 그 세월 끝에서

아버님은 우리 곁을 그렇게 떠났어.

미처 인사할 틈도 주지 않고.

의사는 말했지.

어차피 악질적인 종류의 암이 진행되고 있어서 항암이 잘 되었더라도 오래 사시기는 어려웠을 거라고.

원래 심장질환이 있어서 항암을 견디기 어려우셨던 거라고.

그래도 우리에게 인사할 시간이 있었다면 좀 괜찮지 않았을까?

정신줄을 놓고 울던 시누와 어머님. 밤새 통곡을 하며 아버지를 부르던 남편.

눈치껏 할아버지를 찾지 않던 아이들.

나는 이를 악물고 버텼어. 나라도 정신을 차려서 장례를 치르고 가족을 지켜야 했거든.

그리고 공황증상이 왔지. 6개월 정도 몹시 힘들었어. 

상담심리를 공부한 덕에 공황장애가 되기 전에 치료를 받고 나아질 수 있었어. 

 

그래서 갑자기 사랑을 잃은 너에게 말하고 싶어.

힘들겠지만 상담 꼭 받고

혼자 있을 때 아이들 없을 때 많이 울어.

울고 싶은 거 다 울고 가버린 아내에게 하고 싶은 말 다 쏟아 내.

편지도 쓰고 아내를 추억하는 예쁜 애도 공간도 집에 만들고

아이들이 엄마 이야길 편하게 하도록 자꾸 물어봐 주고

슬픔을 직면하는 그 길고 숨막히는 과정을 잘 통과하여

그렇게 눈물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때가 되고

아내 이야기를 지금 내가 아버님 이야기 하는 것처럼 이렇게 할 수 있게 될 때가 되면

너의 애도는 끝이 나는 거야.

 

내가 너를 개인적으로 몰라서 이런 긴 말을 전할 수 없어.  

근데 내 마음이 너무 아파서

이렇게 닿을 지 알 수 없는 글을 써서 

그리스 8월 더운 밤바람에 실어서 보내 봐.

기도할게.

 

꿋꿋한올리브나무

 

 

#슬픔을 함께 통화하는 갑작스럽게 사랑하는 이를 잃은 애도상담은 지금까지 제가 배워서 해 본 상담 중에 가장 힘든 상담이었습니다. 그러나 내담자들은 상담을 통해 이전의 저처럼 잘 버티고 회복해 주었습니다. 

#이제는 매니저 씨와 가족 모두 아버님 이야기를 조금은 편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블로그에 오늘 일을 계기로 아버님 소식을 전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