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흐의 그림을 보면서 그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상상의 세계를 넘나듭니다. 아름다운 프랑스 남부 바닷가 앞에서 그림을 그리던 그는 어떤 표정이었을까, 어깨는 움츠리고 있었을까, 옷소매에 유화물감이 덕지덕지 묻어 있었을까, 그림을 그리며 자화상에 표현된 턱수염을 한 번씩 쓱쓱 문질렀을까, 우울감으로 고통스러워하던 순간엔 어떤 눈빛을 하고 있었을까.
한 번도 만나보지 못한 사람이 남긴 그림들을 보며 그를 짐작해볼 뿐입니다.
그런데 일상에서나 상담소에서 만나는 사람들도 비슷합니다. 이미 만났고 상담심리를 배우는 과정에서 다양한 상담학 이론과 치료적 기법을 배우며 사람의 비언어적 표현을 읽어나가기 시작했음에도 '한 개인을 안다라고 나는 말할 수 있는가?' 자문한다면 '아니다' 대답하게 됩니다. '온전히까지는 아니어도 대략적으로?' 물어도 여전히 '아니' 고개를 완강히 젓게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담사들은 배운 것이 그러해서 낯선이를 만나거나 TV속 리얼리티 프로그램의 인물들의 행동과 표정으로 그들을 자꾸 읽어내려 합니다. 부모가 엄격했을 것이다, 형제순위에서 둘째일 것이다, 집안일을 많이 했을 것이다, 칭찬을 받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연애 경험이 많을 것이다, 인정욕구가 강할 것이다, 의존적일 것이다, 불안지수가 높을 것것이다...결국 확인할 수 없을 정보들인데도 고흐를 상상하듯 짐작해 봅니다. 이는 마치 MBTI를 맞추려는 시도와도 비슷하겠지요. 그러나 앞서 언급한 대로 사람을 읽으려고 시도할 뿐 온전히 안다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사람은 대략적으로라도 알기에는 너무 복잡하고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존재여서 온전히 알기가 어렵다'는 새로운 시선은 그간 온전히 안다고 생각했던 대상에 대해서도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게 합니다.
매니저 씨에게도 아이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전혀 다른 모습을 발견하여 새로운 사람들과 살아가는 신선한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결국 사람을 단정짓지 않고 읽으려는 시도는 '새로운 시선'으로 익숙한 이들을 바라보는 눈을 줍니다.
이에 저는 이미 오래 같이 살았지만 새롭게 발견된 남편에게 그가 새 남자친구인듯 새 이름을 주었습니다.
"이제 당신을 '왕자님'이라고 부르려고 하는데 어때?"
기겁하는 남편의 놀란 표정에 새로운 애칭이 닭살돋아 그러나 싶었지만 이유는 다른 데 있었네요.
"왕이라고 불러줘. 왕자는 2인자잖아."
여러분의 익숙한 그들을 새로운 사람인듯 관찰해 보고 새로운 애칭을 지어주어 보면 어떨지요?"너는 MBTI가 OOOO니까 나를 이해 못하지!" 단정짓는 것보다 훨씬 친밀한 관계로 나아갈 거예요.오늘도 건강하고 안전하고 행복한 하루 보내세요!
** 저는 이제 상담심리학 석사를 졸업하고 박사과정 2학기를 달리고 있어요. 논문이나 과제가 아닌 좋아하는 글을 쓰는 것을 2025년의 소망으로 삼았는데 그 첫 번째 시도를 오늘 해 봅니다. 여러분, 반가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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