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기한 그리스 문화

생일보다 잊으면 더 민망한 그리스인의 '이름 날'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1. 12.

 

 

지난 주 금요일 11월 8일은 저희 시아버님의 '이름 날'이었습니다.

 

 

축하를 받는 사람이 케이크도 사고 한턱을 내야 하는 문화이니 당연히 시아버님이 내셔야 하는 파티라, 다행히 이날 요리는 아내인 시어머님이 하셨습니다. 날씨가 추워 더 이상 정원에 앉아 파티를 할 수 없어 모임은 저희 집 안에서 열렸는데, 깔끔한 고모님들이 저희 집에 오신다니 저는 세 시간 동안 집안 대청소를 했답니다. 앞으로 12월에는 어머님 생신과 매니저 씨의 '이름 날'이 있고, 이 때는 해마다 늘 제가 요리 전체를 담당했는데 아버님 이름 날의 두 배의 인원이 올 것입니다. 게다가 연말 연시 파티가 줄줄히 기다리고 있네요.

 

"저를 복 터진 여자라 불러주세요!"

일 복...ㅇㅎㅎㅎㅎ

 

 

 

 

이렇듯 가족과 친척이 많은 저희 집안은 생일 뿐만 아니라 '이름 날'까지 챙겨야 할 사람이 참 많습니다.

저도 이제는 해를 거듭하며 이런 '이름 날' 중, 주요 가족 친척 구성원의 날짜는 거의 기억하고 있게 되었지만, 처음엔 전혀 그렇지 못했습니다.

※ 그리스인들의 '이름 날'은, 이들의 이름을 따온 성인을 기리는 날에서 비롯되었는데요.

정교회를 국교로 삼고 있는 그리스에서의 '이름 날' 은, 흔히 카톨릭에서 영명축일(靈名祝日)이라고 칭하는 날과 같은 의미의 날인 것입니다.

그러나 2013/03/06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100만 명의 ‘야니스’가 존재하는 희한한 그리스 라는 글에서 소개한 바 있듯이, 그리스인들은 조부모에게 이름을 물려받으며 똑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영명축일의 의미도 현재는 종교적 의미보다는 이 똑같은 이름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축하하며 파티를 하는 문화로 바뀌었습니다. 심지어 이 날을 지칭하는 용어 조차도 그리스어 욜띠 γιορτή, 라고 해서 그냥 축일, 축하하는 날, 정도의 의미로 간단하게 지칭하곤 합니다.

"오늘은 니코스 욜띠였어. 그래서 니코스가 반 아이들에게 초코바를 한 개씩 돌렸어."

라는 식으로 말이지요. (그리스에서는 생일 때 자기 케이크는 자기가 사야 하는 것처럼, 욜띠 역시 간단한 디저트류나 음식을 이 이름 날을 맞은 사람이 지인들에게 대접해야 합니다.)                                                               꿋꿋한올리브나무

제가 처음에 '이름 날'을 못 기억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 이 이름 날들이 1년 중 거의 매일 정해져 있기 때문에(오늘은 소피아의 날, 낼 모래는 안드레아의 날 이런 식으로요) 이민을 오기 전에 한국에 살 때나 이민 초기엔 도무지 이름과 날짜를 연결해 기억하는 것이 쉽지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가 그리스 친한 친구의 '이름 날'을 기억하지 못해 축하 전화를 하지 않자, 그 친구는 몹시 서운해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생일도 아니고, 어떻게 그 날들을 다 기억해서 축하를 한단 말인가! 싶어 저는 도리어 서운해 하는 그 친구가 더 이해가 안 되었었는데요.

더 충격이었던 것은, 그리스에 이민을 와 저희 시어머님이나 다른 친척들을 보니, 이 이름 날을 다들 잘도 기억을 하는 것입니다!!!

도대체 비결이 뭘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비결은! 바로 이랬습니다!

알고 보니, 그리스에는 이 '이름 날'을 기록해 둔 달력이 따로 존재했던 것입니다!

게다가 연말에 판매하는 내년 다이어리에, 이 '이름 날'이 날짜 별로 기록 되어 있는 것도 많았습니다!

심지어 신문 한 구석에 '오늘은 어떤 어떤 이름의 이름 날'이라고 기재까지 되어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뿐 만이 아닙니다.

그리스어를 어느 정도 알아듣게 되며 아침 출근 길 라디오를 듣는데, '오늘 축하할 이름들이 누구 누구인지' 친절하게 DJ가 알려주기까지 하는 것입니다!

 대박

이러니 그리스 사람들은 당연히 '다른 이의 이름 날'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고, 친한 사이에 비록 생일은 깜빡 할 수 있더라도 이렇게 언론 매체까지 동원 된 다양한 경로를 통해 공지가 나는 이름 날을 몰라서 축하를 안 해주는 것은 참 무심하게 여겨질 수 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름 날 축하는, 아주 성대한 생일 파티를 하는 어린이를 제외한 일반 어른들의 경우 생일 파티에 버금가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영명축일 풍습은 중세 유럽의 정교(正敎)와 천주교에서 비롯된 관습이며, 그 밖에 개신교를 믿는 영국, 스칸디나비아 나라들도 천주교전통으로 영명축일 풍습을 물려받았다. 이름이 카를(Karl, Carl)인 사람은 스웨덴에서 1월 28일이 자기 이름 날인데, 이날은 카롤루스 대제가 죽은 날이다. 교회는 생일보다 영명축일을 더 널리 장려하였는데, 생일축하를 이교관습으로 본 까닭이다. - 출처 위키백과

 

물론 파티에 초대를 받으면 간단한 선물도 준비를 해야 합니다.

또한 어린이의 경우 대모, 대부인 노나 노노스가 이름 날 선물을 꼭 챙겨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결론 적으로, 저희 집안처럼 가족과 친척이 많은 집은 이 '이름 날'을 챙겨야 할 직계 가족도 많아서, 생일과 더불어 사람들의 '이름 날'과 선물까지 챙기느라 정신이 없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살짝 아쉬운 것은 이렇게 연중 생일과 이름 날, 두 번을 제게 선물과 축하를 받는 가족들, 친척들, 친구들로부터, 저는 생일 날 한번 밖에는 축하를 못 받는다는 것인데요. 제 이름이 그리스에도 존재하는 이름이긴 한데, 흔하진 않은 이름이어서 이름 날이 언제인지 가족들이 잘 모르고, 제가 원래 평생 이 날을 축하 받던 사람도 아닌데 새삼 그리스에 왔다고 축하를 받는 것도 어색해 저도 알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생일도 거창하게 하는 게 민망해서 시부모님과 남편, 딸아이 이렇게 간단히 식사를 할 때가 많아(사실 이 날만큼은 요리의무를 피하고자 외식을 하기 때문에 조용히) 더더욱 챙김을 받지 못할 때가 많기에, 제가 준 만큼 돌려받을 수는 결코 없는 셈이지요.

그렇지만 아쉽긴 해도, 세상을 꼭 준 만큼 받아야 하는 논리로 산다면 그 만큼 정신을 소모하는 피곤한 일은 없다 싶어, 저는 시아버님 이름 날에도 선물을 잘 준비해서 전해드렸고, 아버님은 꼭 필요한 것을 선물로 받으셨다며 진심으로 기뻐하셨습니다.

 

여러도 가족끼리 재미 삼아 '이름 날'을 정해서 일 년에 한번 생일 외에 서로 축하해주면 어떨까 싶습니다.

선물 값은 좀 더 나가겠지만, 의도치 않게 가족끼리 더 자주 모이게 되어 관계가 돈독해진다는 장점은 분명 있으니까요.

 

 

ㅋㅋㅋ

여러분, 재미있는 화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관련글

2013/03/06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100만 명의 ‘야니스’가 존재하는 희한한 그리스

2013/01/15 - [재미있는 그리스어] - 왜 그리스 축구 선수들의 이름은 모두 "스"로 끝날까?

2013/03/18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내 생일 케이크는 내가 사야 하는 좀 서운한 그리스 문화

2013/04/03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아이 생일파티 준비하다 허리 휘는 그리스 문화

2013/04/11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이민자의 편견을 깨준 딸아이 친구 조이와 세바

2013/05/03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그리스인들이 선택을 잘못하면 평생 후회하는 '이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