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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마피아를 방불케 하는 그리스인들의 지독한 가족애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0. 22.

 

 

지난 토요일은 제게 무척이나 길었습니다.

예기치 않게 가문의 많은 사람들이 뒷집 시부모님 댁으로 몰려와 토요일 늦은 점심을 같이했습니다.

(제가 가족 혹은 친척 이런 표현을 쓰지 않고 가문이란 말을 쓸 때는 그 인원이 상당하다고 보시면 좋을 듯 해요.)

 

이유는? 친척 고모님 한 분께 좀 어려운 일이 생겼는데, 그것을 함께 도와줄 방도를 찾겠다고 급 소집 된 것이지요.

 

이럴 때마다 저는, 제가 영화에서나 보던 마피아 집안으로 시집을 온 것인가, 잠시 착각을 합니다.

모두 심각하게 모여서 먹고, 와인과 다과를 하며 수십 명이 뱉어내는 자욱한 담배 연기, 심각한 대화가 오고 가는...

 

여기서 잠깐! 마피아의 근거지 이탈리아 시칠리아 지역엔 현재에도 그리스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데요.

 

그리스인들이탈리아 마피아 근거지로 알려진 시칠리아 사이에 이런 관련이 있었군요! 

응응

 

 

본론으로 돌아가서, 시댁과 붙어 사는 관계로 그날 저는 하루 종일 시댁에 묶여서 어머님을 도와 일을 해야 했습니다.

손님 접대와 설거지 그리고 문제 해결책에 대한 토론까지 하면서 든 생각은 이랬습니다.

바로 직계 부모 자식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나 모여서 다들 의논하고 그 고모님을 격려하는 모습이 대단하다 싶었습니다.

물론 모든 그리스인들이 다 이런 모습으로 사는 것은 아닙니다. 저희 이웃 중에도 자식과 싸우고 등지고 사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대부분의 그리스인 가족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와 비슷한 모습으로 살아갑니다.

제가 이런 가족 모임에 지쳐 넋두리를 할 때면, 일 때문에 이곳에 정착하게 된 그리스인 타지역 출신(아테네, 야네나, 파트라, 데살로니끼, 코스) 제 친구들은 이렇게 대답을 하곤 합니다.

"올리브나무. 이해해. 우리도 아마 시댁과 붙어 살았다면 너와 다르지 않았을 거야. 난 2주 휴가 때 시어머님과 마주할 때에도 숨이 턱턱 막히거든. 끝없이 남편을 오랜만에 보겠다는 친척 손님들이 오고,시어머님은 우리 얘기~~이러며 마흔 살 넘은 아들 엉덩이를 두드리거든."

"어머, 올리브나무. 우리 시어머님은 당신 숟가락을 밥 먹는데 자꾸 남편 입에다 넣어주는데..."

"우리는 만약 코스에 그대로 살고 있다면, 시부모님이 집 정리하시고 우리집으로 들어오셨을 거야. 쉰 살 넘은 남편을 아기처럼 끼고 살고 싶어 하시는데 우리가 일 때문에 멀리 살아서 얼마나 안타까워하시는데..."

헐너네는 정말 가족과 멀리 사는 게 차라리 다행이다...

 

그런데 저희 시어머님은 그리스인이어서 그런지, 이렇게 갑작스럽게 그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밥을 먹는데도 아무렇지 않게 척척 쌀을 넣은 치킨 수프를 엄청난 양을 끓여 빵과 함께 대접하셨습니다.

  

이 그리스의 가정식 치킨 스프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에 '그리스 가정식 요리'에서 자세히 따로 포스팅 하겠습니다.

 

 

 

그렇게 먹고, 디저트까지 다 먹고 또 커피를 마시고, 와인을 마시고...앉으면 일어설 줄 모르는 그리스인들 가족 모임답게 여섯 시간 넘게 식탁에 앉아서 그 친척 고모님의 이야길 들어주고 달래고 해결책을 제시하고 함께 울고 웃고를 반복하고 있는 가족 친척들의 모습을, 저는 묵묵히 지켜보았습니다.

중간에 매니저 씨가 급한 외근이 있어 함께 나가지 않았다면, 저는 내내 그 자리에 있었어야 했을 것입니다.

물론 한 시간 후에 돌아와서도 역시 끝나지 않은 모임이라 다시 합류해 그 후로도 두 시간을 더 앉아 있었는데요.

 

그리스인들의 가족 모임을 한번 두번 겪는 것도 아니기에 가족 모임의 규모, 시간, 풍성한 먹거리 때문에 놀라진 않았습니다. 이번에 저를 정말 놀라게 한 일은 따로 있습니다.

그 친척 고모님께서 울며 자기 문제를 토로한 후에, 그 분의 오빠 되시는 다른 친척 어른을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그 고모에게 던지는 말 때문이었습니다.

 

놀람 1. 가족 친척이지만 문제의 당사자에게 말을 참 현실적이고 냉정하게 해준다.

가족이라고 두루뭉수리 현실을 피하는 말을 해 주는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현실적인 이야기들을 마구 고모님께 직구를 날려서 정말 놀랐습니다.

이 또한 모든 그리스인들이 이렇다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대부분의 그리스인들은 눈 가리고 아웅하는 형태의 가식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일 예로 요즘 그리스에서 주말에 전화로 번호를 추첨해 당첨금을 주는, 경제 불황의 불안심리를 겨냥해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있는데, 전화한 시청자가 번호를 추첨할 때 만약 망설이느라 말이 늦어지면, 여성 MC는 빨리 말해야지 그렇게 늦게 말하면 시간 없는데 안 된다며 시청자에게 대놓고 짜증을 낸답니다. 보통 한국에서라면 시청자가 기분이 상할까 봐 그런 상황이더라도 돌려 말을 하든지, MC가 친절하게 적당히 전화를 작가에게 돌리든지 할 텐데, 시청자에게도 할 말 다하며 돌직구를 날리는 그리스인들의 모습에는 아직도 적응이 안 됩니다.

 

놀람2. 그렇게 현실적으로 말했지만, 결국은 네 편이라고 말해준다.

상대의 문제가 무엇이고, 문제가 일어난 배경, 해결책에 대해 조목조목 단체로 직언을 하고 눈물을 함께 흘리며 상대에게 문제를 인식하게 만들고 난 후 끝이 아니라, 그 후에 결국은 네가 어떻게 하든 우린 네 편이다. 라며 문제의 가족 구성원의 편에 선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심각하게 사회적으로 큰 잘못을 해도, 가족이 잘못한 것은 눈감아 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네 편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지요.

설사 이 가족 구성원이 문제의 가해자라 하더라도 가족 친척들은 이 가족 구성원 편에 서서 그의 손을 들어주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나라 막장 드라마에서 재벌 집 자식이 야망을 위해 범법행위를 했는데도 재벌 부모가 무조건 돈으로 막아주며 자식을 감싸고 도는 모습과 흡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매니저 씨 육촌쯤 되는 친척이 있는데(여기에선 그냥 사촌이라고 하는데요.), 공교롭게도 인종차별주의가 강한 젊은 여성이어서 처음 제가 그리스에 이사 왔을 때, 정말 저를 맘에 들지 않는 눈으로 쳐다보았고, 제가 어쩌다 그녀의 직장에 일이 있어 갔다가 마주치기라도 하게 되면 친척 새언니뻘인 저에게 인사 한 마디도 없이 "지금 나가야 돼요! 우리 일 다 끝났어요!" 라며 쌀쌀맞게 굴었습니다.

그런데 몇 년 동안 가족으로 지낸 세월이 쌓이자...

그녀는 언제 어디서 저를 만나도 반가움의 포옹을 하려 하고, 빰키스를 날리며, 저를 좋아하는 티를 팍팍 내는 것입니다.

이제는 제가 이 가문의 구성원이기 때문인 것이지요. 사상이나 이념도 가족간에는 중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토요일날 저희 집에 모인 가족들도 "지금은 현실적으로 네가 잘못해서 벌어진 사건이지만, 결론적으론 우리 모두는 네 편이니 정신 똑바로 차리고 헤쳐 나가 보자! " 라고 친척 고모님에게 격려의 꽃비 같은 멘트들을 남긴 뒤, 얘기를 마무리 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 모임에서 이 두번 째 놀란 항목으로 열거한 가족애에 예가 될만한 격을 받은 사실이 또 하나 있습니다.

몇번 소개한 적 있는 그리스판 사랑과 전쟁을 찍고 있는 M양을 기억하시나요?

그녀의 부모님도 그 자리에 참석을 하셨었는데, 사실 얼마전 M양의 오빠가 M양에 대한 모든 비밀연애 내막이 알게 되었다는 말을 다른 친척을 통해 전해 들은 적이 있었습니다. 이제 모두 제자리로 돌아와서 제발 M양이 남 상처 주지 않는 사랑을 할 수 있길 내심 기대했었기에, 저는 그날 그녀의 부모님을 자꾸 살피게 되었는데요.

별다른 M양의 소식에 대해 공공연하게 얘기가 나오지 않아서(만약 일이 해결되어 수면 위로 사건이 올라왔다면 분명 가문 모임 소재로 등장했을 것입니다.) 나중에 M양의 오빠를 붙잡고 슬쩍 물어봤더니, 그분의 대답은 이러했습니다.

"올리브나무. 아버님이 아셨는데, M이 죽고 못산다고 난리 난리를 치니 어쩌겠냐며 그냥 스스로 알아서 해결하길 기다리고 계시는 것 같아. 만약 무리하게 해결하려 하면 걔가 죽는다고라도 할까봐 어쩌지 못하시나봐."

헉

"아, 아, 아버님이 아셨는데 뜯어 말리지 않는다고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럼 어머님은요?"

"어머님은 모르셔. 만약 알면 쓰러지실까봐 그냥 아버님만 알고 계시기로 했나봐..."

"그럼 오빠라도 말리시면 안 돼요?"

"난들 어떻게 하겠어. 알지? 내가 예전에 M이 좋다던 건달같던 놈 흠씬 두들겨 패줬다가 M 쓰러져서 입원하고 그런거. 난 지금은 M이 건강하게 살고, 하고 싶은 것 하며 사는 게 우선이야."

기막혀라...

정말 한국 막장 드라마 소재가 될 이야기가 넘치는 그리스인들의 지독한 가족애입니다.

 

물론 그리스인 가족들 중에도 자식에게나 친척에게 아닌 것은 아니라고 가르치고, 자식이 아프더라도 잘못된 것을 도려낼 줄 알고, 딱딱 계산할 줄 아는 이성적인 가족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 이웃에 최근 유산 문제로 다툼이 난 집도, 원인은 땅부자인 아주머님이 땅과 집들을 가문 안의 육촌 조카에게까지 나누어 주면서, 이미 자기 집도 있는 자식들이 자기들 몫이 적어진다고 반기를 들며 생긴 일인 만큼, 아주머님에게 돈을 긁어내려는 속이 뻔하게 보는 먼 조카들에게도 속는 줄 알면서도 자기 것을 다 긁어 내주는 이 아주머님처럼, 먼 친척까지도 가문 안에 있으면 가족이라 여기는 문화가 그리스 내에 더 지배적인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조선시대에나 존재했을 것 같은 이런 먼 친척의 문제까지 다 챙기며 내 가족이면 뭐든 용서가 되는 이 지독한 가족애를 여전히 갖고 있는 그리스인들은, 가족끼리 가문끼리 SNS와 그룹메신저로 화합을 이루며 첨단 21세기에도 여전히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작년에 미국에서 만났던 그리스인 이민자 지인이 해준 얘기가 떠오르는데요.

미국 내에 있는 그리스 마피아들이 이탈리아 마피아 보다 사실 더 큰 조직으로 무서워서, 조심해야 한다는 얘기였는데요.

아마 가문에서 단체로 문제를 처리하고 움직이는 그리스인들이라, 범죄에서도 가족애로 단합이 잘 되나보다 싶습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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