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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친한 사이엔 일을 미루는 속 터지는 그리스인들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0. 2.

 

 

20년 가까이 된 저희 집 아래층 화장실은, 제가 영화 숨바꼭질의 손현주가 된 것처럼 아무리 윤이 나게 닦아도 깨끗한 느낌이 덜합니다.

한 평 남짓 아주 작은 화장실이라 고치는데 하루 이틀이면 부수고 새 변기와 세면대 거울 조명 타일을 붙여 넣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저는 이 화장실 공사를 1년 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들으면 그리스인들이 일 처리가 늦거나 게을러서 이런 결과가 있을 거라고 여길 수 있지만, 그리스인들은 성격이 급하고 기본적으로 노동량이 많아 게으르진 않습니다.

 

"난 그리스인이야. 그래서 난 침착할 수 없다고. 우씨..."

(그리스어 MALAKA는 영어의 WFT같은 욕입니다.^^ 그리스인의 상징 프라뻬 커피 모양이 함께 있네요.^^)

 

"침착하라고? 그건 불가능 해. 난 그리스인이거든!"

ㅋㅋㅋ

 

 

그러면 왜! 왜! 저는 이렇게나 기다리고 있을까요!

바로 화장실 공사를 해주기로 한 사람이 남편 매니저 씨의 절친 중 한 명이기 때문입니다.

상대적으로 공사 인건비가 비싼 그리스에서 만약 이렇게 친한 친구나 가족 사이에서 일을 해줄 경우, 인건비는 거의 받지 않고 재료비만으로 일을 해주기 때문에 예상 비용의 반 값 만으로도 공사가 가능해서이기도 하고, (그리스에서는 화장실 공사를 주로 맡는 배관사업을 하는 기술자의 경우 의사와 비슷한 수입을 갖고 있습니다.) 친한 친구를 두고 다른 업자에게 공사를 하는 것도 좀 민망한 일이라 저희는 두말 없이 이 친구에게 화장실 공사를 부탁했습니다.

 

그런데 바쁜 일 처리하고 곧 해 준다던 공사는 1년이 지나도록 시작조차 하지 않은 채이고, 거의 매주 얼굴을 보는 사이이므로(저희 집에 주말마다 놀러 오는 매니저 씨 친구 멤버 중 하나이므로) 지난 달에 이제 곧 시작하자 라는 확답까지 받았지만, 여전히 시작하지 않고 있습니다.

슬퍼2기다리다가 속 터져, 속 터져요!!!!

 

이는 남편과 그의 관계가 지나치게 막역한 사이라는 데에 원인이 있는 것인데요.

그리스인들은 정말 친한 사이에는 인건비를 안 받고 일을 해 줄만큼 선심을 쓰기도 하지만, 그들 사이에는 해주기로 한 일을 미뤄도 좋다라는 어떤 개념이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 개념에 대해 정말 이해할 수가 없는데요.

물론 저도 사진작가인 저희 아버지께서 사진에 첨부하시려고 제게 부탁한 로도스에 관한 자료들을 정리해 드리는 것을 미루고 있긴 합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이 친한 관계에서 일을 미루는 수준은 이런 수준이 아닙니다.

저희 집엔 화장실 외에도 시아버님 친구분에게 부탁한 지붕 확장 공사 등의 일들도 2년 가까이 미루어져 있습니다.

만약 그냥 일면식 없는 업자를 불렀다면?

바로 처리되었을 일입니다.

물론 모르는 사람에게 일을 맡긴다고 한국처럼 번개같이 일 진행이 되진 않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지나치게 꼼꼼하게 일 처리를 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서 융통성 없이 공사가 진행되다 보면 한국의 속도에 비해서는 훨씬 천천히 이루어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정도는 참을 수 있겠지요. 어떻든 일이 진행이 되고 있는 것이고 제대로 해주려고 늦어지는 것인데 뭐 어떤가 싶습니다.

그러나 다른 일반 업무시간은 비교적 정확하게 지키는 그리스인들이, 그 이른 출근 시간도 잘 지키는 그리스인들이!

친한 사이라고 이러는 것은 정말 참아주기 어려울 때가 많습니다.

 

친한 사이에서는 일을 해줄 때도 이러니, 여러 친구들끼리 일이 아닌 그냥 친목 모임을 할 때는 정말 가관인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저녁 7시에 모이기로 한 어떤 모임이 있는데, 10명 이상이 모이는 모임이라면 최소 7시 반까지는 늦더라도 다 모여야 밥을 같이 먹기 시작할 텐데,

8시, 9시, 10시에 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늦는다는 얘기도 가까운 사이엔 미리 전화해서 말해주지도 않습니다. 기다리다 못해 전화를 하면 그제야 늦는다고 얘기하고 그에 대해 기다리는 친구들도 자기들끼리 떠들며 답답해 하지도 않는 것이지요.

저도 한국에서 살 때, 약속을 해 놓고 늦은 경우가 있었지만, 정말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생겨 늦는 경우엔 전화를 하여 상황 설명을 해서 상대가 무작정 영문 모르고 기다리게 하진 않았기에 이런 그리스 사람들의 행동이 정말 답답했는데요.

그들의 변은 이렇습니다.

 

"아니, 일도 아니고 놀려고 만나는데, 왜 시간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야 해?

그러려면 왜 만나서 놀아?"

 

<출처-로도스 그리스식 웃기는 결혼식>

 

 

결국 몇 년 만에 저도 그런 사람들의 모임에 갈 때는 늦지 않으려고 조급해하지 않게 되어버렸습니다. 크게 늦게 가진 않지만 그냥 대충 맞춰가는 수준으로 바뀐 것이지요.

 

그래서일까요?

가족이나 친척, 남편 친구 등, 제게 그냥 주어져서 선택할 수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그냥 또 미루고 또 늦는구나 포기하는 수준에 이르렀지만, 그 밖의 제가 이민 와 사귄 새로운 친구들은 저의 선택이어서인지,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제 절친들은 연령, 직업, 성격이 다 다른 사람들이지만 "약속 시간을 잘 엄수한다. 한번 하기로 한 일을 친한 사이라도 정확하게 해 주려고 노력한다." 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보편적으로 매운 것을 좋아한다고 해도 매운 것을 못 먹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 아무리 그리스인들이 그런 성향을 갖고 있는 게 보편적이라고 해도, 분명 그렇지 않는 사람도 존재한다는 게 제겐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만약 저희 집 화장실과 지붕 공사를 언젠가 끝내게 되면, 답답함의 묵은 체증이 내려간 기념으로 잔치라도 열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매 주말 잔치처럼 모여서 먹으며 저를 하녀처럼 부려먹어 더 이상의 잔치 따윈 필요하지도 않는 매니저 씨와 친구들을 모두 빼 놓고,

시간 잘 지키고 할일 알아서 잘 하는 제 친구들하고만 음식 배달해 먹으며 잔치 할 거에요. ♥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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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글에 대해 많은 분들이 저 맛있는 거 먹는다고 부러워하셨는데, 떡볶이 김치 두부를 맘껏 드실 수 있는 여러분이 저는 부러워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