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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한국인 여자, 비행기 독가스에서 살기 위해 창문 깰 뻔했어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7. 12.

 

 

여러분! 저 한국이에요!

엉엉

(딸아이가 신발 신고 부모님 집으로 들어 와 모두를 놀라게한 얘기부터 귀국 소감에 대해서는 차차 말씀드리도록 하고요^^;)

아테네출발 카타르 도하행 비행기에서 있었던 깜짝 놀랐던 사건을 말씀드릴게요. 

그리스에서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는 직항이 없다고 말씀드렸던 것을 기억하시리라 생각합니다.

로도스에서 인천공항까지 세 번의 비행기를 타고 최소 경유시간까지 열아홉 시간 걸려 도착했습니다.

이번엔 다른 때 보다 경유시간이 짧아 상당히 일찍 한국에 왔다며 딸아이는 신기해 했습니다.

(이민 후 한국행은 처음이지만, 그 전에 여행으로 그리스를 다녀 온 적이 있어서 비교 되었던 모양입니다.

보통 넉넉하게 24시간을 생각해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테네 공항입니다. 유럽에서는 통신사로 명성이 높은 Vodafone이 새 부스를 추가 개설했습니다.

 

로도스에서 출발해 아테네 공항에서 잠깐 샌드위치를 사 먹고 딸아이와 저는 출국 심사 후, 이번 경유지인

카타르 도하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아테네에서 도하까지는 약 세 시간 반 정도가 소요되는데, 저희는 그리스 시간으로 6시 40분 쯤 출발해 도하에

밤 11시가 좀 넘어 도착했습니다.  

  

 

아는 분들은 다 알고 계시겠지만, 중동국가의 부유한 항공사들의 시설과 서비스는 상당히 좋은 편입니다.

비행기도 새 것이 많아 깨끗하고 개인 스크린으로 할 수 있는 즐길 거리도 많으며 승무원도 친절한 편입니다.

 

저희가 아테네에서 도하까지 탔던 비행기에는 상당 수의 유럽인과 한 무리 중국인 관광객들이 타고 있었는데요.

한국인은 저와 딸아이 외에는 없는 듯 보였습니다.

저와 딸아이 옆에 중국인으로 보이는 아주머니께서 타고 계셨고 앞에는 영국인 가족 세 명이, 뒤로는 독일인 젊은

남녀 세 명이 앉아 있었습니다.

아직 여행의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딸아이와 즐거운 사진찍기 시간을 보내고 이런 저런 책읽기와 게임들을 하고

나니 비행기는 어느새 도하에 도착하게 되었는데요.

그런데!!!!

활주로에 무사히 안착한 비행기의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통로에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려

고 비행기 문이 열리길 기다리고 있던 순간이었습니다.

갑자기 비행기 내부의 에어컨 바람이 나오는 부분에서 하얀 정체 모를 연기가 급속도로 흘러들어오는 게 아니겠습

니까!!!

사람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그 하얀 연기는 순식간에 비행기를 가득 채우게 되었습니다!!!

 

 

 

제 앞의 영국인 가족은 "이건 독가스임에 틀림없어! 냄새도 이상하고! 뭐야!"라고 불안에 떨기 시작했고,

비행 내내 의자를 너무 뒤로 젖혀서, 제 눈과 개인 스크린 속의 수도쿠 숫자의 거리를 10cm로 만들어서 눈 빠지게

만들었던 제 앞의 살짝 뻔뻔한 영국인 아줌마는 흥분을 하며 옆에 서 있는 아들의 입을 가리고 난리가 아니었습니

다.

순간 저 역시 너무 당황해서 연기가 코 안으로 들어 오는 것을 살짝 냄새를 맡아보니 습한 안개 냄새라고 해야 하

나, 문제 있는 가습기에서 나는 냄새라고 해야 하나...그런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짧은 순간 왜 승무원들이 아무 조처를 취하지 않는지 이상했지만, 가스의 정체를 알기도 전에 옆의 딸아이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웬만해서는 절대 부서지지 않는다는 비행기 창문을 무엇으로 깰 수 있을 지

두리번며 도구를 찾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통로에 꽉 차 비상구로 나가는 입구가 꽉 막혀 있었기 때문에 창문을 부수지 않고 딸아이를 살릴 방법은

전혀 없어 보였기 때문입니다.

 

'딸아이를 어떻게 살리지? 순식간에 가스가 꽉 찰 것 같은데?!!!!'

OTL

 

그런데 제게 이성을 찾게 해준 사람은 승무원이 아니고 따로 있었습니다.

바로, 중국인과 무리지어 들어오셔서 중국인 관광객 중 한명이라고 착각했던 제 옆에 앉은 아주머니셨습니다.

그 분은 정말 빛의 속도로! 하얗고 기능이 뛰어나 보이는 비상용 마스크를 꺼내어 착용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마스크를 저와 앞에 서서 호들갑스럽게 "독가스인거야? 응? 뭐야?"라고 비명을 지르는 영국아줌마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저는 정말 그 와중에도 빵 터졌는데요.

그 여성분은 항상 외국 공항에서 마스크 착용을 성실히 하는 일본인이셨던 것입니다.

 대박준비성 대단한 아주머님!

 

 

저는 그 아주머님 덕분에 그제야 정신이 들었고, 독가스라면 분명히 승무원이 안내 방송을 하든 산소마스크가 천장

에서 떨어지든 할텐데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은 걸로 보아 독가스는 아니라는 이성적 판단이 들게 된 것입니다.

 

그 상황에도 침착해 보이던 제 뒤의 독일인 젊은 남성은 그 영국인 아주머니가 너무 시끄러웠는지 이렇게 한 마디

했습니다.

"이 연기는 독극물이 아니구요...

(아주머니가 계속 Toxic!!! Oh, toxic! 이러며 소리를 쳤기 때문입니다.) 

지상에 도착해 비행기 내부의 에어컨이 꺼지면서 외부에서 바람이 들어와서 그런 거랍니다.

여긴 적도에 가까운 나라이다 보니 정말 밤이라도 기온이 높아 내부와 외부 온도가 심하게 차이가 나면서

이런 현상을 보이는 거에요. 그러니 제발 소리 좀 지르지 마세요."

헉4 

저 역시 두바이, 아부다비 등 이 근처 나라 허브공항을 경유해 그리스를 오간 적이 많았고, 도하 역시 처음이 아님

에도 불구하고 이런 경우는 처음이라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지만 그 남성분의 설명을 듣고 나니, 비행기 창문을

깨려는 시도를 안 한게 얼마나 다행인가 싶었습니다.

만약 그랬다면 결국 창문은 깨지도 못 하면서 완전 한국인 망신 다 시켰겠구나 싶습니다.

그 Toxic이라고 내내 멘붕상태로 소리지른 영국 아주머니처럼 말이지요.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 그 일본인 아주머님은 나중에 도하 공항에서 다시 마주쳤는데, 그리스인 남편을 둔 일본인이라 하셨습니다.

* 엄마의 된장찌개는 정말 대박 맛있네요.ㅠㅠ

* 서울은 비가 와서 그렇기도 하겠지만, 저는 어제 선풍기 에어컨 없이 잤을 만큼 습하긴 해도 전혀 덥다는 느낌이

아직은 없습니다. (저희 엄마는 계속, 너는 왜 안 덥다고 그러니? 나는 더운데.. 이러십니다.)

그리스에서 40도 육박하는 뙤약볕에 혀 빼물고 돌아다니며 동네 개와 친구하던 제가, 다행히 오랜만에 온 내 나라에서 혀를 넣고

품위 있는 척 할 수 있어서 다행인 날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