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팀 사랑에 가문끼리 싸움 나는
희한한 그리스문화
그리스인들을 알게 되면서 가장먼저 듣게 된 대화거리 중 하나는 바로 '축구'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이 프리미어리그를 포함한 유럽축구리그에 열광을 하듯이, 그리스인들 역시 이런 국제 경기가
열리는 동안에는 열을 올리며 TV를 사수하는데요. 한국인으로서 저 역시 월드컵 등의 국제 경기 때마다 열광하며
축구 경기를 보고 응원했었기에, 이런 그리스 문화가 낯설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정작 저를 놀라게 한 그리스인들의 축구에 대해 열광하는 문화는 따로 있었는데요.
처음 놀랐던 것은 그리스에서는 남자 아이들 사교육 1순위로 축구를 가르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딸아이의 반 남자 아이 아홉 명 중, 다섯 명이 축구를 배우는 체육 센터에 다니고 있습니다. 겨우 초등학교 2학년
인 아이들인데, 이 중 국제 친선경기 경험을 가진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저를 놀라게 한 것은 그리스인들의 '국내 리그와 국내 축구팀'에 대한 단합된 열정이었습니다.
이들이 이에 대해 얼마다 대단한 열정을 갖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있습니다.
만약 누군가 길 가는 그리스인을 아무나 붙잡고 "당신은 어느 축구팀을 좋아하세요?" 라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국내 축구팀 중 한 팀을 꼽아 대답을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비단 남자들에게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여성은 물론, 사리 분별이 어느 정도 가능한 아이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심지어는 그리스 국내 축구팀의 전적이 어떤지 잘 알지 못하는 저 조차도 누군가 저에게
"당신은 어느 축구팀을 좋아하세요?"라고 묻는다면, 1초의 망설임도 없이 "Panathinaikos 파나시나이코스 에요."
라고 대답합니다. 도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요?
그리스의 국내 축구팀들입니다.
어느 경기에서 'AEK 아엑'이라는 그리스 축구팀을 한국 회사인 LG가 후원해 만든 팀복입니다.
그리스에서 가장 대표적인 국내 축구팀인 파나시나이코스, 아엑, 올림피아코스 팀 로고입니다.
축구 국내 리그에서 각 팀을 응원하는 열정적인 그리스인들의 모습입니다.
어떻게 전 국민이 이렇게 여성이나 어린이까지도 국내 축구팀의 팬이 될 수 있는 걸까요?
그것은 한 가문에서는 한 축구팀만 대동단결하여 응원하는 그리스 문화 때문인데요.
여기서 한 가문이란 같은 집에 사는 가족만을 얘기하는 게 아니라, 같은 성씨를 지닌 전체 가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저는 처음 이 사실을 알고 상당히 놀랐었습니다.
무슨 단체 마피아들도 아니고 어떻게 한 가문이 한 축구팀만을 단체로 응원한단 말인가!
그러나 이것은 그리스인들의 가족문화의 일부로 자리잡고 있어서, 어떤 아이들을 태어나자마자 그 가문의 축구팀
과 관련된 용품으로 몸을 치장하기도 합니다. 다시 말해 선택의 여지가 없이 눈 뜨면서 그 축구팀을 응원하게 되는
것입니다.
출처 Panathinaikos - Green Web Fans Message Board <http://forum.greenwebfans.com>
이렇다 보니 학교에서 아이들끼리 서로 "너는 어느 축구팀 좋아해?"라고 묻는 것은, 마치 "너희 집은 어디니?" 처럼
아이들에게 있어서 당연한 질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서로 같은 팀의 아이들끼리 만나면 그 축구팀의 축구
선수 이름 하나를 모르는 유치원생이라도 서로 동질감을 느끼며 반가와 하는 것입니다.
너댓 살 애들이 이러고 있으면 얼마나 귀여운 지 몰라요.
그런데 만약 남녀가 결혼을 할 경우 서로 다른 축구팀을 응원할 수 있는데요.
이 또한 대개는 힘이 있는 가문 쪽으로 축구팀이 바뀌는 경우가 많습니다.
만약 여자 쪽으로 힘의 균형이 기울어져 있다면 남자가 원래 다른 축구팀을 응원한다 하더라도, 여자 쪽 집안 축구
팀으로 대략 맞춰주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남자 쪽으로 힘의 균형이 기울어져 있다면 여자가 대략 맞춰 주는 것입니다.
이런 과정에서 가문끼리 축구팀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다툼이나 싸움이 이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일 예로 저희 가문의 경우 시부모님, 시고모님 네 분의 가정, 그 분들의 자녀들인 저희 사촌들의 가정, 시할머님,
돌아가신 시할아버님의 다른 형제분들 집안들까지, 이 많은 인원이 모두 파나시나이코스 팀을 응원하는데요.
이런 그리스 문화를 잘 모르는 오스트리아 사촌이 그리스인 남자친구를 만나면서 멋 모르고 SNS에 그 남자친구의
팀 올림피아코스를 응원한다고 한마디 남겼다가 가문의 사촌, 사돈들에게까지 전혀 그녀에게 호응해 주지 않는
차가운 댓글을 받아야 했습니다.
아직 결혼도 안 했는데 본인 가문에서 응원하는 축구팀을 나 몰라라 하고, 남자친구 가문의 축구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그리스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런 싸움은 좀 유치하기까지 하답니다.)
한번은 저희 딸아이가 빨간 색과 흰 색이 섞인 줄무늬 옷을 입은 적이 있었는데 이를 보신 매니저 씨의 나이 많으신
친할머님께서 "어머, 이 옷은 올림피아코스 옷 같아서 좀 그렇다.. 옷을 갈아입었으면 좋겠네."라고 말하셨을 정도
니 그리스인들의 가문 내 축구팀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되실 것 같습니다^^
즉, 그리스에서는 특정 축구팀을 응원한다는 것은 내 가문의 의리를 지키는 것과도 연관된 일이라고 볼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야구라는 스포츠가 없는 그리스에서는, 이런 축구경기만이 고단한 일과가 끝난 국민들의
더운 여름 밤의 열기를 시원한 음료와 먹거리와 함께 식혀주는 스포츠로서의 오락거리가 되어주기에
그리스 가족 단합 문화에 더불어 이런 문화가 형성된 게 아닌가 짐작해 본답니다.
펠레스코어 축구경기처럼
신나고 화끈한 화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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