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통과 독백

양가에서 여자 마녀와 남자 꽃뱀 취급 받았던 우리부부 이야기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4. 9.

양가에서 여자 마녀와 남자 꽃뱀

취급 받았던 우리부부 이야기

 

 

 

 

 

 

 

 

국제 결혼이 순조로울 거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또한 실제로 순조로운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 부부는 연애 자체가 참 쉽지 않았었습니다.

 

전에 소개한 대로 노후에 그리스에 작은 별장을 하나 지어서 글을 쓰며 사는 게 소원이었던 저는

뭔가 답답한 일이 생길 때마다 그리스에 대한 정보를 하나씩 수집하곤 했었는데요.

일종의 '꿈을 구체화 해서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해보자'는 작전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에는 한국 내에서 그리스에 대한 정보가 워낙 관광객들을 통한 정보 외에는 희박했기에

다른 경로로 좀 알아보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일 때문에 베트남 분들과 우리나라에서 상용화가 덜 되었던 인터넷 메신저로 통화를 하곤 했었는데,

어느 날 베트남 친구가 전화를 끊고, 로그 아웃을 하려다가 로그인 상태로 되어 있는 그리스 인들이 상당히 많다는

것을 아주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불특정 다수인 그들에게, 저는 마치 행운의 편지라도 보내듯지 메세지를 보내기 시작했는데

"저는 한국에 사는 올리브나무입니다. 정말 죄송하지만 그리스에 대해 정보가 필요한데

혹시 도움 주실 수 있는 그리스인이 계신가요?"

라는 내용이었습니다.

대략 스물 다섯 명 정도에게 메세지를 보냈고

제게 답을 해 온 사람은 다섯 명 뿐이었습니다. 모두 통화가 아닌 메세지로만 대화를 이어나갔는데

한 사람은 여자나 꼬셔보자는 토 나오는 남자라 얼른 차단했고,

(남자에 크게 실망한 과거 덕에, 당시 저는 남자에 조금도 관심 없었습니다.)

네 사람 중 세 사람은 본토인 아테네, 패트라, 데살로니끼 등에 사는 사람들이었는데

다들 친절한 분이셨지만 섬 정보나, 섬의 부동산 시세나, 섬의 생활에 대해 알려줄 수 있는 지식을 가진 분들은

아니었습니다.

네 사람 중 마지막 한 사람이 섬에 살고 있어 그리스 섬 정보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는

그게 바로 매니저 씨였습니다.

서로 얼굴도 모르고 메세지를 주고 받으니 당연히 목소리도 알 수 없고

(지금 우리 사이가 그런가요? 블로그 독자님들?^^)

그렇지만 자세하고 담백하게 정보를 알려주는 게 정말 감사해서, 이 은혜를 어떻게 보답해야 하나 고민이 될 지경

이었답니다.

그렇게 몇 달인가 지나, 당시에 어떤 일들로 인생의 큰 고비를 넘기고 난 저는

그간 일중독자처럼 일을 해왔기에 정말이지 쉼이 필요했고,

그리스로 첫 여행을 결정하게 됩니다. 

아테네를 비롯하여 여기저기를 돌아보기로 결정을 한 후 매니저 씨에게 연락을 하자

매니저 씨는 로도스에 꼭 들르라고 신신 당부를 했는데,

이유는 한국 라면이 그렇게 맛있다는 말을 들었는데, 만약 본인이 제공한 정보에 대해 보답하고 싶다면

라면을 몇 개만 좀 사다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거절하기에는 제공 받은 정보가 정말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알짜들이라,

그럼 며칠만 로도스에 머물기로 하고 그리스 여행 마지막에 들르게 된 것이지요.

(라면을 세 박스나 갖다 주었답니다.^^신세 지고는 못 사는 이 성격 때문에...)

그렇게 매니저 씨와 저는 연인이 아닌 친..로 첫 만남을 갖게 되었고

그 친구 관계는 한국에 돌아온 후에도 이어지게 되었습니다.

 

어떻든 시간이 1년 넘게 흘러매니저 씨도 한국 관광을 다녀갔었는데, 매니저 씨가 좋은 사람이긴 하지만

연애에 대해 상당히 회의적이었던 저의 의사와 상관 없이 매니저 씨는 갑자기 한국행을 결정하게 됩니다.

당시에도 락 마스터 일을 하고 있었는데,

아버지와 사업적 마찰이 심했고, 아버지와 떨어져 새로운 삶을 살아보고 싶었던 이유와 더불어,

나중에 그리스에 별장을 지을 때 짓더라도 젊을 때는 일 때문에 절대로 한국을 떠나서 살지는 않겠다는 저와의

관계도, 어떻게든 밀든 당기든 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요. (무모하기도 하지요.)

그렇게 매니저 씨는 한국에 집을 얻고 정말로 갑자기 한국으로 이사를 오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매니저 씨가 반갑지 않았습니다. 반가울 수가 없지요.

정말 "너 뭐니?" 라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어떻든 어학당을 등록하고 일자리를 알아보고 혼자 일을 진행해 나가는 매니저 씨를 보면서

'미친 사람이 여기 하나 또 있구나'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대체 가족들은 그가 멀쩡한 사업을 팽개치고 아는 이도 별로 없는 머나먼 한국으로 떠나버린다는 말에

어떻게 반응했을지 궁금했었습니다.

매니저 씨의 어머님, 그러니까 지금의 시어머님은, 전에 말씀드린대로 자식 일에 이성을 상실하는 분이신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내 금쪽같은 아들이,

평생 끼고 살아도 아깝지 않을 내 소중한 아들이!

왠 한국 여자에게 미쳐서 한국으로 가겠다고 말하는 것으로 볼 수 밖에 없었던 것이지요

그 이유 때문 만은 아니라고, 부모를 독립해서 좀 살고 싶다고 아무리 이야기 해도

이미 이성을 상실한 어머님은 매니저 씨 말이 들릴 리가 없었고

급기야는 모든 화살을 제게 돌리며 이렇게 외마디 비명을 지르셨다 합니다.

 

"올리브나무! 이 마녀같은 것! 내 아들을 어떻게 홀렸길래, 한국으로 간대."

헉

나중에 농담처럼 이 말을 전해 들은 저는 정말 어이가 없어서 할 말을 잃었답니다.

'아니, 내가 오라고 했나?' '왜 가만히 있는 내가 마녀가 되어야 돼?' 완전 기막혀. 평생 화나면 원더우먼 이상으로

변신하는 엄마 밑에 자라며 별 욕을 다 듣고 살아왔지만 '마녀'라는 말은 태어나 처음 듣는구나, .억울해..'

 

그러나 그는 이미 와버렸고, 이미 모든 일을 혼자 저지른 후였기 때문에

저는 어쩔 수 없이 매니저 씨가 한국에 정착하도록 도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주한 그리스 대사관에서 알아보니, 서울 내에 있는 그리스인은 고작 열 명 정도 인데,

그 중 여섯이 대사관 직원이고, 한 명은 외대 교수 겸 서울 정교회 사제이고, 나머지 몇 명은 요리사 이거나

한국인과 국제 결혼한 그리스인 여성 분 정도 였습니다.

도대체 이들 중에는 매니저 씨를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전혀 없는 셈이었지요.

 

아무튼 이렇게 매니저 씨의 한국 정착을 돕다보니, 자연히 붙어 다니게 되었고

그것은 저희 아버지 눈에 띄게 되었습니다.

 

당시 붙임성있는 매니저 씨의 싹싹하고 상대방 비위 잘 맞추는 사회성 있는 태도는

눈치가 빨라 괜찮은 사람인가보네 라고 생각하셨던 저희 엄마와는 달리

영어를 못하셔서 말을 못 알아듣던 아버지 눈에는 썩 좋아보이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하루는 저를 부르시더니 아버지는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놈, 누구야. 이름도 길어서 기억 안나는 놈. 나이도 너보다 어린데 뭐 사회 생활이나 제대로 했겠니,

니가 아무리 그리스를 몇 번 다녀왔다해도 남자가 속이려 들면 다 속일 수 있는거다. 분명히 돈도 땡전 없고,

일자리도 없고, 집도 절도 없어서 너한테 빌붙으려고 한국에 온거야."

 

"아버지. 그게 아니라니까요? 제가 그 사람 가족들도 만나봤었고, 아버님과 같이 하는 가게도 갔었어요.

락 마스터는 유럽에서는 꽤 괜찮은 기술직이에요."

 

"락 뭐라고? 열쇠쟁이 아닌가? 요새 다 전자키 쓰는데 누가 열쇠 쓴다고 열쇠쟁이를 한대? 가게도 없이 차로

돌아다니며 대충 열쇠 만들어 주는 사람아니냐?"

 

"아버지 그게 아니라 락 마스터는 전문 은행 금고나 차 키 프로그램 하는 직업이에요. 물론 그 사람네 가게에서

일반 열쇠관련일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그게 그 사람의 업무는 아니에요. 그리고 가게도 커요. 그리고 제가 언제

그 사람이랑 연애하고 결혼하고 그런다고 했어요? 왜 넘겨 짚고 오버세요?"

 

늘 듣고 싶은 얘기만 들으시는 아버지는 손을 휘휘 저으시며 대답하셨습니다.

"됐고! 난 무슨 말인지 못 알아 듣겠고. 그 놈, 아무리 봐도 남자 꽃뱀이다. 니가 나름 니 사업도 하고 직장도 다니고

 집도 있고 그러니까 니 돈 뜯어 먹으려고 한국까지 들어온거야. 돈 뜯고 나면 다시 튈거야."

헉아버지...제가 그렇게 남자 꽃뱀이 그리스에서 돈 뜯으려고 날아올 만큼 부자가 아니거든요...

                왜 이러신데요..

저는 아버지의 꽉 막힌 일그러진 부정에 화가나 자리를 털고 일어나 나와버렸습니다.

(말리는 시누가 더 밉다고, 그걸 다른 방에서 지켜보던 막내 동생이 "잔잔잔잔 잔잔잔잔 짠짠!" 이라며 TV에서 범인 검거 상황에서 자주 나오는 배경음을 입으로 흉내내며 취조하는 아버지와 제 옆을 지나갔기 때문에 더 열받았었지요.) 

 

...

연애를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양가에서 이런 취급을 받았던 저희 두 사람이

결혼하기까지 얼마나 쉽지 않았을지 예상 되시지요?

공군 복무 중 안기부 소속으로 간첩 잡는 일을 하셨던 저희 아버지, 그리스인은 신원조회는 어떻게 하냐고

전과는 있는지 어떻게 알아보냐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아무튼 중간 과정은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우여곡절 천신만고 끝에 연애를 시작했고, 또 시간이 지나 양가 허락을 얻고 결혼식을 그리스에서 했었는데

(당연하겠지요. 그리스 가족 문화로 본다면, 그리스에서 할 수 밖에요.)

그 때 처음 매니저 씨의 집도, 가족도, 가게와 회사도 다 보게 되신 저희 아버지..

(엄마는 그 전에 미리 그리스에 다녀가셨었지요.)

민망한 듯 매니저 씨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아이구, 일을 좀 잘 하나봐?" 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시더니 결혼 후에는 매니저 씨만 보면 서로 말도 안 통하면서 낄낄 대며 농담하며 웃는

웃기는 장인 사위 사이로 변했습니다. 아버지는 그냥 한국 말로 쉴새 없이 말하시고 매니저 씨는 웃으며

"난중에(나중에) 할게." 이런 짧은 대답만 하는 사이 말이지요.

 

그리고 저희 시어머님도 그 이후로 만났을 때에나, 그리스로 이사 온 후에도 비록 잔소리를 하실 지언정,

결코 제게 마녀라고 대 놓고 말 한적도, 뒷담화 하신 적도 없습니다.

요즘은 "올리브 나무야. 나 병원갈 때 같이 가줄래?" 이러고 계시지요.

어떤 땐, 혼자 사는 딸보다 저를 더 의지 하시는 것 같다고 여겨진답니다.

 

어떻든

마녀와 꽃뱀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한국과 그리스에서

밥 잘 먹는 딸아이와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는 뭐 그런 이야기입니다.^^

 

 

 

덧붙임

그리스로 돌아온 후인 요즘도 저희 시아버님은 가끔 매니저 씨와 여전히 사업 때문에 싸울 때가 있으신데,

그럴 때마다 아들에게 열받아서 그리스인 답게 이렇게 제게 영어로 말하며 화난 것을 승화 시키신답니다.

"올리브 나무. Don't buy the man from internet ! (인터넷에서 남자를 사지 말라구)"

그럼 저도 농담으로 같이 맞장구 칩니다.

"그러게요. 반품 기간이 지나서 그냥 어쩔 수 없이 계속 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