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여름이 깊어가고 있는 그리스입니다.
저희 집은 곧 18년 된 아랫층 화장실 리모델링 시작하고, 이제 2주 후면 딸아이가 2학년이 끝나 여름방학을 하고,
4주 후면 미국의 동생네 가족이 저를 만나러 그리스에 오고, 6주 후면 저는 이민 후 처음으로 한국에 들어갑니다.
그래서일까요?
도무지 일이 손에 잡히질 않습니다.
마음이 싱숭생숭..
많은 생각이 왔다갔다 하네요.
'딸아이는 3학년 준비를 좀 하고 한국으로 가야 할텐데, 미국의 동생에게 어떻게 잘 대접해 줄 수 있을까, 화장실
타일은 무슨 색으로 골라야하나, 여기 일은 어떻게 마무리 해 놓고 가야하나, 한국에 가서 이민 후 나를 서운하고
아프게 했던 친구를 만나야 할까... '
이럴 때는 갓 볶아서 잘 내린 진한 원두 커피 한잔을 마시며 소담하게 수다를 떨면, 후루룩 하며 생각이 날아갈 것
만 같습니다.
그런데 함께 커피를 마시고픈 사람이 여기에 지금은 없습니다. 이곳 그리스 친구들도 있지만 어쩐지 성품 좋은
한국인과 커피 한잔을 하고 싶습니다.
사실 저의 커피 사랑은 저와 아주 가까운 사람들은 다 아는 이야기인데요.
제가 매니저 씨에게 늘 하는 얘기도 그렇습니다.
"내가 얼마나 기분 좋게 만들기 쉬운 여자인 줄 알아? 맛있는 커피 한잔 사줄까? 이러면 혹해서 따라가는데,
진짜 맛있는 커피 한잔 사주고 함께 한 두 시간 수다나 떨어주면 일주일이 즐거운데,
당신은 그렇게 쉽고 돈도 많이 안 드는 비결을 가르쳐 줘도 못 할까...
내가 가방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반짝거리는 걸 사달라는 것도 아닌데..."
매니저 씨는 본인처럼 제가 어디 클럽이나 바에 친구들과 가서 밤 새 마시고 춤이라도 추어야 기분전환이 되는
걸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을요. 술도 못 하는 제가 아무리 회사 생활 할 때 상사 기분 맞추느라
3차까지 쫓아다니며 술 없이도 폭풍 템버린을 흔들었다 해도, 그렇다고 제 스트레스가 그렇게 풀리는 게 아니라는
것을 귀에 딱지가 앉도록 얘기 했는데 말입니다.
정말 커피 한 잔이면 된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요?
자, 들어보세요.
한국에 살 때, 한 번은 강의를 신나게 하고 나와 강사대기실에 앉아 있었는데요. 어떤 분이 제게 바로 옆 카페에서
커피 한잔을 사 주고 싶다고 가자고 하셨어요. 강의를 잘 들어서 한잔 사 주고 싶었다나요. 거의 반사적으로 가방
을 주섬주섬 챙겨 쫓아가는데, 카페 유리문 앞에 거의 도착했을 때서야, 그분이 누군지 전혀 모르는 사람이란 사실
을 깨달았답니다. 너무 당황한 저는 그제야 "근데 누구셨더라......?" 라고 물었고 그분은 카페 문 앞에서 박장대소
하며, 그걸 이제 물어보냐고 커피 사준다면 아무나 다 쫓아 가겠다고 조심하라고 말하며 강의 수강자인데 그냥
고마와서 사 주고 싶어서 사 주는 거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나....왜 이러니. 아...창피해...
그후로는 커피 사준다는 사람을 특히 조심하고는 있지만, 그리고 건강을 위해 하루 커피 양도 조절하고는 있지만,
커피 한잔 같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을 여전히 좋아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지금 누구 저랑 커피 한잔 하실래요?
제 블로그에는 세계 각 국에 계신 분들이 함께 하시지요?
그냥 그곳에서 멀리 각자 커피 한잔 할 수 밖에 없지만, 함께 마시는 기분으로 그렇게요.
오늘도 하루 수고하신 여러분께 노래 한 곡 보내요.
여러분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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