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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기묘한 이야기> 실종됐던 그녀, 조폭으로부터 구출 작전 2부 끝.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3. 19.

 

 

 <기묘한 이야기> 실종됐던 그녀, 조폭으로부터 구출 작전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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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3/18 - [소통과 독백] - <기묘한 이야기> 실종됐던 그녀, 조폭으로부터 구출 작전 1부

 

 

  "어디에요? 주희 씨.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있지요. 흑흑..언니. 흑흑. "

  "왜 그래요? 주희씨!"

  "언니. 우리 좀 만나요. 흑흑…"

  "응? 아니 도망쳐 나온 거에요?"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갑자기 수화기 너머로 이 삼 초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주희 씨?"

 다급해 부르는 내 목소리에 음습한 목소리의 남자가 주희 씨를 대신해 대답해 왔다.

  "당신이 ** 씨요?, 주희가 제일 친한 언니라던데, 사실이요?"

 제일 친한 언니? 내가? 우리가 그렇게 친한 사이었던가?

  "누구시죠?"

  "나는 주희를 데려온 사람이요. "

  어쩐지 내게 전화를 해 왔던 형사양반과 비슷한 말투를 쓰는 남자였다. 그 세계의 사람들을 검거하려다 그 형사의 말투가 그렇게 된 것일까, 형사들과 조폭들이 밀접한 접촉이 있기 때문에 그 남자가 형사의 말투를 배운 걸까, 짧은 찰라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주희 말이 당신이 주희 엄마 유품을 갖고 있어서, 당신을 꼭 만나야 한다던데 사실이요?"

  "유품이요? 네. 네."

거짓말을 잘 안 하는 나였지만, 일단 재빨리 그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럼 내가 서울에 가는 길에 주희를 데리고 갈 테니 11일 거기서 만납시다. 허튼 짓 하면 당신 가족도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허, 허튼 짓이요? 무슨 허튼 짓이요?"

목이 갑자기 잠기면서 갈라지는 목소리가 나왔다.

  "경찰을 부른다든가, 그런 짓. 죽고 싶으면 불러. 당신 가족까지 무사하지 못할 줄 알아. 아무 짓도 안 하면 물건만 받고 금방 사라져 줄 거야."

 "아, 알겠습니다. 허튼 짓 안 할게요. 거기서 만나요."

 

  정말로 경찰에게 전화를 하고 싶었지만 나는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약속장소로 나갔다. 2층에 자리하고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5분쯤 기다리며 물을 연거푸 들이키고 있는데, 입구에 그녀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꼴이 말이 아니었다. 사람을 데려갔으면 옷은 사 입히든지 했어야지 그녀의 꼴을 보는 순간, 남친이었던 상근 씨의 생각이 얼마나 부질 없는 오해였는지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계절이 쌀쌀하게 바뀌었는데 납치될 때 입고 있었던 것 같은 얇아빠진 빨간색 점퍼를 그대로 입고 있었다.

나는 어쩐지 눈물이 핑 돌았다.

그녀를 그렇게 좋아했던 것도 아니고 우리가 뭐 오랜만에 만났다고 눈물을 흘릴 만큼 살가운 사이도 아닌데, 그녀가 안 됐었고, 이런 상황에 우리가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마주앉아 있는 게 안타깝고 속이 상했다.

  "... 그 남자는 어디 있고 혼자 올라왔어요?"

  "건물 바로 앞에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여기 건물이 입구가 거기 뿐 이어서 나를 그냥 혼자 올려 보낸 것 같아요. 어차피 제 물건도 모두 갖고 있는걸요. 흑. 흑. 흑."

그녀는 갑자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앞에 놓여있던 냅킨을 얼른 건네면서 그녀가 눈물을 닦는 사이에 재빨리 길 쪽에 있는 창문 밖을 살짝 내다보았다.

그녀 말대로 건물입구에는 검정색 세단이 시동이 걸린 채로 세워져 있었다.

시동이 걸려있다, 그렇다면 내려서 쫓아오는데 적어도 삼 초는 걸릴 것이다. 시동을 끄고 차문을 열고 내려 차문을 닫는 데까지.

행동이 빠르다면 이 초.

이 초면 빨리 뛰면 건물 바로 옆 주유소까지는 갈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이 붐비는 곳이니 그도 어쩌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이미 그녀를 도망시키기로 결정했다. 사시미 칼이든 뭐든, 내가 그녀와 얼마나 친하든 안 친하든, 그녀를 좋아하든 안 하든 그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만약 오늘 지금 이 순간 그녀를 도망시키지 못한다면 평생 후회할 것만 같았다.

그 때 주문 했던 레몬 티가 나왔다.

  "주희 씨, 우선 이 레몬 티를 마셔요."

우느라 파도처럼 들썩이던 그녀의 어깨의 움직임이 조금씩 잦아들고, 그녀가 레몬 티를 후룩거리며 다 마시길 기다리는 동안, 내 머릿속은 온통 어떻게 그 사시미 놈을 피해 그녀와 도망칠 수 있는지 그 생각으로 정신 없이 가상 시나리오를 만들고 있는 중 이었다.

레몬 티를 다 마신 주희 씨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마치 내 처분을 기다리는 죄인이라도 되는 양, 나를 쳐다봤다.

  "주희 씨, 지금부터 내 말 잘 들어요. 우선 내 옷을 입어요."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네!" 라는 말과 함께 그녀는 빨간 점퍼를 벗었다.

나는 나의 두툼한 남색 코트를 그녀에게 입혔다. 나보다 키와 몸집이 작은 그녀에게 내 코트는 길게 내려와 몸을 감추기에 좋았다.

다시 길 쪽을 내다보니 여전히 차는 시동이 걸려 있었다.

카운터에서 얼른 계산을 하고, 그녀와 함께 아래층으로 향하는 계단으로 조심조심 걸어 내려갔다.

내 뒤에 그녀를 세웠다. 1층 계단 모퉁이에서 고개만 살짝 내밀고 입구 쪽을 살펴 보고 있는데, 하늘이 도왔다. 아침에 일기예보에서 예고한대로 비가 오기 시작했다.

건물을 나서기 전에 나는 우산을 폈다. 그리고 내 코트를 입은 주희 씨를 오른 팔로 감싸고 우산으로 우리의 얼굴을 가렸다.

계단 앞에 서서 나는 낮고 빠른 목소리로 말했다.

  "주희 씨, 지금은 눈치챌 수 있으니까 뛰지 마. 근데 빨리 걷는 거야. 알겠지? 내가 뛰라고 얘기하면 그 때 뛰는 거야? 알겠어?"

  "네."

큰 검정 우산은 우리의 얼굴을 충분히 가려 주었다. 내 코트를 입은 그녀는 도저히 그녀인지 알아 볼 수 없게 우산 속 내 오른 쪽으로 숨었다.

우리는 건물 입구를 빠져 나오자 마자 점점 더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리고 삼십 미터쯤 걸었을 때,     "뛰어!"라고 외쳤고 우리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달리다 보니 오른 쪽으로 내가 잘 아는 사무실이 보였다. 한 달에 두 번 정도 강의를 하던 곳이었는데, 그 회사에 강당이 있었던 것이 번뜩 떠 올랐다.

  "주희 씨, 저기로!"

  "네!"

그녀는 마치 중요한 미션을 수행하는 군인처럼 씩씩하게 대답했다. 우리는 잽싸게 건물 안으로 들어갔고 회사 강당을 찾아 들어갔다.

때 마침 다른 강사가 한참 성인병에 관련된 강의를 하고 있었다.

  "주희 씨, 일단 저기 들어가서 강의를 들어요. 한 삼 백 명쯤 앉아 있는 곳이니 설사 그 놈이 우리를 따라왔다 하더라도 여기서 어쩌진 못할 거에요. 어서요. 나는 저기 사무실에 들어가서 숨어 있을 게요. 강의 끝날 시간에 사람들 몰려 나올 때, 다시 올게요. 알겠지요? 꼼짝 말고 앉아 있어야 돼요."

  "네!" 그녀는 미끄러지듯 강의실 안으로 쑥 들어갔다.

강사 대기실을 찾아 들어가니, "오늘 강의도 아니데 웬일이세요?" 음향 담당자가 물었다.

  "네. 잠깐 일이 있어서…여기 이십 분 정도만 있어도 되지요?"

  "그러세요." 음향 담당자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고 좁은 대기실 한 켠에 놓여 있었던 철제 접이 식 의자를 조심스레 펴서 앉았다.

다리가 풀렸다. 손 끝이 자꾸만 파르르 파르르 떨렸다. 거울을 보진 않았지만 분명히 얼굴도 벌개져 있었을 것이다.

눈을 감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숨을 고르며 생각하고 있는데, 진동모드로 되어 있던 휴대폰이 징-징- 가방 안에서 울리고 있었다.

얼른 휴대폰을 열어보니, 그 남자였다. 지난 번에 통화했을 때, 혹시나 해서 저장해 둔 번호였다.

난감한 소리를 내며 휴대폰이 울렸고, 음향담당자는 쓰고 있던 해드셋을 벗으며, 눈으로 내 가방과 나를 번갈아 쳐다보며 고개로 까딱 신호를 보냈다.

전화기를 빼 들고 강사 대기실을 나와 통화 버튼을 누르니, 사시미 놈은 화를 낼 줄 알았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주희 씨, 주희 씨 어디 갔습니까?" 라며, 전과 달리 정중한 말투로 물었다.

"몰라요. 저와 레스토랑에서 헤어졌어요. 끊겠습니다." 순식간에 대답하고 전화를 확 끊었다.

전화를 끊고 나니, 나를 자꾸 거짓말 하게 만들고, 이상한 상황을 벌인 그 남자에 대해 정말 짜증이 났지만, 조폭 무리라도 데리고 쫓아 올 줄 알았는데 다급한 목소리로 주희 씨를 찾던 의외의 태도에 나는 아주 잠깐이지만 다른 생각을 했다.

어쩌면. 어쩌면 그렇게 엄청난 일을 벌인 이 남자의 감정의 근본은 정말 사랑이었던 걸까?

비록 비뚤어져 있는 방식으로 표현하긴 했지만 그는 정말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그 때, 강의를 끝내는 강사의 감사합니다 멘트가 들렸다.

나는 강의실 뒷문으로 들어가 멍하게 앉아 있는 주희 씨를 데리고 서둘러 그곳을 빠져 나왔다.

 

  비는 그쳐 있었다. 들어올 때 제 정신이 아니어서 우산을 어디에 던져뒀는지 기억도 안 났는데 잘 됐다 싶었다.

그녀를 근처 주차해 뒀던 내 차에 태웠다.

  "언니, 미안해요."

  "됐어. 주희 씨. 미안하기는…"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차창 와이퍼를 작동시키고 핸들을 우회전으로 돌리며 올림대로로 진입하려는데 양 팔이 욱신거리며 아파왔다.

집으로 가서 생각해야겠다, 일단 집으로 가야겠다, 집에 가서 둘 다 씻고 뭐 좀 먹어야 겠다…그리고 그 다음 일을 생각하자…

차는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주희 씨는 그 후로 1년 동안 우리 집에 같이 살았다.

나는 이미 다른 친구와 살고 있었는데, 처음 집을 얻을 때, 함께 살기로 했던 또 다른 친구가 이사 할 즈음 갑자기 들어오지 않게 되면서 비어 있던 방이 하나 있었다.

그 방은 주희 씨 방이 되었다. 주희 씨의 원래 세 들어 있던 전 집 주인과는 전화로 계약을 마무리 했고, 짐은 거의 갖고 올 수 없었다. 예상대로 그 사시미 남자가 옛 집 앞으로 매일 열심히 출근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외곽에 있던 우리 집은 당시 막 새롭게 개발된 동네여서 인근 지리를 잘 아는 사람이 아니라면 찾기 쉬운 곳은 아니었다.

주희 씨는 새로운 직장을 얻었다. 지난 번과 되도록 먼 곳으로 구했다.

 

  털털한 내 친구와 나, 그리고 주희 씨가 함께 지냈던 그 1년은 우리에게 넉넉했던 순간은 아니었지만

밤에 떡볶이를 함께 해 먹고, 털털한 내 친구 엄마가 고향에서 보내 준 광주 김치를 뜨거운 밥에 쭉쭉 찢어 먹으면서, 서로 부족한 걸 채워나갔던 그런 시간이 되었다.

그간 저지른 죄들로 인해 이미 지명 수배 중이었던 그 남자는 얼마 후 안동 교도소에 수감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그제서야 주희 씨는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있었다.

그 남자는 어의 없게도 비뚤어진 순애보가 절절하게 묻어나는 손 편지를 써서, 어찌 알았는지 우리 집으로 가끔 교도소 소인이 찍힌 편지를 보냈다.

그가 장기 복역수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난 후에야 주희 씨는 더 있으래도 얹혀 있는 게 미안하다며, 새 집을 구해서 자리를 잡았다.

 

  지금 주희 씨는 참 속 깊은 성실한 남자와 결혼해서 아이 낳고 사랑 받으며 잘 살고 있다.

  지금 상근 씨는 이 여자 저 여자 전전하다가 아직 화려한 싱글 생활 유지하느라, 돈 못 모으고 결혼도 못 하고 그냥 그러고 산다는 소식을 몇 다리 건너 들었다.

  지금 교사 생활 중인 내 털털한 친구는 며칠 전에도 전화 와서 김치가 맛있게 익었는데, 같이 먹으면 좋은데라고 아쉬움에 말끝을 흐리다가도, 곧 "이야!"라고 말썽 피운 아들을 응징하기 위해 전화를 끊어야 하는, 바쁜 일상을 살고 있다.

 

  인생은 지금 볕이 없다고 십 년 후에도 볕이 없는 곳에 앉아 있을 거라고 속단하고 절망하면 안 되는 것임에     틀림없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