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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그리스어

그리스어로 ‘매를 먹었다’라고 표현하다니!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2. 8.

 

영화 '친구'의 장동건의 대사 "고마해라. 마이 묵었다 아이가" 이 영화를 안 본 사람들 조차도 알고 있는 유명한 대사입니다.

유오성으로부터 이미 많이 찔린 장동건은 '칼을 많이 맞았다'는 표현을 '많이 먹었다' 라고 표현한 것이지요.

 

그런데 그리스에 이민 온 후 시아버님과 어린 시절 이야길 나누던 중, 아버님은 저에게 이런 이야길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내가 어릴 땐, 모두가 굉장히 어려운 때였지. 특히 우리집은 가난했고 난 어릴 때부터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었어. 우리 아버지는 건축업을 하시며 타지로 출장 가실 때가 많았는데, 집에 돌아오면 피곤한데 먹여 살릴 자식들은 다섯이나 되어서 늘 화가나 있었지.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우리를 많이 때리셨어. 

난 장남이라 정말 매를 많이 먹었다고.('Εφαγα ξύλο πάρα πόλλα)"

 

??

"매를….먹었어요? ('Εφαγα ξύλο)"

 

아버님은 제가 '매를 먹는다'는 표현이 특이해서 되물어봤다는 것을 모르시고, "그래. 정말 엉덩이에 많이 매를 먹었다고."라고 다시 말씀 하셨습니다.

저는 이 표현을 듣자마자, 영화 '친구' 생각이 나서 그리스어에도 이런 표현이 있다는 것이 신기해서 웃음이 났지만, 심각하게 과거를 회상하시는 시아버님 앞에서 차마 웃지 못하고 그냥 고개를 끄덕끄덕 얘기를 듣고만 있었습니다.

 

그 후 저는 이 표현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게 되었는데요.

내가 만약 때리는 입장이면 치다, 주먹질 하다 라는 표현인(영어의 hit 나 beat) χτυπάω(흐티파오) δέρνω(데르노) 라고 표현할 수 있지만, 내가 만약 맞는 입장이면 이 두 가지 표현도 사용할 수 있고, 매를 먹다 να φάω ξύλο (나 파f오 크실로) 라는 표현도 일반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스의 한 인터넷 신문 국제 뉴스에 실린 기사 제목입니다.>

이 기사에서도 역시 매를 먹었다 라고 표현하고 있는데요.

동영상과 함께 실린 이 기사 내용은, 한 남자가 차에서 내리려는 여성의 가방을 훔치려다가 도리어 몰매를 맞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니, 이런 '매를 먹다' 라는 어떻게 보면 '정감있는' 표현은, 그리스에서 매를 때리고 맞는 체벌문화와도 상관이 있는 표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스에서는 자녀에게 사랑의 매를 드는 것이, 한국만큼의 일반적인 문화는 아니지만(한국에 체벌하는 부모가 많다는 뜻이 아니라, 한국에서는 부모가 자녀를 교육하기 위해 약하게 한 두 대 체벌했다고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문화는 아니란 뜻입니다. 또한 그리스에서는 자녀에게 회초리로 체벌을 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습니다.), 가족문화가 단단한 그리스 문화에서도 필요에 의해서 내 자녀의 엉덩이를 좀 손바닥으로 때린 것 정도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일 예로, 매니저 씨 역시 어릴 때 엄청난 말썽꾸러기였기 때문에 (다섯 살 이전에 호기심에 지붕까지 올라가서 떨어진 일, 자기 방에 호기심으로 불을 지른 일 등등 ㅠㅠ), 어린 시절 아버님으로부터 엉덩이를 손으로 자주 두들겨 맞았다고 말하곤 하는데, 그리스에서 자기 자녀를 부모가 이 정도로 때렸다고 해서 미국처럼 법적으로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때렸다는 사실만으로 부모를 경찰에 신고하거나 하는 경우는 없는 것입니다.

(미국은 때린 정도에 상관없이, 자녀를 때리는 것을 이웃이 볼 경우 신고 당할 수 있다고 들었습니다.)

 

즉, 그리스에서는 회초리나 도구를 이용해 자녀를 체벌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저는 수백명의 그리스인을 알고 지내지만 단 한번도 이런 경우를 본 적이 없습니다.) 자녀를 체벌할 경우 손바닥으로 엉덩이를 두드리는 정도로 하는 경우가 다여서, 이 매를 먹었다는 정감있는 표현이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물론 위에 제시한 기사 내용처럼 심하게 폭력이 오고간 어른들간의 싸움에도 매를 먹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오늘 오후 외출하고 돌아오니 저희 집 강아지 막스는 이상하게 좀 우울한 표정이었는데요.

저는 "막스, 왜 저래? 왜 저렇게 눈치를 보고 있어?" 라고 물어보았고, 매니저 씨는 예의 그 표현을 쓰며 저에게 대답했습니다.

"막스가 매를 좀 먹었거든. 세게 먹었지. 어머님 집에서 카펫 위에 쉬를 많이 했거든."

매니저 씨가 막스를 목욕시킨 후 드라이어로 잘 말려 놓았고 녀석이 대소변을 다 해결한 직후라 안심하고 어머님 댁 거실에 들여놨었는데, 좋은 향기가 나던 막스는 그만, 어머님께서 새로 빨아서 깔아 놓은 카펫 위에 아주 골고루 쉬를 해놓았기 때문입니다.

어머님은 궁디팡팡 보다는 좀 더 세게 흥5"이 녀석아!"라고 엉덩이를 때리셨고, 기가 죽은 막스는 마당의 자기 집으로 쫓겨나 이제 5kg이 된 많이 큰 덩치를 한껏 오그리고 어머님 눈치를 보고 있었던 것입니다. 

 

막스가 집에 온지 며칠 안 되었을 때. 사촌 니키와 함께

 

 

저는 마당으로 나가 '매를 먹었다'는 막스를 쳐다보며, 평소 명랑한 녀석이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워

"너, 매 많이 먹었냐?" 라고 물어보니, 막스는 불쌍한 척, 하는 표정으로 눈으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물론 5분도 안 되어 다시 발발거리며 명랑해져서, 사실은 마이 묵은게 아니고 '불쌍한 척' 했다는 것을 증명했지만요.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 글을 이해 못하시는 분들이 있어 말씀 드리자면, 이 글은 한국, 미국, 그리스의 체벌 문화에 대해 비방하고자 쓴 글이 아니고, 그리스어 표현과 문화에 대해 쓴 글임을 밝힙니다.

* 답글이 또 좀 늦어지고 있지요? 날씨 덕에 기관지염으로 온 가족이 고생중에 있어요^^ 여건이 되는대로 또 답글을 써나가도록 할게요.~~ 여러분도 건강하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