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통과 독백

그리스의 더위와 일 때문에 내 몸이 잃은 것과 얻은 것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8. 24.

 

                              

 

 

 

한국은 더위가 한풀 꺾였다고 들었는데, 그리스는 아테네를 비롯하여 여전히 40도를 웃도는 곳이 많습니다.(오늘도 로도스는 바람 한 점 없이 낮 기온 41도를 유지했었습니다.) 작년엔 관광객들이 10월말까지도 바다에 들어갈 있었을 만큼 더위가 길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그리스는 아직 여름이 한참 남은 셈입니다.

 

그리스인들 중 관광업과 관련이 전혀 없는 직종의 종사자들은 그래도 1~2주 휴가를 떠나기도 했던 요즘이지만, 저희나 주변 회사, 상인들은 다들 간접적으로 관광과 관련이 있는 직종이기 때문에 여름 휴가는 기대하기가 어려운 지경입니다.

 

이런 그리스의 더위와 밥을 먹을 수 없을 만큼 과도한 업무, 블로그 글쓰기에 비해 고도의 집중을 요하는 책 작업, 그리고 이런 저런 맘 고생을 했던 사건들 덕에 이 여름 제 몸은 잃은 것과 얻은 것이 있습니다.

 

 

며칠 전 늦은 저녁, 저는 동수 씨의 지인을 꼭 만나야 할 일이 생겨 그 댁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한참 필요한 대화를 나눈 후 손에 뭐가 묻어 손을 씻으려고 그 댁 화장실에 들렀는데, 바닥에 체중계가 놓여 있는 게 보였습니다.

저희 집 체중계를 다이어트를 시작하신 시아버님께서 두 달 전 급히 빌려가시면서 제가 최근 체중을 체크하지 못 한 채 두 달이 흘렀다는 사실을, 순간 깨달았습니다.    

 

요즘 옷들이 커진 것을 보니 체중이 좀 줄었겠다 싶어 체중계 위에 올라갔는데, 세상에나...

두 달 사이에 9 kg이 줄어 있는 게 아니겠어요??!!

원래 덩치가 산만한 저로서는 잔치라도 벌여야 할만큼 이런 경사가 또 없지만, 이렇게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갑자기, 단 시간에, 다이어트를 한 것도 아닌데 체중이 줄어버린 것은 스무 살 때 하루 종일 서서 일 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던 때 이후로 거의 이십년 만에 처음있는 일이어서 깜짝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노력해도 빠지지 않던 살이, 역시 안 먹고 몸과 맘을 혹사시키니 빠지는구나...'

싶어서 좀 웃음이 피식 나오기까지 했는데요.

 

실은 작년에 수술 이후에 몸이 좋지 않아 체중이 좀 늘어난 후 도저히 빠지질 않아서 큰일이다 했었는데, 이렇게 어이없이 빠지니 정말 제겐 잘 된 일이긴 합니다.

 

그리고 한 두 달 전쯤부터 제 몸이 얻은 것도 있습니다.

 

다름 아닌 쌍커풀입니다.

 

수술은 한 것이 아니라, 그냥 어느 날 진하게 생기더니 없어지질 않고 자리를 잡았습니다.

본래 눈커풀이 얇은 편이라 예전에도 가끔 피곤한 날엔 하루 정도 생겼다가 없어진 적은 있었지만, 이렇게 진하게 생겨서 계속 유지된 적은 없었는데요.

아마 나이가 든데다가 체중이 갑자기 줄면서 생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 쌍커풀진 어색한 눈을 매일 거울로 마주하면서 매번 제 고등학교 때 국어 선생님이 생각난다는 것입니다.

당시 선생님은 딱 마흔 살의 미혼여성이었습니다.

당시만해도 지금만큼 능력있는 골드미스가 많을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선생님은 어딜가나 주목을 받았었는데, 이유는 나이가 있지만 늘 아가씨같은 외모를 유지하고 있었고 특히 쌍커풀 진 큰 눈이 매력적이었기 때문입니다.

저야 언제나 마리아나보다도 작은 눈을 갖고 있었으므로, 한참 예민한 십대 때 이런 얇은 눈커풀의 작은 눈은 컴플렉스였었는데요.

그걸 우연히 알게 된 그 국어선생님께서는 제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올리브나무야. 나도 고등학교 때는 아주 작은 눈을 갖고 있었단다. 그런데 나이가 드니 어느 날 쌍커풀이 생기더라고. 그러며 눈이 커져버렸어. 너도 모르는 일이란다. 내 나이쯤 되었을 때 쌍커풀이 생길지 누가 알겠니?"

 

그런데 정말 제가 그 선생님 나이가 되니 이렇게 쌍커풀이 생겨버린 것입니다. 

 

물론 살 좀 빠지고 쌍커풀 생겼다고 저의 후덕한 아주머니 외모가 어디 가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리스의 이 더위와 사무실 업무들, 그리고 책작업 등등으로(게다가 사건 사고도 많았던) 스트레스 많이 받으며 보내고 있는 '이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2014년 여름에 이것은 그나마 깨알같은 위로가 되는 일들임에 틀림없습니다.

 

물론 그리스인들은 누.구.나. 갖고 있는 쌍커풀이라 쌍커풀의 유무를 의외로 깨닫지 못 하다보니 (그저 사람 눈에 대해서는 눈이 작거나 크다, 길거나 동그랗다 라고 인식하더라고요.) 제 눈에 어떤 변화가 있는지 누구도 눈치를 못 챈다는 사실이 아쉽기는 하나, 뭐 열심히 부모님과 동생들에게 사진을 보내며 마치 우연히 바다에 들어가 큰 전복이라도 딴 것 마냥, 때아닌 자연산 쌍커풀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너무 오랜만에 여러분께 소식을 전해 죄송하고요.

다음 주엔 이번 주 있었던 재미있는 이야기로 또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즐거운 일요일 되세요!

좋은하루

 

 

 

관련글

2014/03/19 - 날 좀 당황시킨 그리스인 아기의 솔직 반응

2013/04/24 - 그리스 역시 금발은 너무해!

2013/04/10 - 어쩔 수 없이 동참하게 되는 그리스인들의 다이어트 습관

 

 

* 동수 씨를 걱정해주시고 댓글 주신 여러분께 모두 감사드립니다. 동수 씨의 피부 화상은 생각보다 오래가서 아직도 완전히 낫진 않고 있네요~ 아마 앞으론 한낮에 절대로 바다에 오래 있지 않을 듯 합니다^^ 마리아나는 잘 먹으며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답니다~ 제가 바쁜 게 좀 지나가면 마리아나가 자신을 응원해주시는 독자님들께 꼭 감사하다는 영상메시지를 남기고 싶으니 찍어달라고 해서 그러기로 했답니다. 그 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