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저와 딸아이는 집안끼리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왔던 마리아의 작은 딸 에브도끼아의 이름날 파티에 초대받아 가게 되었습니다.
파티에서 군무를 추는 에브도끼아 친구들(6학년)의 움짤입니다.^^
이맘 때는 개인 생일 파티나 이름날 파티에도, 대개 가장무도회 복장으로 참석하게 되어 있는데요.
마리아나는 백설공주 옷보다 한복이 좋다며, 또 한복을 입었습니다.
생각해보니 한국에 있을 때보다 더 자주 한복을 입는 것 같네요.^^
림보를 하는 아이들. 그리스 답게 튜닉을 입은 아이가 있네요.^^
파티의 DJ를 맏은 하랄라보스.
그리스 아이들은 파티를 하면 그리스 음악과 각나라의 팝을 들으며 춤을 추곤 하는데,
이날 싸이의 노래도 틀어 주어서 깜짝 놀랐었답니다.
확실히 6학년 큰 아이들 파티라 부모들이 거의 참석하지 않고 아이들끼리 놀아서 더 즐거워 보였습니다.
제 시댁과 미용사 마리아의 친정 집안은 60년 전, 두 집안이 중세 성곽마을 안에 살 때부터 친구였던 집안입니다.
(그리스엔 마리아란 이름이 워낙 많아서 이런 수식어를 함께 쓰지 않으면 헷갈리기 때문에, 저도 이렇게 직업과 함께 제 지인 '마리아'들을 여러분께 소개하도록 할게요.)
구시가지로 불리는 성곽마을 (빨리아 뽈리Παλιά Πόλη:The old town) 안에는 당시 저희 시어머님의 집과 시아버님의 집이 모두 있었다고 합니다.
같은 구시가지에 살던 마리아의 부모님과 저의 시조부님께서는 친구처럼 지내셨고, 마리아의 나이차 많이 나는 언니들과 저희 고모님들은 친구로 지내며 자랐다고 했습니다.
이런 인연으로 동수 씨의 외할머님이, 마리아의 대모(그리스에서는 꼭 필요한)가 되어 주시기도 했는데요.
마리아와 제 남편 동수 씨는 나이차가 많이 났지만 이 구시가지를 누비며, 서로 누나와 남동생처럼 몰려다니며 말썽을 피웠다고 합니다.
마리아는 마른 체구와 달리 큰 형 같은 우렁참이 있는 성격이라, 말썽꾸러기였던 동수 씨와 죽이 맞아 아테네에 몰래 연예인 콘서트를 보러 갔다 와 부모님께 흠씬 두들겨 맞은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특별한 파티의상을 입은 미용사 마리아
그런 인연으로 마리아가 결혼할 때 이제 겨우 16세였던 동수 씨는 그리스에선 평생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들러리를 서게 되었고, 마리아의 첫 딸인 소피아가 태어났을 때 '대부'역할까지 하게 되어 지금까지 대부로서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현재에도 1,000여가구가 살고 있는 성곽마을 안
구시가지 성곽마을 안에 있던 동수 씨의 양가 조부모님과 마리아의 집안이 당시에 살던 골목입니다.
제가 이곳을 여행하러 왔을 때, 당시 동수 씨의 어머님께서 제게 성곽마을을 구경시켜 주시다가 우연히 이 옛집이 있던 골목으로 들어서게 되었었는데, 이 사진을 찍을 때만 해도 제가 동수 씨와 단순 지인이었기 때문에 어머님과 이런 관계가 될 지도, 또 로도스에 와서 살게 될지도 몰랐던 때였습니다. 지금 사진을 다시 보니 감회가 무척 새롭네요.
그러다 마리아의 부모님은 자녀들이 결혼을 하게 되면서 구시가지를 나와 신시가지에 3층 빌라형 아파트를 지으셨고 1층엔 부모님, 2층엔 마리아의 언니 엘레니 가족, 3층엔 마리아의 가족이 자리잡고 살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집 부엌
(초를 켜둔 곳의 사진은 마리아의 돌아가신 어머니와 남동생의 사진입니다.
그리스에서는 정교회 풍습으로 최근에 고인이 된 가족의 사진 앞에 초를 켜두는 가정들이 간혹 있습니다.)
저희 시부모님은 구시가지에 사실 때 결혼을 하셨고, 그리스 문화대로 시아버님이 처가인 시어머님 댁에 들어가 살게 되셨다고 합니다. 그러다 동수 씨가 중학생일 때, 외할머님댁은 시골인 끄레마스띠란 지역으로 이사를 가시고 지금 저희가 살고 있는 이 집을 지어 신시가지로 이사오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두 집안의 인연은 서로의 집이 좀 떨어진 신시가지로 이사온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마리아의 아랫집에 사는 언니 엘레니의 딸도 이름이 소피아인데, (이 집안은 맨 아래층에 사셨던 외할머님의 이름을 세 딸의 손녀딸들이 다 물려 받아 사촌 셋이 모두 소피아,란 이름을 갖고 있어서 한자리에 모이면 서로 부르느라 정신이 없는 장면을 연출해 제 정신을 쏙 빼 놓기도 했었답니다.^^) 이 소피아가 바로 저와 제 딸아이의 첫 그리스어 선생님이었던 현직 초등학교 교사인 바로 그 소피아입니다.
토요일 파티에서 친구 소피아와 마리아나
그리고 이젠 마리아의 딸 에브도끼아와 제 딸 마리아나가 친구로 지내고 있습니다.
이 둘은 서로 성격이 잘 맞는 편이라, 나이차가 3살이 나는데도 저와 소피아가 만날 때 이 둘도 함께 만나 어울리곤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 집안이 4대를 이어 만나고 친분을 이어오는 장면은 그리스에서는 그렇게 드문 장면이 아닙니다. 로도스 뿐만 아니라 아테네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도대체 그리스인들은 어떻게 바쁜 현대사회에도 이렇게 대를 이어 가족끼리의 친분을 유지하고 사는 건가? 저는 처음엔 좀 의아했었는데요.
한국도 예전엔 이렇게 3대 4대가 대를 이어 집안끼리 친하게 지내는 경우가 참 흔했었지만 21세기인 현재엔, 특히 대도시에서 바쁘게 사는 사람들의 경우 사촌의 얼굴을 자주 보는 것조차 쉽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변 이런 사례들을 관찰하다 보니, 이렇게 집안끼리 대를 이어 친하게 지내는 사람들의 한가지 공통점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자기 가족끼리 대가족으로 단합이 잘 되는 가족이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엔 이렇게 단합이 잘 되는 가족들이 여전히 많은 것입니다.
며칠 전 저는 제 친구 의사 마리아의 집에, 잠깐 차 마시며 그간의 근황들을 얘기하려고 들렀었는데요.
그녀는 아테네에 살다 이사온 친구라 여동생 둘이 여전히 아테네에서 결혼해서 살고 있습니다.
마침 제가 그 집에 있을 때 막내 여동생에게 전화가 왔고, 그녀는 좀 끊기가 애매한지 제게 눈짓으로 미안하다고 말하며 동생 얘기를 심각하게 듣는 것 같았는데요.
알고 보니 동생은 시집가 시부모님이 지은 아파트에 살게 되었는데, 1층은 시댁, 2층은 동생네, 3층은 시누네가 살게 되면서 동생은 시댁식구들과 겪는 갈등이 있어서 언니에게 가끔 전화해 고충을 토로한다고 했는데, 그래도 이런 문화를 받아들이며 시댁식구들과 잘 지내보려고 노력하며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정확하게 똑 같은 상황으로 아테네에 처가식구들과 한 건물에 살다가 일부러 직장을 로도스로 발령받아 이사온 제 또 다른 남성 지인도 있기 때문에, 저는 마리아의 동생 얘길 공감하며 들었습니다.
그리스 안엔 이런 구조로 처가, 혹은 시댁과 별채에 살지만 한 울타리에 사는 경우가 많고 그렇지 않더라도 현대에도 여전히 대가족이 모여 사는 것을 좋아하고 자주 모이는 그리스 문화 때문에, 이렇게 세대를 이어 다른 집안과 친구로 지내는 것이 더 쉬울 수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의사 마리아의 집안에도 대를 이어 친한 집안이었던 가족이 있었는데, 결국 마리아는 태어나서부터 자주 보던 그 집 아들인 스피로스와 결혼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왜 결혼했냐고 물으니, 레지던트까지 하느라 변변한 연애를 할 기회가 없었던 그녀 옆에 역시 애인 없이 있던 스피로스가 어느 날 참 듬직해 보였다고 하네요.^^
저희 시부모님도 구시가지 안에서 태어나서부터 얼굴을 보다가 집안끼리 워낙 친하게 지내다 결혼을 하게 된 경우라, 시아버님은 농담처럼 제게 이런 말을 건네곤 하신답니다.
"내가 이 네 시어머니와 친구로 20년을, 애인으로 2년을, 결혼해서 여태까지…도대체 난 한 여자에게 이렇게 오래 충성하고 있단다. 이렇게 잘 생긴 내가 말이지! 정말 대단하지 않니?^^"
그럼 시어머님은 이렇게 농담을 받아 치십니다.
"흥, 나랑 애인되기 전에 다른 여자들이랑 썸 타던 것을 내가 모를 줄 알고?
그땐 내가 친구였다는 것을 있지마. 당신. 나한테 와서 그 여자들 얘길 다 했었다고!"
월요일이네요.
그리스인들의 끈끈한 가족들과 친구들에 대한 글을 쓰다 보니,
어쩌면 이 월요일 나만큼 고단할 가족 중 누구에게 따뜻한 안부문자라도 하나 보내볼까 싶어집니다.
여러분 힘찬 월요일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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