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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다 늦게 군대 간 불쌍한 내 그리스인 친구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1. 27.

 

 

 

아이들끼리의 친분으로 저와 평소 친하게 지내는 몇몇 부부들이 있습니다. 친구가 되는 데에 나이를 따지지 않는 그리스 문화대로, 아이들은 모두 같은 나이지만 이 부부들의 나이는 제 각각입니다.

마리아 부부(그리스 나이 45세 52세), 카테리나(까떼리나) 부부(38세 42세), 엘레니 부부(30세 34세) 입니다. 다들 나이도, 직업도, 성격도 다르지만 우리는 등 하교 길에 늘 마주치는 것 외에도 한 달에 몇 번은 모여서 아이들 키우는 이야기도 하고 살아가는 이야기도 나눕니다.

그 중 엘레니는 고등학교 때 만난 첫 사랑 야니스와 졸업 후에 바로 결혼을 했고, 고향을 떠나 로도스 시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엘레니(왼쪽)와 마리아(오른쪽)입니다.

 

얼마 전 엘레니 집에서 그녀의 딸 바실리끼 생일 파티가 있어서 가게 되었는데, 올해 파티는 보통 그리스 아이들의 파티에 비해 간단했고 참석 인원도 적어 의아했지만, 평소 검소한 엘레니답다 싶어서 도리어 기쁘게 참석하게 되었는데요.

한참 맛있는 것을 먹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엘레니 남편 야니스가 한탄스런 목소리로 말을 했습니다.

 

"내가 곧 떠나는데, 엘레니와 아이들을 잘 부탁해요.

다들 서로 함께 잘 지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저는 떠난다는 말에 놀라 다시 묻게 되었는데요.

 

"어딜 가는데요? 일 때문에 출장 가나요?"

 

야니스는 약간 미간을 찌푸리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어요. 하지만 군대 간답니다…."

"네? 군대요? 아니…야니, 당신 나이가 얼마인데 군대를 이제야 간다는 거에요??"

"그게, 이제 곧 35세가 되는데…여태 아무 소식 없더니,

그 몇 달을 못 기다리고 영장이 나와 버렸어요…."

"그게 무슨 말인지…???"

 

알고 보니, 사정은 이랬습니다.

한국처럼 군복무가 의무인 징병제를 시행하고 있는 그리스에서는, 그리스인 남자라면 원래 19세~21세 사이에 가장 많이 군대에 소집되는데요. 예전엔 2년이 넘었던 군 복무 기간은 매니저 씨가 군 복무를 할 때엔 2년으로 줄었고, 해를 거듭하면서 줄어들어 현재는 지역별로 차이는 있지만 9개월~1년으로 줄었는데요.

야니스는 이 19세~21세 사이에 군대에 소집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당시 재외국민(국외에 거주하나 그리스 국적을 갖고 있는 국민)이었던 것입니다!

야니스의 부모님은 자녀들을 데리고 사업차 알바니아로 단기 이민을 떠났고, 알바니아에 살던 야니스에게 영장이 오긴 했지만, 그리스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재외국민확인증을 제출하니 군대는 연기되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제 남편 동수 씨의 사촌인 베르니는 오스트리아인과 그리스인 사이에서 태어나 두 곳에서 다 출생신고를 했고, '다중국적을 허가하고 있는 오스트리아''다중국적을 원칙적으로는 허가하지 않지만 조건적으로 허가하는 그리스', 두 곳의 국적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19세가 되었을 때 그리스 군대는 오스트리아로 영장을 보냈고 그는 그리스에 거주하지 않는다는 서류를 제출해 군대를 연기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베르니의 경우 그리스에 들어와 살 예정이 없기 때문에 결국 그리스 군 면제로 이어질 게 뻔한데요.

그리스에서는 남성의 나이가 그리스 나이(만 나이)로 35세 이상이 되면 군대를 면제시키기 때문입니다.

 

제 친구 야니스의 경우 22세 쯤에 그리스로 다시 돌아왔고 지금까지 12년 동안이나 기다려도 영장이 나오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 사이 엘레니를 만나 결혼을 했고 아이 둘을 낳았으며 그 아이들은 이제 한국 나이로 10살 8살(그리스 나이로 9살 6살)이 되었습니다. 하는 일도 자리를 잡았고 풍족하진 않더라도 생활도 안정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몇 개월 후면 만 35세가 되어 군대가 면제되는 야니스에게, 청천병력처럼 이제야 군대 영장이 나온 것입니다! 어쩌다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을까요? 늦장 행정도 이런 늦장이 없습니다.

 

 

그리스의 늦장 행정

외국인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볼 때, 현재 그리스의 가장 큰 문제는 공공기관의 불합리한 구조적인 문제와 형평성에 어긋나게 선발된 자질이 없는 사람들이 여전히 공무원으로 일하고 있다는 부분인데요. 최근 구제금융 조건을 이행하느라 일부 공무원을 해고하긴 했지만 여전히 이런 문제는 큰 변화와 개혁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공공 기관의 제도는 불합리하지만, 이 불합리한 것에 대해 지나치게 원칙을 고수하도록 행정화 되어 있어, 도리어 일 처리를 할 때 불필요한 서류를 중복되어 필요로 하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따라서 공무원들은 잦은 실수를 할 수 밖에 없고, 실수는 곧 늦장 행정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늦게 군대 영장을 받은 것은 분명 서류가 누락되는 등의 실수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12년 동안 아무 소식도 없다가 갑자기 35세가 다 되어가니 급하게 군 소집 영장을 발부한 다는 게, 참 말도 안 되는 경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그리스인들은 이런 늦장 행정, 불합리한 공공 제도에 어느덧 체념해 버렸다는 사실입니다. 성격 급한 그리스인들임에도 불구하고 이런 현상을 수십 년을 거듭하며 겪다 보니, 의례 그려러니 면역력이 생겨 버린 것입니다.    

 꿋꿋한올리브나무

 

 

물론 결혼해서 자녀가 둘이나 있는 상황을 고려해서, 복무 기간은 5개월로 줄여 주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그래도 34세(한국나이 36세)나 된 남자가 19, 20세의 어린 청년들 사이에서 군 복무를 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님에 틀림없습니다.

또한 그가 군대에 있는 동안 얼마간의 고용보험에서 지급하는 돈을 가족들이 받게 될 것이고, 엘레니가 일을 하고 있으니 그 동안 가족들이 먹고 살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원래 급여보다 훨씬 적은 수입으로 가족들은 5개월간 생계를 꾸려나가야 하고, 현 그리스 상황에서 야니스는 제대 후에 하던 일로 다시 복귀하는 데에 분명 어려움이 따를 것이며, 아직 어린 아이들은 당분간 아빠 없이 생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스인에게도 '군대는 당연한 의무라고 여기며 군대에 간 가족이나 친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개념'이 강하지만, 야니스의 상황을 보면서 친구 중 누구"네가 드디어 군 복무의 의무를 다하는 구나!" 라고 박수를 쳐 줄 수만은 없었습니다.

결국 지난 주 야니스는 떠났고, 요즘 엘레니는 일을 하며 두 아이들을 혼자 돌보느라 좀 지친 듯 해 보이는데요.

군대 간 야니스엘레니의 두 자녀,

바겔리스(왼쪽)바실리끼(가운데)입니다.

 

군대 간 야니스 만큼이나 엘레니에게도 위문이 필요한 것 같아, 조만간 파이팅을 외치러 맛있는 것 사 들고 그녀 집에 위문 공연을 가야 할 것 같습니다.  

 

여러분 파이팅하는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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