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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한 그리스 문화

거리의 오렌지만 먹고 살겠다고?농담하는 그리스인들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1. 30.

 

 

 

현재 그리스를 여행하시는 분께서 질문을 댓글로 남겨 주셨습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리자면 가로수에 있는 오렌지나, 귤 등을 한 두 개 따 먹는 것에 대해 크게 문제 삼진 않습니다. 다만 너무 대 놓고 봉지에 다량으로 따는 모습을 경찰이 목격한다면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어떻든 가로수는 시나 관할 지역의 소유물이고 자국민도 아닌 외국인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자칫 사나워진 그리스인들의 겨울 민심에 불을 지필 수도 있는 일이니까요.

(신호등이 짧은 이유는 그리스는 유적을 보호하려다 보니 모든 도로가 상당히 좁은 편이고 일방로가 많은데, 이런 도로 구조는 쉽게 교통정체를 유발하게 됩니다. 그래서 보행자 신호가 짧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무단횡단에 대해서는 무단횡단을 하는 관광객이 의외로 많기 때문에 경찰이 일반 시민에 대해서도 크게 단속하진 않기에 더 일반화된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스는 관광객 수가 거주 인구 수보다 많은 나라니까요.) 

 

그런데 사실 그리스인들 중엔 이렇게 문제가 될 만큼 가로수의 과일을 많이 따 먹는 경우가 잘 없는데요.

그리스에서는 일반 주택인 가정집에도 이런 과실수가 아주 흔하기 때문입니다. 

비가 많이 와 수분이 충분하고 비가 오지 않는 날은 습하지만 햇볕이 넉넉한 그리스의 겨울은 오렌지, 레몬, 귤, 라임, 낑깡(금감) 등의 열매들이 열리기가 참 좋은 조건인데요.

겨울이지만 비가 오지 않는 날의 한낮엔 해가 이렇게 따뜻하게 내리쬡니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집집마다 주렁주렁 가지가 늘어지도록 풍성한 열매를 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과일의 철인 그리스의 겨울엔 일반 슈퍼마켓에서도 이런 과일들을 싸게 구입할 수 있는데요.

하지만 역시 과일의 맛은 과일을 어떻게 관리하냐에 달려 있는 듯 합니다.

아무도 관리하지 않는 가로수의 오렌지 < 가정집의 오렌지 < 슈퍼마켓의 오렌지 < 농장의 오렌지

이런 순서로 맛과 향이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얼마전 오렌지 농장을 지나다 찍은 사진입니다.

 

 

요즘 그리스는 겨울이 되면서 관광 관련 업종에 근무하는 대다수의 국민들이 고용보험급여를 통해 살아가야 하는데, 그리스 정부가 작년부터 이 고용보험급여 수혜 대상자와 금액, 기간을 줄이기 시작해 올해는 아예 이를 받지 못하는 사람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관광 관련 업종 근무자의 경우 사실 여름에 거의 휴일이 없이 장시간 근무를 하기 때문에 겨울이 시작되면서 입원해야 하는 경우가 늘 만큼 쉽지 않은 근무 조건을 견뎌야 합니다. 일 예로 호텔 조리사로 여름 7개월만 근무하는 제 시누이의 경우에도 7개월간 하루 10시간을 근무하면서 주말은 물론이고 단 하루의 휴일도 없이 일을 하는 놀라운 신공을 발휘하곤 하는데요.

이렇게 과하게 여름 내내 일을 할 수 있는 것은 겨울 5개월간 쉬어야 할 때 고용보험급여가 나와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올해 어떤 사람은 3개월만, 어떤 사람은 2개월, 어떤 사람은 아예 고용보험급여를 받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럼 나머지 겨울 동안은 어떻게 먹고 사냐?" 라는 질문에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 생기게 된 것입니다.

멍2

"거리의 오렌지나 따먹고 살아야지. 별수 있나요?"

관공서 뒷길의 오렌지 가로수 옆을 지나는 로도스의 대학생들

 

 

그리스인답게 해학적으로 현재 상황에 대해 농담으로 한 말이지만, 비싸진 전기세와 공과금, 대부분 그리스인들이 집을 구입하며 갖게 된 은행 대출금 등을 겨울에도 매달 갚아나가야 하므로, 오렌지만 먹고는 결코 돈 없이 살수는 없기에 이 대답이 참 씁쓸하게 들리기까지 하는데요.

하지만 이런 농담을 던질 수 있는 이유는 적어도 그리스의 가로수에 오렌지가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농담인 것입니다. 게다가 그리스의 일반 집에 넘쳐나는 과실수가 담장 밖을 넘었을 때, 이웃이나 길가는 사람이 그걸 한 두 개 따 먹는다고 눈에 불을 켜진 않은 넉넉한 인심은 여전히 그리스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저희 집 마당의 낑깡 나무 가지는 담장을 넘지도 않았는데도, 길 가다가 담 안으로 손을 뻗어 그걸 따먹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하지만 어느 집이라도 낯선 이가 아예 집안으로 들어와 따가는 게 아니라면 크게 뭐라고 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리스 서민 경제가 아무리 어려워졌다고는 하나 '그리스에서는 1유로(1500원)에 몇 개는 살 수 있는 오렌지'를 굳이 맛없는 가로수에서 따먹고 살아야 할 만큼 어려운 형편의 그리스인들이 없었으면 싶습니다.

 

1월은 다 갔고 이제 2개월 반만 버티면 4월 중순이 되고, 그리스의 관광업이 다시 시작되는 여름이 올 것입니다.

로도스의 2,000개의 호텔들과 렌터카 회사들도 다시 문을 열게 될 것입니다. 분명 로도스 거주 인구의 5배 넘는 관광객들로 쇼핑을 할 때마다 길게 줄을 서야 하고 가는 곳마다 차가 막히는 복잡한 상황에 또 처하게 되겠지만, 그래도 창틀에 이끼가 끼도록 습한 그리스의 겨울에 지친 요즘, 시간이 얼른 지나가 주길 바라게 됩니다.

 

여러분 즐거운 명절 연휴 보내세요!

 

*저는 사실 독자님들이 알려주시지 않았다면 이번 주가 한국의 설이라는 것도 모를 뻔 했어요.

뭘 하고 산다고 정신없이 이러는지, 이번에 부모님께 아무것도 못 보내서 죄송한 마음 뿐이랍니다...

제게 알려주신 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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