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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있는 그리스어

한국과는 사용 대상이 달라 구박 받은 나의 그리스어 존댓말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9. 22.

 

 

 

그리스에 이민 온지 채 한 달이 안 되었을 때 일입니다.

한국에 살 때 그리스어를 공부했다고는 하나, 실제로 그리스인들만 있는 곳에 살며 그리스어를 배우는 것은 완전 새로운 것들을 알게 했습니다.

당시의 저는 그리스어에 존댓말이 있다는 것은 알았지만 전혀 익숙하지 않았는데, 그리스에서 생활하다 보니 그리스인들이 의외로 존댓말을 많이 사용한다는 것을 알고 몹시 당황했는데요.

도대체 어떤 대상에게 써야 할 지 저는 여전히 모호했기 때문에 존댓말을 쓰려할 때마다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날은 친척 모임이 있던 날이었습니다.

가뜩이나 잘 모르는 친척들이 저희 집에 많이 와서 잔뜩 긴장해 있었는데, 몇 번 본 적 있는 먼 친척 시누이가 왔고 시누이의 남편(아주버님)도 곧 일이 끝나 집에 도착할 거라고 했습니다.

저는 그 먼 친척 아주버님을 몇 번 본 적은 있었지만, 자주 보거나 친한 사이가 아니었기 때문에 늘 어렵게 느껴졌었는데요.

설사 친하다고 해도 시누이 남편이면 한국에서도 어떻든 존대를 해야 하는 관계이기 때문에, 저는 마음 속으로 인사말로 존댓말을 준비하며 실수 하지 말아야지 다짐하고 있었습니다.

 

<<여기서 잠깐! 그리스어의 존댓말은 "2인칭 복수형 주어와 동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

그리스어는 인칭 별로 동사가 달라지는 데요.

쉽게 말해, 현재 시제 하나만으로도 내가 먹는다(τρώω), 네가 먹는다(τρως), 그가 먹는다(τρώει), 우리가 먹는다(τρώμε), 너희가 먹는다(τρώτε), 그들이 먹는다(τρώνε). 이렇게 먹는다는 동사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에게 존댓말로 "뭐 좀 드시고 계세요?" 라고 묻는다면, '너희들'에 해당되는 동사를 사용해 물으면 되는 것입니다. «Τρώτε κατι?» 뜨로떼 까띠?

« » 표시는 그리스어의 따옴표입니다. 그리스어 표기에서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따옴표"는 잘 사용하지 않습니다.

 

 

저는 마음 속으로 한국어의 "안녕하십니까?" 에 해당되는 인사인 « Για σας.» 이야 사스! 를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보통 친한 사람끼리 그리스어 인사를 할 때 «Για σου.» 이야 수!, 혹은 짧게 «Για.» 이야! 라고 만 해도 되는데요.)

 

드디어 초인종이 울리고 아주버님이 집에 도착하셨습니다.

저는 존댓말을 잘못 사용할까 두근대는 마음으로 조로록 달려나가 문을 열어주면서, 어색함에 광대 터지게 미소를 지으며 큰 소리로 « Για σας!» 이야 사스! 라고 인사를 건넨 것입니다.

근데 제 목소리가 너무 컸는지 제 인사를 집안에 있던 모든 친척들이 다 들어버린 것입니다. 갑자기 먼 친척 시누이는 제게 거의 짜증에 가깝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올리브나무! 넌 왜 자꾸만 이야 사스 라고 하니?

집에 온 사람은 한 명이라고! 여러 명이 아니고!!!"

아자

 

그러니까... 제가 존댓말을 사용했다고 생각한 게 아니라, 그리스어를 잘 몰라서 2인칭 복수형을 사용해 여러 명에게 할 인사를 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굳이 그렇게 소리까지 지를 필요가 있을까 싶게 무안했는데요.

친척 모임을 자기 집에서 하는 것도 아닌데 명절증후군인가 싶기도 했고...

고등학교 때 수업시간 선생님의 유머에 웃었을 때 세 반 건너 친구가 듣고 "너 지난 시간에 웃었지?" 라고 물었을 만큼 큰 목소릴 가진 제가, 목소리 조절을 못해 광대 터지게 웃으며 인사한 걸 두고두고 후회하게 만들었답니다.

배째

 

나중에 시간이 지나 알게 된 사실은 한국과 그리스는 존댓말을 사용하는 대상이 다르다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어의 경우 낯선 사람에게 사용하기도 하고, 나보다 지위, 직위가 높은 사람에게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그리스어의 경우 존댓말은 '마냐 나와 친하냐!' 에 따라 사용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시부모님이든 직장상사든 가게 손님이든 학교 선생님이든, 상대와 친하지 않을 때는 존댓말을 사용하지만, 몇 번 보고 서로 친해졌다고 생각했을 때는 그냥 반말을 사용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또 한가지 헷갈리는 것이 있었는데, 그리스인들 사이에서 이 '친하다'는 기준은 서로가 마음의 거리가 비슷해야 한다는 것인데요.

일 예로 딸아이 1학년 때 담임선생님을 6개월을 보면서도 그녀는 저를 친하다고 여기지 않았기에 내내 제게 존댓말 인사인 "이야 사스"를 건넸고, 저는 이제는 좀 친해지지 않았나 싶어 인사로 "이야!" 만 건넸다가 그녀의 존댓말에 흠칫 놀라 얼른 뒤에 "…사스…"라고 붙인 적도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상대는 제게 "안녕히 가세요!"라고 인사했는데 저는 "안녕!" 이라고 인사하다가 흠칫 놀라서 황급히

"…히 가세요…."를 붙인 셈입니다...

그걸 지켜본 딸아이가 건물을 나오자 얼마나 배를 잡고 웃던지 민망함에 "그만 웃어!" 라고 말했지만, 아주 운동장에 구를 기세로 웃어대서 부지런히 주차장까지 걸어왔던 기억이 있답니다..

우하하요염

여러분, 만약 그리스를 여행하거나 어디선가 그리스인을 만날 기회가 있으시다면 일단 존댓말로 "이야 사스" 라고 인사를 건네면 예의 있는 사람으로 보이니 알아 두면 좋으실 것 같아요.

그리스인들도 영어의 Lady, Sir 에 해당하는 "Κυρία"끼리아, "Κύριε" 끼리에 라는 호칭을 자녀로 하여금 처음 보는 어른에게 꼭 사용하게 할 만큼, 존댓말을 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그리스어 사용자에 대해 교양 있는 사람으로 생각한답니다.^^ 저도 이제는 익숙해진 그리스어 존댓말을 적절하게 사용해서 처음 보는 가게 주인에게 많은 덤을 받은 적도 있을 정도니 말이지요.^^

 

추석 연휴도 막바지네요. 활기차게 에너지 충전하시는 하루 되시길 바랄게요!

여러분 고맙습니다!

좋은하루

 

 

저는 지금 이곳 구디스 라는 그리스 햄퍼거 프랜차이즈에 앉아 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딸아이는 이곳 어린이 놀이터에서 놀고 있고요.

3주 연속 남편 친구들이 예고 없이 주말에 집에 쳐들어 왔기 때문입니다.

자기들끼리 음식은 배달해서 먹곤하지만 거실에 하루 종일 진치고 앉아 있으면 정말 말도 못하게 어질러 놔서 할 말 없어지게 만드는 친구들이랍니다.

 지난 주에 "일요일엔 제발 친구들 좀 못 오게 해 줘. 나도 쉬고 싶어." 라고 말했더니, 글쎄 이번 주엔 토요일 오후에 왔네요. 헐.

결혼 안한 이 웬수들이 모두 빨리 결혼해서 못 쳐들어 오도록 오늘부터 기도라도 해야겠어요.

오늘 그리스어 존댓말 "안녕하세요"에 관한 글을 썼는데, 

정말 KBS 전국민 고민상담 "안녕하세요"에 나갈만 한 소재가 제 주변에 무궁무진 하네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