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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내가 그리스어를 가르치다니!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10. 25.

 

 

며칠 전부터 사촌 마사의 부탁으로 그녀에게 그리스어 문법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인 엄마를 둔 마사는 말하고 듣는 것에는 크게 문제가 없는데, 자랄 때 집안에서 그리스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한 오스트리아인 아버지 쪽 가족들 때문에 문법을 배울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동사 변화와 시제 변화가 많은 그리스어의 문법을 잘 모르다 보니 말을 하다가도 잦은 실수를 하게 되었고, 그리스에서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는 안 되겠다 싶었는지 결국 자존심을 버리고 저에게 부탁을 해 온 것입니다.

아무리 제가 그리스어 문법을 이곳에서 장기간 교수님께 배워 간간히 번역 일을 하고 있다고는 하나, 한국인에게도 아닌, 반쪽은 그리스인인 그녀의 이러한 요청을 수락 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그리스어에 대해 부족한 것이 많은 제가, 여전히 한번씩 단어를 잘 못 사용해 매니저 씨를 폭소하게 하는 제가, 과연 그녀에게 그리스어 문법을 가르쳐야 하는 거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또한 제가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에 비해 아주 적은 돈을 받기로 했기 때문에, (우리는 마피아 같은 가족이니까요…^^) 금전적으로 큰 이익이 되는 일은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그녀가 두 번째 부탁을 해 왔을 때, 저는 더 이상 고민하지 않고 하겠다 라고 허락을 했습니다.

이유는 간단했습니다.

자신은 없지만, 이것은 분명히 제게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위한 교재를 준비하며 딸아이에게 문법을 가르칠 때보다는 훨씬 더, 저에게 확실한 복습의 기회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교재를 준비할 때 어쩔 수 없이 독일어 사전을 찾아 봐야 하는데, (생소한 문법 용어를 이해시키기 위해) 이것이 언젠가 딸아이가 독일어를 제2외국어로 선택해서 공부해야 할 때 부족하지만 제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첫 번째 수업을 했습니다.

마사가 독학으로 문법 공부를 한 노트를 보면서 저는 그녀를 많이 격려해주었습니다.

토닥토닥

간절함이 역력히 엿보였기 때문입니다.

최대한 그녀의 자존심을 건드리지 않으면서 그녀가 잘못 알고 있는 문법에 대해 차례대로 짚어 주었습니다.

수업이 끝난 그녀는 몹시 기뻐하며 환하게 웃어 보였습니다.

 

그녀는 고맙다며, 성 안 큰 나무가 있는 카페에서 커피와 케잌을 샀습니다.

 

이상 기후로 로도스는 올해 아직도 낮엔 반팔을 입어야 하는, 비가 오지 않는 날씨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관광객들은 덕분에 아주 좋아하고 있지요.

 

 

그녀의 이런 용기가, 내년에 이곳에 정착할 때 좋은 직장을 찾는 것으로 결실을 맺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가져봅니다.

또한 제가 이렇게 만들어 놓은 교재가, 언젠가 그리스어를 전혀 모르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그나저나… 저의 빡빡한 일과에, 일 하나가 더 늘었네요.

몸 관리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졸려4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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