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소통과 독백

해외생활하며 생각났던 한국휴게소 맛오징어, 친구에게 줘 버렸어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7. 24.

 

 

 

어제 늦은 밤, 서울과 좀 떨어진 곳에서 일 관계 미팅을 마치고 고속도로를 타고 서울 방향으로 올라오다 중부고속도로에 있는 이천 휴게소에 들렀습니다.

오후 세 시에 시작된 미팅은 몇 년 만에 얼굴을 맞댄 사람들과 함께 (그간 전화, 화상 통화만 하다가) 일 얘기를 비롯하여 저의 근황까지 나누다 보니 밤 열두 시나 되어서 끝이 났고, 서울 쪽으로 올라오며 이천 휴게소에 들른 시간은 새벽 두 시가 넘은 시간이었습니다.

테라스의 논 풍경이 고즈넉한 중부고속도로의 오창 휴게소, 산세가 내려다 보이는 중앙고속도로의 단양 휴게소와 같은 제가 좋아했던 장소는 갈 수 없더라도, 이천 휴게소의 늦은 밤 세워져 있는 화물트럭들까지 정겨울 만큼 한국의 휴게소는 반가운 마음을 왈칵 들게 만들었습니다.

 

출처-google image

참 좋아하는 서울방향 오창 휴게소 테라스에서 바라보는 풍경입니다.

 

이천 휴게소는 서울 근처라 이렇다 할 특별한 휴게소는 아니지만, 제게는 한국에 살 때 지방 출장을 다니며 밤 늦은 졸음운전을 피해 차를 세우고 십 분 이십 분 짧게 눈을 붙였던 장소였습니다.

한국에서 살 때 잠시 쉬려고 들렀던 많은 고속 도로 휴게소들이, 이제는 제게 여러 추억을 견인하는 장소가 되었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에 살면서 저는 자주는 아니지만 가끔, 한국의 맛오징어 생각이 나곤 했는데요.

원래 크게 좋아하는 먹거리는 아니어서 해외생활 중 그런 게 생각 날 거라고는 전혀 예측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그리스에서는 맛 볼 수 없는, 특히 한국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잠을 쫓으려고 사서 씹곤 했던 여러 종류의 맛오징어여서일까요?

이천 휴게소에서 커피를 사다 말고 발견한 맛오징어를 반가운 마음에 망설임 없이 덥석 집어 들고 계산을 했습니다.

 

그런데 고속도로에서 올라오는 내내 졸던 동료 겸 친구가 이천 휴게소에서 집까지 가면서, 생각보다 오늘 일이 너무 늦게 끝나서 남편에게 말은 하고 나왔지만 기다리다 좀 화가 났을 것 같다며 걱정을 하기 시작했는데요.

남편은 예전에 저와 일도 함께 했었고 친구와 그리스에 다녀갔을 만큼, 십 년 넘게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인데, 불현듯 그분이 이 맛오징어를 굉장히 좋아했었던 게 떠올랐습니다.

목적지에 도착했고, 졸다 일어나 정신 없이 내리는 친구 손에 저는 맛오징어를 쥐어 주었습니다.  

 

"왜? 나를 줘요? 사장님이 먹고 싶어했잖아요."

"아니야... 남편이 그거 좋아했잖아. 별 거 아니지만 갖다 주면서 기분 좀 풀어 줘요."

 

친구는 맛오징어를 받아 들고 잠시 망설이더니 "고마와요~!" 라며 급히 사라졌습니다.

언젠가 제가 올린 글, 한국에 단 하루만 갈 수 있다면 꼭 가고 싶은 곳에 대한 가상 시나리오를 썼던 것을 기억하시나요?

(2013/03/25 - [세계속의 한국] - 한국으로 단 하루만 ‘순간이동’ 할 수 있다면, 꼭 가고 싶은 곳 Best 4)

 

저는 이번에 한국에 와서, 이제 돌아갈 날이 일주일 밖에 남지 않았는데 그 하루 만에도 방문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네 군데의 장소를 아직 단 한군데도 들르지 못했습니다.

내내 비가 와서 대부분 딸아이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장소 중 실내에 위치한 장소들을 함께 갔었고, 오랜만에 만나는 지인들을 만나느라 혹은 몇 년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던 사업을 점검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가고 싶었던 네 군데의 장소를 가는 것보다, 꼭 만나고 싶었던 한 사람을 더 만나거나 부모님과 소박한 한국음식을 먹으러 가거나  딸아이에게 한국에서만 할 수 있는 재미있는 장소를 가는 것이, 더 중요한 일로 여겨지며 이상하게도 그 장소들을 못 가더라도 괜찮다는 마음이 들게 된 것입니다 . 

매일 통화할 때마다 혼자 남겨졌다며 불쌍한 척을 하는 매니저 씨는

 

"아니? 여태 홍대 떡볶이도 못 먹었단 말이야???? 왜에에에???" 라고 놀랐을 만큼,

헉4바이

 

제가 그렇게 부르짖었던 것이 어쩐지 중요하지 않게 여겨지게 된 것입니다.

 

맛오징어를, 그래서 친구에게 줘 버릴 수 있었습니다.

맛있는 먹고 싶었던 것을 감격스레 먹는 것보다, 사소한 듯 보여도 세상에 더 중요한 일이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나 봅니다.

친구의 남편이 맛오징어를 먹고 마음을 풀었는지 전화 해 보아야겠습니다.

제가 어떤 마음으로 이 맛오징어를 양보했는지, 저는 말하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그분은 결코 알 수 없을 테지만

겉보기에는 별 것 아닌 맛오징어 하나가 불편한 마음을 편하게 만들 수 있다면 그걸로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출국 전에 홍대 떡볶이를 맛 볼 기회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더라도 괜찮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번에 한국에 나와서 소박한 듯 보이지만 제겐 특별한 된장찌개, 친구와 마주 앉아 마시는 커피 한잔을 비롯해 참 많은 것을 누렸으니 말이지요.

 

 

여러분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좋은하루

 

 

* 한국 하늘이 내내 회색이어서 파란 그리스 사진 하나 올려 봅니다.^^

* 한국에서 경험한 재미있었던 일들은 차차 풀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