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이 미국으로 돌아가고 딸아이는 많이 울었습니다.
이모와 이모부, 사촌 오빠들과의 즐거운 시간은 딸아이에게 정말 짧게 느껴졌던 모양입니다.
새까매진 얼굴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 때 예의 감출 수 없는 찡그린 표정으로 하소연을 합니다.
"엄마, 우리는 왜 다 함께 살 수 없는 거야?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너무 멀고, 미국의 이모네도 너무 멀고, 막내 이모네도 너무 멀어.
왜 다 이렇게 멀리 사는 거야? 왜 함께 살 수 없는 거야?
왜 가족인데 그런 거야?"
딸아이를 겨우 달랬지만 제 마음이라고 좋을 리 없습니다.
매번 헤어지고 만나는 이런 과정이 편안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각자의 생활이 있는 것이고 동생은 동생대로 이제 월요일이면 바쁘게 자신의 평상시 생활패턴대로 살아갈
것이며, 저 역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렇게 우는 딸아이도 마찬가지이겠지요. 아빠가 서운한 마음을 달래라고 사다 준, 베란다에 놓인 새 고무풀장에서
신나게 놀겠지요. 그러다 문득 생각나면 한번 씩 또, 이모와 오빠들이 보고 싶다고 울 것입니다.
딸아이에게 이런 말을 해 주고 싶습니다.
가족이 함께 사는 것, 혹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산다는 것. 그런 이상적이고 아름다와 보이는 삶이란 어떤 것인
지에 대해서요.
이제 껏, 저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크고 작은 이별을 해 왔습니다.
그건 누구나 인생을 사는 동안 필연적으로 겪게 되는 과정이겠지요.
아마 딸아이는 커 갈 수록 더 많은 만남과 더 아픈 이별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물리적으로 옆에 딱 붙어 사는 것만이 함께 사는 것일까요?
매일 만나며 얼굴을 맞대고 차 한잔 마시며 하루 있었던 일들을 수다로 풀어내는 관계만이 과연 함께 사는 관계인
걸까요?
그럼 이 블로그에서 제 글을 읽고 댓글을 주고 받는 여러분과 저는 함께 사는 관계가 절대 아닌 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소통의 부재는 반드시 오해를 만들기 때문에 물리적으로 가깝든 멀든 그것과 상관없이 서로 소통해야 할 것입
니다.
그러나 이역만리 먼 곳에 떨어져 있다 하더라도, 서로 가끔 안부를 묻고 어려운 일들을 마음으로 나누고 서로의
기쁜 일을 내 일 만큼 기뻐해 주고 아픈 일에 긴 말 없이도 "괜찮냐?"고 물어 주는 관계가, 매일 얼굴 보며 붙어
있으면서도 "글쎼 누구가 그랬다며? 어머 어쩜 그럴 수 있니?"라며 제 삼자에 대한 욕만 나누는 관계보다 훨씬
깊은 관계일 것입니다.
저는 그리스에 오면서 많은 사람과 한꺼번에 이별을 했습니다.
그들 중 이별 후 소통이 되지 않으며 오해가 쌓여 제 마음을 많이 아프게 하며 단절된 사람도 있었고, 붙어 있을 땐
잘 알지 못했던 보석같은 진가를 보여준 사람도 있었습니다.
과연 저는 지금 누구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고등학교 동창이 있습니다. 그리스에 온 후 변변한 통화도 제대로 못 하고 지냈습니다. 그런데도 한국에 가면 꼭
만나고 싶습니다. 가끔 주고 받는 메세지 속에 그 친구의 마음이 묻어납니다. 한국에 살 때도 그 친구와는 서로
바빠 잘 해야 몇 달에 한 번 보는 게 다였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무슨 일이 있는지 정도의 안부는
자주 묻고 나누는 관계였습니다.
그 친구와 나는 물리적으로 먼 곳에 있지만 함께 살아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미국의 동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고 작년 막내 동생 결혼식 전까지 오 년을 직접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메신저로 통화하고 안부를 묻고 서로의 일상에 대해 나누다 보니 멀리 있지만 항상 함께 살아가는 것 같은
마음이 듭니다.
물론 지난 일 주일 처럼, 직접 만나 대화를 하면 더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못 보고 지낸 시간의 간격 만큼 서로의 달라진 면에 대해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만났다 해서 어색하지 않은 것은 그간 서로의 삶을 바쁘게 살아가는 가운데에서도 간간히 연락
하며 서로의 삶을 공유해 왔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딸아이도 제 품을 떠나게 될 것입니다.
공부를 하러 떠날 수도 있고, 독립해 가정을 꾸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우리는 함께 사는 것이라고 말해 주고 싶습니다.
몸도 마음도 독립을 하겠지만, 어떤 통신 장비를 통해서라도 서로가 사랑하며 삶을 공유하다보면
함께 살아가는 게 맞다고요.
이 넓은 우주에 작은 지구별에서, 지도에서 손가락으로 한 뼘 떨어져 있다고 남이 되어 버리거나 떨어져 사는 것이
아니라고요.
그 한 뼘만큼의 간격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간격은 서로가 간혹 체중이 일, 이 킬로 늘어도 눈치 채지 못하고
하루 밥을 굶어도 몰라 주는 간격일 수 있지만, 어떻게든 소통하다보면 그 간격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좁힐 수 있는
것이라고요.
그래서...
공항에서 하염없이 멀어지는 동생의 뒷 모습을 바라보며
뒷 모습에 대고 아쉬움에 팔 아프게 손을 흔들면서도
저는 울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지구별에서 숨 쉬며 서로에 대해 생각하며
함께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저와 함꼐 살아가고 있는 여러분!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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