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니저 씨가 한국에 막 왔을 때, 모 대학의 한국어학당에 등록해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거기서 캐나다, 중국, 미국 등에서 온 친구들을 사귀게 되었고 그 중에도 캐나다 친구 조나단과 정말 친하게 지냈습
니다.
이 둘은 공부도 같이하고 휴일에도 만나서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기도 했었는데요.
그러던 중, 주변 아시아 국가에서 온 어학원 친구들에게 들은 풍월로 한국의 주도(酒道)에 대해 어설픈 잘못된
상식을 얻게 되버렸습니다.
이 잘못된 한국의 주도(酒道)에 대한 상식은 이랬습니다.
1. 한국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과 함께 술을 마시는 자리에서는 기싸움에 이기기 위해서 무조건 연속적으로 빨리,
많이 마셔야한다.
2. 소주를 마실 때는 모든 병에 반드시 회오리를 만들어 상대의 기선을 제압한다.
3. 2차 3차를 가더라도 큰 목소리를 유지하며 화통한 자세를 유지한다.
원본출처- google image
어디어 이런 말도 안되는 주도를 한국의 주도라고 배웠는지 어이가 없지만, 아마 주변 아시아 국가에서 온 친구들
이 한국 드라마를 통해 본, 주도가 아닌 과장된 술문화를 한국의 주도로 착각하고 가르쳐 준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하지만 술을 안 하는 제가 아무리 말로 "한국의 주도란 그런 게 아니다. 원래 술을 마시기 시작할 때, 아버지나 믿을
수 있는 어른에게 술을 배워야 주도를 제대로 배울 수 있다고 하더라." 라고 얘기해 봤자, 그들 귀에는 소귀에 경읽
기였던 것입니다.
그래도 설마 뭔 일을 내겠나 싶어서 그냥 그러면 안 된다라고 넌지시 얘기만 하고 말았는데요.
드디어 그날 일이 터지고야 말았습니다.
사건의 날, 그날은 조나단이 헤어졌다 다시 만난 여자친구를 우리에게 소개한다고 했는데요.
우리는 그녀를 보기 위해 홍대의 모 식당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가보니, 이 식당은 낮에는 식당이고 밤에는 주점으로 분위기를 바꾸는 곳이었던 것입니다.
매니저 씨와 조나단 이 두 남자는 신이 나서 얼른 자리를 잡고 앉았고, 술을 안 하는 저는 매콤한 해물떡볶이나
많이 먹으며 이 자리를 모면해야겠다는 생각에 주춤거리며 일행에 합류했습니다.
그런데 간단하게 음료와 안주형 식사를 시켜 먹으려던 찰라, 이 조나단의 여자친구의 대학 선배라는 사람과 정말
어이없게 우연히 그곳에서 마주치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어랏? 이 선배라는 사람은 핸섬하고 훤칠한 느낌이 강해, 평소 키는 2m 가까이에 마른 체형이지만 머리에
돈을 숨겨둬도 찾기 어려울 만큼 금발 빠글 곱슬머리를 하고 있는 조나단을 비주얼로 압박하기에 충분한 한국인
남자였습니다.
저는 그때, '불길하다..오늘...' 이런 마음이 들기 시작했는데요.
이 남자, 갑자기 합석을 하더니 해서는 안 되는 멘트를 뻥 날려 주셨습니다.
"사실 제가 이 후배를 참 좋아했는데, 하하..제가 부족한지 거들떠도 안 보더니,
이렇게 조나단과 사귀게 되었군요."
'뭐래니...얘가 지금.. 아주 염장질을 하려고 왔나? 왜 합석을 하고 있지?
그냥 가던 길 가시지...'
그리고 저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옆에 앉은 매니저 씨의 옆 얼굴을 쳐다보았습니다.
역시...
친구 일이라면 물불 안 가리는 다혈질의 그의 눈은 '너 오늘 잘 걸렸다. 내가 오늘 그리스인이 얼마나 무서운지
보여주지.' 를 말하며 이글이글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매니저 씨와 조나단은 그들이 잘못 배운 한국의 주도대로 그 남자를 기선 제압하려 하기 시작했는데요.
둘다 소주를 세 병씩 시키더니, 병을 들고 마치 한치의 실수도 없는 동춘 서커스단처럼 동작을 똑같이 맞추어 바닥
을 탁탁 치며 동시에 회오리를 만들었습니다.
(아...창피해..)
그러더니 안주도 먹지 않고, 소주 세 병을 연거푸 들이마셨습니다.
제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었지요.
그걸 본 동석했던 한국인 남자도 "천천히 마셔요."라고 말했지만, 그들은 오직 기선 제압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속도
를 줄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한 시간 뒤, 안주 없이 한 사람 당 마신 소주는 일곱 병이 되었고...
그 한국인 남자는 약속이 있다며 자리를 떴습니다.
저는 정말 말리다 말리다 포기한 상태였는데, 그 한국인 남자가 떠나자마자 그들은 마치 그들이 한국의 주도대로
잘 해서 그가 떠난 것이라고 착각들을 하고 목소리를 더 높여 부어라 마셔라 하기 시작했습니다.
(니들 오늘 왜 이러니...)
밖에는 눈이 오고 있었는데, 그리스에서 많이 마시더라도 천천히 즐기며 마시는 술문화를 주로 경험했던 매니저
씨는 이미 인사불성이 되었고 조나단도 별로 다르지 않아서 도저히 제대로 걷지도 못하는 지경이었지요.
저는 조나단의 여자친구에게 부탁을 하여 둘을 잠깐 지켜봐 달라고 맡겨 두고, 급히 주차장에서 차를 꺼내 아래에
대기 시켰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하면서 "우리가 제대로 배웠구나. 한국의 주도는 역시 멋져~~" 라고 말도 안
되는 노래를 부르는게 아주 가관이었지만 일단 차에 태우고 집이 가까운 조나단, 그의 여친을 내려주고 매니저 씨
를 태워다 주러 가게 되었습니다.
내가 니들 때문에 울고 싶다...
설상가상으로 갑자기 밤 기온이 영하 15도로 내려가면서 가스차인 제 차가 얼어 붙어 시동이 꺼지더니 다시 걸리지
않는 상태가 되어 버렸습니다.
이미 인사불성이 되어 아무 도움도 안 되는 매니저 씨와 길 한 가운데 서버린 차.
겨우 보험회사를 통해 도움을 요청해 인근 카센터에 차를 맡기고 택시를 타고 매니저 씨를 데려다 주고 집에 돌아
오는데, 도저히 이 인간들을 그대로 놔두었다간, 한국에서 이상하고 어설픈 것만 배워 가겠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다음날 한 마디 하려고 호출을 했을 때 이 둘은 둘다 술병이 난 상태였고, 제 부름에 응할 수 없는 상태였지요.
(으이구...못 살아.)
어떻든 몇 주 후, 조나단과 매니저 씨를 그들이 사랑하는 코스트코 앞에서 만나서 커다란 코스트코 피자와 핫도그
등을 사 주면서 차분히 '한국의 주도는 그런 것이 아니다, 물론 그렇게 기싸움 하며 마시는 사람들도 있고 재미삼아
술마시기 내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게 전부 한국의 문화라고 할 수는 없고, 한국의 전통적인 주도도 그렇지
않다'고 조곤조곤 얘기해 주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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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둘은 그 동안은 제 말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았었는데, 술병으로 며칠을 토하고 일도 어학원도 못 갈 만큼 고생을
한 후라서인지,
"그래. 올리브나무. 네 말을 알아듣겠어. 다시는 그렇게 하지 않을게. "라고 순순히 대답하며
사건은 마무리 되었습니다.
그 후로 매니저 씨도, 조나단도 다시는 그렇게 폭음을 한국의 주도라 우기며 마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물론 매니저 씨는 굳이 술이 아닌 물을 한국 어른에게 받아 마실 때에도 두 손을 내밀어 받는 것을 잘 배워서
행동하고 있습니다.
조나단은 결국 당시 사건의 발단이 되었던 그녀와 헤어져 지금은 다른 좋은 여인과 결혼해 잘 살고 있습니다.
한류가 세계로 뻗어나가 한국인의 위상이 점차 높아진 것이 좋긴 하지만, 일부 막장스토리에 자극적 소재를 다룬
드라마들이 해외로 수출되면서 마치 그게 한국의 전부인 양 착각하는 시선이 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한국을 좋아하기 때문에 관심을 가졌다가 도리어 한국의 문화에 대해 오해를 하며 배우게 되는 외국인들에게,
우리는 한국인으로서, 어설프게 알려진 한국의 문화에 대해 바로 잡아 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현대사회인들의 늘어가는 스트레스와 지나치게 술을 권하는 회식 문화 때문에, 한국 전통 주도와 점점 더
거리가 먼 한국의 술문화와 밤문화가 자리잡아 가고 있다는 것도, 이런 한국의 주도에 대해 오해를 하게 만든 부분
이라고 여겨지는데요. 다음날 업무에 피해를 줄 정도의 지나친 술문화와 밤문화는 지양하는 것도, 날로 유명해져
가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더 긍정적으로 만들어 Korea의 이름의 가치(Name Value)를 고급화 하는데 일조할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2013/02/19 - [신기한 그리스 문화] - 한국과는 많이 다른 그리스의 사업 접대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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