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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인종차별의 끝판왕인가. 자격증 획득에서 두 번째 미끄러지다.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3. 2. 7.

인종차별의 끝판왕인가.

자격증 획득에서 두 번째 미끄러지다.

 

 

 

 

 

오늘 원래 쓰기로 했던 유럽 운전면허시험 필기시험에 대한 글을 거의 다 써서 편집만을 남겨 놓고

비공개로 저장을 하고

오늘 아침 하기로 되어 있었던 일을 하고 집에 돌아와서 편집해서 발행하면 되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있었던 사건이 워낙 대박이라서

도저히 다른 글 편집할 의욕이 없어

이 글을 먼저 남깁니다.

 

좋은 얘기도 아니고

좋은 정보도 아니지만

그냥 저의 넋두리이니 들어주세요. (듣기 싫으신 분은 지금 글 읽기를 접어 주세요)

 

커피한잔해

저는 한국에서 하던 일 관련해서 자격증을 몇 개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스에 와서, 그리스에서도 비슷한 자격증을 획득할 수 있는 시험이 있다는 걸 알고,

일단 나중을 위해서 자격증을 좀 획득해 두기로 하고

작년 여름 필기 시험을 치르고

가을에 실기 시험을 치뤘었습니다.

필기 실기를 다 통과하고

이 자격증 마지막 단계인 면접 비슷한 것이 있었는데,

이 과정에서 탈락했었습니다.

대개 이 면접은 형식적인 것이여서

필기 실기 시험이 거의 99% 자격증 획득 여부를 결정하고 1% 정도의 영향력이 면접에 있다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리고 면접관이 제게 물었던 질문은 단 두가지 였습니다.

"여긴 뭐하러 왔어요?"

- 왜 여기서 사냐는 질문인 것이지요. 제가 제출한 서류에 그리스인과 결혼했다라고 그리스어로 표기되어 있는데, 까막눈이었던 걸까요.

또 다른 질문은

"여기서 뭐하고 있는거에요?"

- 이 질문은 무슨 직업을 갖고 있냐는 뜻이 아니라, 동양인인 네가 여기서 그리스인의 고용창출을 훼방놓는구나, 라는 비아냥임을 면접관의 말투와 경험으로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두가지 질문에 대답했을 뿐인데,

저는 자격증 획득 부적격이라는 어이없는 결과를 통보 받았습니다.

필기 실기 모두 우수한 성적이었는데 말이지요.

지난 가을의 일이었습니다.

 

오늘 저는 다시 실기를 보았고, 다시 면접을 봤는데

지난 번과 다른 면접관은 저의 신분증을 쳐다보면서 물었습니다.

"여긴 뭐하러 왔어요?"

- 제발 글 좀 읽으시오 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그리스인과 결혼했다 라고 다시 말했습니다.

이 단 한번의 질문과 대답으로

저는 다시 자격증 획득에 실패했습니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이 자격증을 획득하려고 다녔던 학원 대표에게 물었더니

네가 이번에 시험 본 학생 중 성적이 최고 였다라고 하더군요.

그럼 왜 떨어진거냐고? 묻자

떨어진 게 아니라 작정하고 떨어뜨린거다, 라고 씁쓸하게 말하더라구요.

첫 번째 이유는 그리스 경제가 안 좋으니 정부 측에서 한 번에 200유로에 달하는 시험 응시료를 더 걷으려고

일정 인원을 일부러 면접에서 떨어뜨리기로 해서 그런 것이고,

두 번째 이유는 제가 그리스인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시험이 연장되고 면접을 오래 기다려서

하루 종일 굶고 오후 6시가 넘어 첫 끼를 허겁지겁 먹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헛 웃음만 납니다.

 

첫 번째 시험 봤을 땐, 억울에서 많이 울었었는데

이번엔 눈물도 안 나고, 그냥 그만하자는 마음만 드네요.

이 깟 자격증 없다고 무슨 일 나는 것도 아닌데

꼭 필요하면 한국의 자격증을 국제 자격증으로 갖고 오는 방법도 있어서 굳이 이런 생 고생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래도 그리스와 친해져 보겠다고 애 쓴 제 자신이 너무 바보 같이 여겨졌고.

사서 인종차별을 받는구나 싶었습니다.

 

나중에 소식을 들은 남편이 내일 담당자를 한 번 만나보겠다고 했지만,

한 번 결정된 일이라며 절대 굽히는 태도를 취하지 않을 것임을 압니다.

다음 시험 때는 남편이 함께 가서 면접보기 전에 그리스인 얼굴도장을 찍어줄테니 한 번만 더 보라고 독려하지만

무슨 자격증시험보는데, 본인이 그리스인이 아니어서

남편이 함께 면접보는데 찾아가서 얼굴도장을 찍어야 하는 그런 말도 안되는 경우가 다 있단 말입니까.

필기시험 봤던 게 아까와서 한 번 더 봐야하나 싶지만

시험봐서 자격증을 획득하는 부분에서 자국인이 아니어서 차별을 받으니

면전에서 욕을 한 것보다

더 기분이 나쁘고 내가 한 노력이 다 헛짓이었던 것 같아

기운이 쭉 빠집니다.

 

정말 인종차별의 끝판왕인가 싶습니다.

이 무슨 한국전쟁 이후 이민 간 한국인들이나 겪었을 법한 일들이

2013년에도 일어나는구나 싶습니다.

 

제 남편도 시댁가족들도 다 그리스인이긴 하지만

정말 그리스인들 참 잘난 것 같습니다. 

 

 

넉두리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