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이상했습니다.
왜 시어머님께서는 가족 모임으로 다같이 외식을 할 때마다 늘 음식이 그렇게 마음에 안 드시는지요.
종류를 막론하고 아무리 맛있다는 식당에 가도 늘 뭔가 혼자 꼬투리를 잡으며 맛이 없다고 투덜거리셨는데, 또 음식은 남김없이 다 드시는 것을 보면 정말 맛이 없는 것 같지는 않아서 도무지 어머님의 심리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이왕 드시는 거 기분 좋게 드시면 될 것을 꼭 그렇게 투덜거릴 필요가 있을까 싶었고, 저희 부부가 무슨 날이라서 식사를 대접할 때에도 그렇게 꼭 음식 트집을 잡으셔서 속상하기까지 했습니다.
몇 주 전 동수 씨 생일 때 이틀 연속 가족끼리 외식을 했었습니다.
역시나 이 때도 맛있는 식당에서 이렇게 불평을 하셨던 어머님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심하게 언짢아진 제 기분의 정체를 알기 위해 그후 저는 며칠을 고민했었습니다.
'과연 어머님의 늘 하시는 불평 때문에 기분이 이렇게나 언짢은 걸까?'
그런 것 같진 않았습니다. 어머님이 그러시는 것을 하루 이틀 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번엔 유난히 기분이 많이 언짢고 그런 감정이 며칠을 가는지 저 자신의 감정에 대해 이상한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제가 투덜거리는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에 더 이런 기분이 드는 건지, 어머님께서 여러 사람이 모인 가족 식사 자리에서 부정적인 이야기들로 매번 음식을 먹기도 전에 기분이 상하게 만들어서 그런 건지, 이런 저런 가능성들을 생각해봐도 그렇다고 하기엔 제 기분이 너무 많이 오래 좋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게 며칠을 이 감정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고민하다가, 저는 결국 해답을 찾게 되었습니다.
지난 친구 장례식에 어머님과 제가 단 둘이 장례식에 가게 되었을 때, 어머님께서는 저를 많이 의지하시면서 제 팔을 놓지 못 하시고 몇 시간 동안이나 저를 꼭 붙들고 계셨습니다.
중간에 한참을 걸어서 묘지로 이동해야 했을 때도 어머님은 갑자기 화장실에 가시고 싶으신데 낯선 지역의 식당이나 카페에 무턱대고 화장실을 사용해도 되겠냐고 묻는 것이 몹시 쑥스러우시다고 해서 제가 대신 물어봐 드리기까지 했습니다.
그날은 참 그렇게 다정한 시어머님이 다 있나 싶게 반 나절을 제가 뭘 하더라도 다 좋다고 하시며 그렇게 저를 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저희 시어머님은 원래 가족 사이에서는 큰 소리도 잘 내시고 감정 표현이나 생각도 여과 없이 말 하곤 하시지만, 낯선 이들 사이에서는 예의를 지키고 싶어하시고 수줍어하시며 큰 소리로 나서는 것도 싫어하시고 혼자 뭘 하는 것도 싫어하시는 그런 성격이십니다. 그래서 낯선 지역에서 치러졌던 장례식에서 지인들도 참석하긴 했지만 가족 중엔 저 밖에 함께 없었으니 제게 의지를 하시며 쑥스러워하셨던 것입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시어머님은 저와 둘이 쇼핑을 할 때 파이나 커피를 사서 먹게 될 때엔 전혀 음식이나 식당에 대해 투덜거리신 적이 없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런 시어머님이 가족들끼리 외식을 할 때마다 돌변하셨고, 저는 그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 하다가 이번에 장례식 얼마 후에 있었던 동수 씨 생일 때 확실하게 어머님의 태도의 변화를 심하게 느끼면서 도대체 왜 그러시는지 언짢았던 거였습니다.
어머님을 관찰한 결과, 그 원인은 당신께서 시아버님과 자식들과 함께 있을 때에는 당신 스스로를 '힘이 있는 사람' 라고 느끼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의도했다기 보다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행동하신다고 여겨지는데, 원래 사회생활을 하시면서도 밖에서는 좀 소극적인 면이 있는 어머님은 안 그래도 서비스업인 호텔에 근무하시면서 20년 넘게 진상 상사나 고객들에게도 더더욱 큰 소리 낼 수가 없으셨을 테니, 가족과 함께 있을 때만큼은, 특히 가족과 외식을 할 때에는 밖에서도 당신께서 기득권자 같다는 느낌을 받으시는 듯 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의 가족들을 당신의 기득권으로 여기시는 것이지요. 그러니 평소에 속으로 생각했더라도 밖에서는 입 밖으로 하지 못 하는 불평들도 시아버님을 비롯하여 가족과 함께 있을 때에는 내뱉으시는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시아버님께서는 시어머님의 그런 가족 외식을 할 때의 음식 불평에 대해 크게 뭐라고 대꾸 하시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어쩌면 아버님도 어머님의 심리를 (진짜 음식이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음식이 맛없다고 불평해보고 싶은) 알고 계시기 때문이 아닌가 싶었습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게 되니, 저는 더 이상 어머님의 그런 행동들이 언짢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습니다.
시아버님이나 자식들이 어머님의 기득권이 될 수는 있겠지만, 기득권을 누리는 것 자체가 그 사람의 정체성은 아니니까요.
즉 어머님이 원래 늘 불평 가득한 사람은 아니란 것을 저도 이미 알고 있고, 그런 특수한 상황에서 보여지는 불평 섞인 말투의 원인도 알았으니, 저 역시 어머님께서 그런 순간이라도 기득권을 누리시게 받아 줄 마음이 여유 정도는 가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가끔 부모나 배우자를 통해 자신이 일구지도 않고 얻어진 큰 지위나 부유함 등의 기득권이 자신의 정체성인 양 착각하고 행사하는 사람들도 물론 있지만(그런 사람은 그것을 어쩌다 잃게 되었을 때 혼돈 속에 헤매며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안타까운 처지에 놓이게 되지요.), 저희 시어머님은 그런 큰 것도 아닌 그저 가족이 당신의 기득권이라 여기시는 것인데 뭐 어떤가 싶습니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한국에 계시는 제 부모님 생각이 나면서, 제가 그런 '함께 있기만 해도 든든한' 힘이 되어드리지 못 하는 것이 속상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결론적으로...이 여름, 그저 멀리 계신 부모님 걱정이나 안 끼치게 할 일 잘 해가며 건강하게 살아가는 게 효도겠구나 그렇게 스스로를 위로해봅니다.
그리고 시어머님의 심리와 제 심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던 며칠 동안, 원인도 모르고 언짢던 제 마음 그대로를 하마터면 "어머님은 그렇게 식당마다 다 마음에 안 드세요?" 이러며 어머님께 드러낼 뻔 했는데, 뭔가 찜찜한 마음에 그러지 않고 잘 넘어간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고, 결국 어머님을 이해하게 되어 더 이상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 더운 날씨 건강한 7월 되세요!
(남반구에 계신 분들은 따뜻한 겨울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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