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동수 매니저 씨는 평소 표현을 참 직선적으로 하는 편입니다.
(누가 이 둘이 같은 인물이냐고 물어 보셔서 둘 다 썼는데, 쓰고 보니 동수가 이름이고 매니저가 성 같네요^^)
물론 사회생활을 해야 하니 별로 친하지 않은 사람이나 잘 보여야 되는 사람 앞에서는 절대로 그런 식으로 말 하지 않지만, 친한 사이인 가족이나 친구들에게는 에둘러 표현하는 것은 좀처럼 못 합니다.
"너 예쁘다!" "네가 한 음식 맛있다!" "저 사람 멋지다!" 등 상대의 좋은 점을 표현할 때는 이런 직선적인 표현이 감동을 주지만, 반대로 별로 상대가 좋아하지 않은 콤플렉스나 단점에 대해 말할 때도 직선적이어서 상대에게 상처를 입히기도 쉽습니다.
어떤 땐 자기 가족이라고 어머님이나 시누에게도 너무 직설화법을 사용해서, 도리어 제가 "아무리 어머님이지만 그렇게 말을 하면 어떻게 해!!" "아무리 여동생이라고 그런 식으로 말 하면 안 되잖아!!" 라며 말려야 할 때도 많습니다. 그것도 동수 씨가 바로 말을 뱉은 그 상황에서 제가 말리면 하지 말라는 것을 더 하는 청개구리 같이 굴기 때문에, 저는 나중에 뒤에서 "그렇게 말 하면 얼마나 상처 받겠어. 그러지 말아 줘. 응?" 이라며 조용히 타이르곤 합니다.
물론 저에게도 이런 식으로 말 하곤 해서 마음에 상처를 받을 때가 있는데 그나마 그래도 저에겐 다른 가족들에게보다는 덜 그러는 편이라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싶습니다.
요즘은 그래도 (제가 수년간 계속 그러지 말라고 어르고 달래서인지) 저에게나 다른 가족들에게도 많이 부드럽게 표현하려고 나름 노력하는 모습도 보여서, 친구들로부터 "너 개과천선 했구나!" 라는 소리도 가끔 듣곤 하는 동수 씨입니다.
이런 성격답게, 동수 씨는 제 별명도 그 때 그 때 저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모습으로 지어 부르곤 해서 당황스러울 때가 많습니다.
오래 전 동수 씨와 제가 친구로 지내던 어느 날, 물건을 사서 나오는 저를 보고 동수 씨가 했던 말이 있습니다.
"너는 왜 다른 여자들처럼 무거운 물건을 들어달란 말을 통 안 하니? 너를 알고 지낸 지가 좀 된 것 같은데 단 한번도 네가 그런 부탁을 하는 것을 못 봤어. 그런 건 부탁해도 되는 거야. 이리 줘봐. 내가 들어 줄게." 라며 제 손에 들려 있던 묵직한 봉지를 채 간 적이 있던 만큼, 동수 씨는 이 여자가 원래 남에게 부탁을 잘 안 하는 사람이니 그렇구나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저를 겪어 보니, 실상 제가 여느 그리스 여자 못지 않게(그리스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힘이 좋은 사람이 많습니다.) 힘이 몹시 세다는 것을 어느 순간 깨닫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동수 씨가 제게 붙여 준 별명은 스바제네게어(Σβαρτσενέγκερ 아놀드 슈워제네거의 그리스식 이름)나 스탈로네(Σταλόνε실버스타 스탤론의 그리스식 이름) 였습니다.ㅠㅠ
"내 말 알아 듣겠지? 스바제네게어!"
"스탈로네! 어디 가는 길이야?"
라고 주로 놀리듯 사용해서 한번 확 노려봐 주지만, 제 힘 세고 튼튼한 팔뚝을 보면 실은 저도 부정할 수 없는 별명이라는 점이 더 기분이 나쁩니다.
그런 제가 요 며칠 동수 씨에게 새로운 별명으로 불리고 있습니다.
요즘 이곳은 그리스의 여름답게 뜨거운 햇볕 덕에 열대야도 대단해서, 바람이 좀 부는 날은 창문을 열어 두고 잠을 자곤 하지만 바람이 없는 날은 에어컨을 꼭 켜고 잠을 자야 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있는데요.
저는 잘 때 긴 머리가 목과 얼굴에 감기는 게 더 더워서, 올린 머리(일명 똥 머리)를 하고 잠을 자곤 합니다.
이런 머릴 똥머리라고 하지요?^^
이렇게 얼굴이 갸름하고 예쁘면 이 머리스타일이 참 잘어울리는데,
제가 이 머릴 하면 동그란 얼굴이 더 동그랗게 보여서 오히려 낮엔 자주 하진 않는답니다^^
그리고 한국에 비해 그리스 여성들은 이 머리 스타일을 크게 선호하지는 않아서
여름이라도 이 머리스타일을 한 여성을 길에서 많이 찾아보긴 어렵습니다.
한류팬 그리스인 제자들이 한국 여성들은 그리스인 여성들보다 이 머리스타일을 더 자주 하는 것이 특징같다고 말을 할 정도니까요.
더위에 이 머리를 하고 매일 잠을 청하는 저를 동수 씨가 가만히 지켜보더니, 하루는 침착하게 이런 말을 하는 거였습니다.
"올리브나무. 네가 자는 모습을 내가 며칠 동안 지켜봤는데, 동그란 얼굴에 네 머리스타일을 보고 있으니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는데 그게 뭐였더라? 며칠이나 고민했거든.
근데 드디어 뭔지 정확하게 발견했다고!!
바로 미스터 윌슨!!!"
"미스터 윌슨?? 그게 뭐야?"
"음하하하하!!! 기억 안 나? 미스터 윌슨? 너랑 아주 똑같은데!
(목소리 톤을 바꾸며) 아임 쏘리~~~미스터 위일~~~~슨!"
저는 동수 씨가 미스터 위일~~~슨! 이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보며 순간 그게 누군지 깨달았습니다.
영화 캐스트어웨이Castaway의 톰 행크스가 비행기 사고로 무인도에서 몇 년을 혼자 생활하게 되면서 비행기에 함께 실려 있던 택배물품이었던 배구공에 얼굴을 그려 넣고 그것을 친구로 삼아 이야기를 나누곤 했는데, 그 배구공 이름이 미스터 윌슨이었지요!
영화 캐스트어웨이의 한 장면
그리고 톰 행크스가 뗏목을 만들어 섬을 탈출 할 때 풍랑에 미스터 윌슨이 떠내려가자, 자신의 유일했던 친구가 떠내려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지요.
"아임 쏘리! 위일~~~~슨!!!!!"
I'm sorry! Wilson!
똥머리를 하고 잠을 자는 제 똥그란 얼굴이 미스터 윌슨과 싱크로율 100%로 똑같다고 생각했던 동수 씨.
"미스터 윌슨! 오늘 이 일은 다 처리했나?" "미스터 윌슨! 이 일부터 좀 처리해 주게나!" 라고 시도 때도 없이 군대 장군이 부하직원에게 임무를 내리듯이 저를 불러대고 있습니다.
(방금도 저녁을 먹더니 "음식 아주 맛있었어! 미스터 윌슨!" 이라고 말했답니다.- -;;)
어차피 제가 아무리 싫다고 얘기해도 동수 씨 성격상 자신이 지겨워지기 전엔 절대 그렇게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을 거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그냥 한번씩 노려보고 그렇게 부르게 내버려 두고 있는데요.
쉽게 실증 내는 성격이니 또 다른 별명이 생기면 그렇게 부르길 멈추겠지만, 제가 정말 기분 나쁜 것은 다른 별명들처럼 그 별명을 제 스스로가 부인할 수 없다는 사실이랍니다.
고등학교 때 교회 남자애로부터 얼굴이 똥그랗다고 이미 '볼링공 자매'라고 불려본 적 있는 저이니까요.
하지만! 오늘도 저는 제 생김새의 안습인 현실을 딛고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니 제 별명에 맘껏 웃으셔도 된답니다~
하하 즐거운 하루 되세요!
관련글
2014/05/15 - 그리스 사위에게 큰 오해 받은 한국 장모님 친구
2014/05/08 - 딸을 이런 남자에게만 허락한다는 그리스인 아빠 동수 씨
2014/05/02 - 내가 바에서 그리스 친구들에게 끌려 나온 이유
2014/04/22 - 고단한 버스기사를 위한 그리스 가족들의 따뜻한 명절 전통
2014/04/04 - 그리스인 남편도 자녀에게 이런 걸 바라는구나!
2014/02/18 - 그리스인 남편 동수 씨의 웃기는 농구^^
2014/03/12 - 한국 추억 때문에 헐값된 그리스인 남편의 사랑!
2013/12/27 - 가끔 한국이름 ‘동수’로 불리고픈 그리스인 남편
2014/04/02 - 날 20분 행복하게 만든 그리스인 남편의 거짓말
2013/12/12 - 내가 ‘권투 하는 곰’이라 불린 이유
2014/02/13 - 푸핫, 얼굴 시리지 않게 V라인으로 머리 묶는 법!
* 류현 님께서 제 블로그와 썸을 타시는 것 같다는 댓글을 재미있게 남겨주셨습니다^^ 혹시 다른 방문객님들 중에도 그런 분이 계시다면 아무 때나 편하게 댓글 남겨주세요~ 제 블로그, 밀당 모르는 쉬운 블로그에요^^
'소통과 독백'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리스에서 몇 년을 고민했던 문제가 이렇게 결론이 나다. (68) | 2014.08.04 |
---|---|
치열한 그리스의 여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사이에서 (72) | 2014.07.30 |
지루한 그리스 마리아나에게 아기 토끼보다 더 기쁜 선물 (32) | 2014.07.22 |
여러분, 어떻게들 지내시나요? (75) | 2014.07.20 |
그리스 마리아나, 내 딸이지만 참 만화 캐릭터 같다. (32) | 2014.07.12 |
요즘 그리스 시어머니를 보며 기분이 좋지 않았던 진짜 이유 (66) | 2014.07.03 |
그리스 가족 지인들의 엉뚱한 말말말 (27) | 2014.06.23 |
내 그리스인 친구와 나 사이에 남은 시간 (28) | 2014.06.16 |
오합지졸 마리아나 합창단의 발표회 (46) | 2014.06.13 |
여러분의 이웃 그리스 올리브나무 씨 단신(短信)들 (60) | 2014.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