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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과 독백

한국과 그리스 어디서 넘어지면 더 창피할까요?

by 꿋꿋한올리브나무 2014. 5. 30.

 

 

 

물컵을 잘 깨서 곤란함을 겪었다는 글 <2013/11/18 - 내게 트라우마를 준 그리스의 물컵 사용 문화> 에서 제가 이제껏 잘 넘어지는 인생을 살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잠깐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물론 은유적인 의미로 봐도 살면서 넘어져서 많이 실수하고 고비를 넘기며 살아왔지만, 제가 오늘 하고 싶은 이야기는 물리적으로 꽝 하고 진짜로 넘어지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참 잘 넘어졌습니다. 무릎이며 팔이며 남아나질 않았었지요. 원래 시끄러운 성격은 아니라 조용히 있다가 갑자기 다치곤 해서 부모님을 참 많이 놀라게 해드렸었습니다.

롤러 스케이트나 자전거를 심하게 타다가 굴러서 팔 다리 인대가 늘어난 것은 아주 자주 있었던 일이라 나중엔 병원에도 가지 않고 응급처치를 한 후 교련시간에 배운 대로 스스로 압박 붕대를 감고 자가치료를 하기도 했었습니다.

성인이 된 이후로 도대체 난 왜 그럴까 생각해보고 체형이나 발 모양도 연구해보았는데, 결론적으로 제가 넘어지는 순간을 떠올리면 그 안에 답이 있더라고요.

돌아보면, 대게 제 몸에서 낼 수 있는 필요 이상의 에너지를 소모하고 난 후, 팔 다리에 힘이 빠졌는데도 계속 움직이다가 넘어지곤 했던 것입니다.

예전에 지인 중에 사상체질을 연구하던 한의사가 있었는데, 그 친구는 제가 '태양인'이라서 그렇다고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시지요? 사상의학은 학자들 마다 의견이 분분해서 개인의 체질에 대한 진단도 의사마다 다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도 제가 이 체질이라고 확신할 순 없습니다.^^)

 

마리아나를 낳고 놀라운 모성본능으로 한 동안 거의 넘어진 적이 없이 살았는데, 그리스에 이사 왔던 초기에 길을 잘 몰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거나 많이 걸어 다녀야 했던 시기가 있었고, 덕분에 당시엔 체중이 갑자기 줄었던 기쁜 일도 있었지만 이사 후라 살 것이 많아 심하게 돌아다니다가 팔 다리 기운이 다 빠져서 집 앞에서 발을 헛디뎌서 꽈당 넘어지는 일도 여러 번 있어서 그럴 때마다 동네 사람들이 볼까 봐 정신 없이 집으로 들어오곤 했었는데요.

하지만 최근 1~2년 사이엔 그런 일이 좀 드물다 싶어서, 이제 이런 일은 없을 것인가 방심하고 살았었습니다.

 

지난 주말에 몸이 아팠던 것을 거울삼아, 저는 요 며칠 운동을 자주 하며 식사량을 반으로 줄이고 비타민 섭취량도 늘리며 나름 가뿐한 몸 상태를 유지하며 좋구나 생각하고 있었는데요.

어제였습니다.

아침에 마리아나를 학교에 데려다 주려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교문 안으로 걸어 들어 가는데, 어제 따라 마리아나의 가방은 '요즘 동수 씨가 "슈워제네거!" 라고 부를 만큼' 힘 센 제가 들어주는데도 정말 무거웠고, 아침부터 햇볕은 따가웠으며, 저녁 때 마리아나의 학교 합창단이 발표회가 있을 예정이어서 저는 치마를 입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학교 건물 입구로 들어가려고 운동장에서 낮은 보도블록으로 오른 발을 내딛는 순간!

파다다닥!

거의 이런 소리와 함께 저는 그 보도블록 위로 완전 일자로 뻗어버렸습니다.

엉엉

너무 건조해진 날씨 탓에 운동장 모래가 미끄러울 수 있다는 사실을 잊고 습관적을 발을 내디뎠던 것입니다.

다행히 제 왼손을 잡고 있던 마리아나는 함께 넘어지진 않았는데요.

 

 

 

너무 심하게 넘어져서 순간 정신을 못 차리다가 겨우 몸을 일으키려는데, 그제서야 아주 저도 제 주변도 난리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제 머리에 얹혀져 있던 선글라스는 넘어질 때 충격으로 저만치 날아가 버렸는데, 글쎄 얼마나 세게 패대기가 쳐졌는지 알이 한쪽이 빠져 버린 채 놓여 있었고요.

그 무거운 책가방은 제 오른 편으로 뒹굴고 있었으며, 다른 손에 들고 있던 제 가방은 다른 쪽에 완전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제 손목이 시큰거렸고 오른쪽 무릎은...손바닥 만한 크기로 무릎 전체가 다 쓸리며 까져 있었습니다...

 

 

워낙 예전엔 자주 겪던 일이라 '오랜만에 느껴보는 이 통증!' 이라면서도 무척 쓰라렸는데,

그것보다도...그것보다도!!!

더 큰 문제는 크헉...너무 창피했다는 것입니다...

운동장에는 아이들을 데려다 주는 다른 엄마, 아빠들이 무척 많았고, 마리아나 반 친구 엄마 중 평소 크게 친하지 않은 엄마"괜찮아? 올리브나무?" 라며 뛰어왔고, 저 멀리 교문을 지키던 경비 아주머님은 평소 무섭고 권위 있는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빛의 속도로 날아와 "괜찮으세요? 걸을 수 있겠어요?" 라고 물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어찌나 상황이 어이가 없는지, 어제는 이 얘길 동생과 하면서 박장대소를 했답니다.ㅎㅎㅎ)

 

창피해. 창피해. 창피해!!!!!!!!

OTL

 

저는 정말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을 만큼 창피해서, 일어서려니 무릎이 진짜 아팠지만 꾸욱 참으며 "괜찮아요." 라며 얼른 건물 안으로 들어가 마리아나를 교실로 올려 보냈습니다.

그리고 또 괜찮은 척 애써 담담하게 저를 바라보는 걱정스런 시선들을 물리치고 교문을 빠져 나와 얼른 차에 올라 탔습니다...

차에 타고 나서야 무릎을 자세히 살펴보니 아주 난리가 아니더군요.

일단 출근을 하지 않고 집으로 다시 돌아가서 응급처치를 먼저 했는데, 정말 아오 소리가 나게 아프더라고요.

왜 뜬금없이 크게 넘어졌을까 생각해보니, 그 전날 밤부터 먹은 게 별로 없는데 최근 운동을 많이 해서 다리에 힘이 빠졌구나 싶더라고요.

역시 밥심은 무시할 수 없나봅니다.^^

ㅋㅋㅋ

 

문득 제 한국에 살 때 창피하게 넘어졌던 순간도 떠올랐습니다.

고등학교 때였는데 학교가 가까워 걸어서 등교를 하다가 하필 사람이 정말 많은 버스 정류장에서 대자로 넘어진 것입니다.

슬퍼2

근데 문제는 그 무리 속에서 초등학교 동창 남자애가 거기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어서 한참 예민했던 저의 십대 감성을 더욱 창피하게 자극했다는 사실이었지요.^^

얼마나 극적으로 대차게 넘어졌는지 여기저기 킥킥거리는 소리도 들렸고...어찌나 창피했는지 말로 다 할 수가 없을 정도였는데요.

(뭐 그 외에도 메이크업을 취미로 배운다고 그 무거운 메이크업 박스를 들고 가다 계단에서 굴렀던 적도 있었지만 그 땐 사람이 없어서 창피하진 않았거든요.ㅎㅎㅎㅎ)

 

 

어떻든 저는 오늘 뙤약볕을 걷다가 에어컨 시원한 관공서에 들어가 한숨을 돌리자, 아픈 무릎을 부여 잡으며 문득 엉뚱하게도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한국그리스 중, 어디서 넘어졌을 때 더 창피했었나? 차이가 있을까?'

같은 국민인 한국인들 앞에서 넘어졌을 때였을까?

외국인이지만 인종차별 좀 하는 그리스인들 앞에서였을까?

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여러분께도 재미삼아 여쭤봅니다.

여러분이시라면 한국에서 혹은 외국에서 저처럼 본의 아니게 몸 개그를 하게 된다면 어디서 더 창피하실 것 같나요?

저도 저의 과거에 한국과 그리스에서 넘어졌던 모든 사건들을 다 기억을 더듬어 종합해 본 뒤 결론이 나면 그 때 다시 말씀 드릴게요.^^

 

여러분, 부디 건강하고 안전한 하루 되세요!!!

좋은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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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며칠 전부터 여러분의 댓글에 대한 답글을 좀 쓰려고 무척 노력 중인데, 정말 짬이 나질 않네요...

  에궁. 조만간 꼭 짬을 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